尹, '쌍특검' 거부…김건희 여사 '조용한 내조' 돌입하나
"국민이 좋겠다 하면 검토"…'제2부속실 설치' 시사
네덜란드 순방 이후 공개 일정 없어
[더팩트ㅣ용산=박숙현 기자] 윤석열 대통령은 5일 배우자인 김건희 여사의 주가조작 의혹 진상규명 수사를 포함한 이른바 '쌍특검' 법안에 대한 재의요구권(거부권)을 재가했다. 대통령실은 "제2부속실 부활은 없다"던 기존 입장에서 선회해, 대통령 배우자 대외 활동을 보좌하는 '제2부속실 설치'를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김 여사는 '조용한 내조'에 돌입해 최소한 오는 4월 총선까지 공개 행보를 대폭 줄일 것으로 전망된다.
윤 대통령은 이날 오전 '화천대유 50억 클럽 뇌물 의혹 사건' 및 '대통령 배우자 김건희의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의혹' 진상규명 특별검사 임명 법률안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했다고 이관섭 대통령 비서실장이 브리핑을 통해 밝혔다.
이 비서실장은 두 특검법안을 '총선용 악법'이라고 명명하고, "대통령은 헌법과 법치주의 수호자로서 인권 보호 등 헌법가치를 보호하고 선거를 공정하게 관리해야 할 책임이 있다"면서 헌법상 의무에 따라 재의를 요구했다고 설명했다.
이 실장은 "이번 특검 법안들은 총선용 여론 조작을 목적으로 만들어졌다"고 단정하며, 야당 단독 처리 법안인 점, 특검법 대상 사건 관련자들이 현재 이미 재판 중으로 과잉 수사 가능성이 있는 점, 친야 성향 특검의 허위 브리핑으로 국민 선택권이 침해될 수 있는 점 등을 꼽았다. 수백억 원의 예산 투입과 수백 명의 인력 차출로 국민 혈세가 낭비되고 법 집행 기관의 정상 운영에도 지장을 초래할 수 있다고도 했다.
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는 양곡관리법 개정안과 간호법 제정안, 노란봉투법(노동조합법 2, 3조 개정안)과 방송 3법(방송법·방송문화진흥법·한국교육방송공사법 개정안)에 이어 취임 후 네 번째다.
특히 이번에는 김 여사와 관련한 주가조작 의혹 특검법이 포함돼 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 여부가 초미의 관심사였다. 역대 대통령은 가족 연루 의혹에 대해 수사 또는 특검을 수용하는 모습을 보였다. 역대 13개 특검법안 중 현직 대통령 가족을 직접적으로 겨냥한 것으로는 지난 2012년 '내곡동 사저부지 매입의혹사건' 특검법이 있었는데, 당시 이명박 대통령은 정치권 예상과 달리 특검법을 수용했다. 이에 따라 이 전 대통령 아들 시형 씨는 현직 대통령 자녀로는 처음으로 특검 조사를 받은 바 있다. 당시는 이명박 정권 말기로 여야가 내곡동 특검법을 합의 처리하면서 거부권 행사에 대한 부담이 상당히 컸던 셈이다.
이 비서실장은 '김건희 특검법'에 대해 "12년 전 (윤 대통령이) 결혼도 하기 전인 일"이라며 "문재인 정부에서 2년간 탈탈 털어 기소는커녕 소환도 못한 사건을 이중으로 수사함으로써 재판받는 관련자들의 인권을 침해할 뿐 아니라 정치편향적인 특검"이라고 강한 어조로 유감을 표했다.
이번 거부권 행사는 속전속결로 진행됐다. 두 특검법안은 전날(4일) 국회에서 정부로 이송됐다. 이송된 날로부터 15일 이내에 법안을 공포하거나 거부권 행사가 가능한데 이송 이튿날 오전 정부가 임시 국무회의를 열었고, 윤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의결된 지 약 20분 만에 재의요구권을 재가한 것이다. 조속히 국회 재표결을 시도하기 위한 차원으로 풀이된다. 국회로 돌아간 법안이 다시 본회의에서 통과되려면 재적 의원 과반 출석에 출석 의원 3분의 2이상 찬성을 얻어야 한다. 여소야대 국면에서 재의결은 쉽지 않다는 게 중론이지만 재표결 시점이 야당 공천심사 이후로 밀릴 경우 공천에 반발한 이탈표가 나올 수 있다는 관측이 있다. 이에 따라 국민의힘은 오는 9일 예정된 국회 본회의에서 재표결하자는 방침이다.
다만, 이에 대해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국회에서 알아서 할 일"이라며 "특별히 심사숙고할 일이 없고 충분히 검토했고, 헌법적 가치 훼손 조항에 대해선 신속하게 입장을 밝히는 게 좋다는 뜻에서 신속하게 처리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민주당은 가족 수사 관련 특검법에 대한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가 이해충돌 여지가 있다며 권한쟁의심판 청구를 검토 중이다. 이를 두고 고위 관계자는 기자들과 만나 "이해충돌 여지가 있다는 데 동의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다만 대통령실은 이번 거부권 행사가 4개월 앞둔 22대 총선에 미칠 파장에도 예의주시하며 국면 전환 대응책을 모색하는 모습이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제2부속실 설치에 대해 "국민 대다수께서 설치하는 게 좋겠다고 생각하면 검토하겠다"며 추진을 시사했다. 제2부속실은 대통령 부인의 공적인 활동을 전담해 지원하는 부서지만 김 여사 관련 각종 의혹이 제기되면서 윤 대통령이 폐지를 약속한 바 있다. 당시 김 여사가 기자회견을 열어 "조용한 내조만 하겠다"며 대통령 배우자로서 최소한의 역할만 하겠다고 공언했던 만큼 제2부속실이 필요하지 않다는 뜻이었다.
그러나 취지와 달리 해외 순방 동행이나 통상적으로 참석해야 하는 국내 행사 일정이 늘면서 김 여사의 공개 활동이 불가피하게 늘었고, 이 과정에서 각종 잡음까지 연달아 불거지며 제2부속실 설치 요구가 꾸준히 나왔다. 대통령실에는 이미 김 여사의 대외 활동을 전담하는 별도의 팀이 4~5명으로 구성돼 사실상 제2부속실 기능을 하고 있다. 이에 대해서도 대통령실은 "제2부속실이 있느냐 없느냐는 똑같다. 그냥 부속실에서 다 하면 된다(김대기 전 비서실장)"고 할 정도로 기존 입장을 고수해왔다. 한덕수 국무총리가 '제2부속실 부활'에 대해 "대통령 고집이 좀 세시지 않나"라고 발언할 정도였지만, 기류가 확실히 변한 것이다.
대통령실 개편과 별개로 김 여사는 본격적으로 '조용한 내조'에 돌입했다. 김 여사는 지난달 중순 윤 대통령의 네덜란드 순방에 동행한 이후 공개 일정을 자제하고 있다. 지난달 29일 박근혜 전 대통령과 서울 한남동 관저에서 비공개 오찬을 함께한 것이 알려진 마지막 일정이다. 1년 전 연말·연초에 윤 대통령과 성탄 미사, 성탄 예배, 2023년 신년 인사회, 문화예술인 신년인사회에 동행한 것은 물론, 부산과 대구를 찾아 각각 자원봉사에 참여하고 디자인계 신년 인사회에 참석하는 등 바쁘게 단독 일정을 소화했던 것과 대조적이다. 김 여사의 잠행 모드는 오는 4월 총선까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unon89@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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