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무총리 신현확 역 서광재, “‘서울의 봄’이 올바른 가치관을 기르고, 역사관 형성하는 데 도움됐으면”
[헤럴드경제 = 서병기 선임기자]“‘서울의 봄’이 올바른 가치관을 기르고, 역사관을 형성하는 데 도움이 됐으면 한다.”
영화 ‘서울의 봄’에서 신현확 국무총리 역을 모티브로 한 캐릭터를 맡아 적은 분량으로도 존재감 있는 연기를 펼친 배우 서광재(61)의 말이다.
1979년 12월 12일 수도 서울에서 일어난 신군부 세력의 반란을 막기 위한 일촉즉발의 9시간을 그린 ‘서울의 봄’은 지난 3일 이미 1200만 관객을 돌파하며 여전히 흥행 질주하고 있다.
배우 서광재는 "젊은 세대들이 '서울의 봄'을 많이 보는 게 신기했다. 저도 인터넷을 찾아봤더니, 부모와 자식이 함께 보고 보고 토론하기도 한다고 했다. 부모에게 '정말 그랬어요'라고 질문하는 친구도 있었다"면서 "요즘 MZ세대는 혼자 살아가는 느낌이 드는데, 조금 관심을 가지고 역사가 어떻게 흘러가야 하는지, 그 방향에 대해 일조할 수 있는 영화였으면 한다. 젊은 친구들이 '이렇게 살면, 이렇게 흘러가면 안되겠다는 생각을 한다'는 말을 듣고 기분이 좋더라"고 말했다.
'서울의 봄'이라는 영화가 신군부 반란을 막지 못한 진압군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데, 잘못된 역사, 실패한 역사를 통해 생각할 거리를 만들어내는 작업이 이뤄지고 있다. 좀 더 거창하게 말하면 역사관을 키우는 작업이다.
서광재는 '서울의 봄'의 12.12 사건이 터진 79년에 고등학생이었다. 그는 "어린 마음으로 막연하게, 박정희 대통령이 사망했다는 소식에 나라가 망하는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던 것 같다. 전두환이 대통령이 되면서 헷갈리는 시절이었고, 대학생활을 하면서 뭔가 잘못됐구나 하는 생각과 함께 자유에 대한 인식도 하게 됐다"면서 "(영화를 보면) 이렇게 내부적으로는 어마어마한 복잡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었는데, 내가 무지한 삶을 살지 않았나. 정치에 뛰어들지는 못하더라도 올바른 정치관과 가치관을 좀 더 빨리 가졌어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후회가 들더라. 막연하게 쫓아가는게 아니라 판단력을 기르면서 좀 더 주체적으로 삶을 살아야 했는데..."라고 영화에 배우로서 참가한 소회를 밝혔다.
이어 "영화를 보고 굉장히 답답했다. 전두환을 나쁘게만 묘사했다고 하는 사람도 있어 놀라기도 했다"면서 "군인 뿐만 아니라 국민 각자가 자기 위치에 맞게 열심히 살면 되는데, 자꾸 왜곡된 길로 빠지는 경우가 많다. 그런 걸 처세라고 말하기 보다는 정도(正道)를 지켜가면서 뭔가 해야할 것"고 영화를 본 소감을 밝히기도 했다.
신현확은 전두환에게 협조한 듯 하면서도 쓴소리를 할 수 있는 관료였다. 12.12 군사반란이 일어난 다음날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 장관에서 국무총리로 승진했으나, 이듬해 광주민주화운동 발발과 함께 국무총리직에서 물러났다. 신현확 전 총리의 회고록을 낸 아들 신철식 우호문화재단 이사장은 "아버지가 '신군부 사람'이란 오해를 받는 걸 늘 억울해 했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서광재는 "저도 신현확 국무총리를 경제통으로만 알았지, 신군부에 대항할 수 있는 다혈질이라는 걸 처음 알았다. 전두환에게 직언하는 용기를 지녔다고 하더라"면서 "실제로 나였다면 전두환 체제에 덤빌 수 있었을까"라고 말하기도 했다.
서광재는 "신현확 역할에 어떻게 캐스팅이 됐냐"는 질문에는 "김성수 감동님이 몇몇 배우들을 봤는데, 제가 느낌이 가장 비슷하더라고 했다. 영화를 보고나서는 저와 닮았다고 했다. 제가 더 잘 생긴 것 같은데..."라고 말하며 웃었다.
배우 서광제는 지난 40년간 연극, 영화, 드라마 등 다양한 무대에서 활동하며 얻은 뛰어난 연기력과 풍부한 감정 표현력을 지니고 있다. 중저음의 중후한 톤은 연기 무게감을 느끼게 해준다.
"대학졸업후 대학로에서 연극을 하다가, 가난하니 계속 지원이 안돼 알바 차원에서 공채 시험을 통해 1990년 KBS 성우극회 22기로 성우 생활을 했다. 이 때도 연극무대가 있으면, 라디오 드라마를 잠깐 쉬기도 했다. 하지만 연극을 해서 제대로 풀리지 않았으니, 성우를 10년간 해보고 안되면 그만두려고 했다. 전속이 끝나던 해에 성우실장을 하면서 KBS 라디어 부문 신인상을 받았다. 전속기간이 끝나니 연극과 성우, 매체연기 등 무엇을 선택해야 할지 갈등을 겪었다."
그러다 배우 서광재는 대학원에 진학해 리포트를 쓰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연극판에 합류했다. 연극을 하면서 MBC '제4공화국'(1995), SBS '코리아게이트'(1995) 등 1990년대 중반부터는 본격적으로 드라마와 영화에 출연했다. ‘뷰티 인사이드’, ‘여인의 향기’, ‘검법남녀’, ‘동창생’, ‘1987’ 등에 출연해 연기파 배우로서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2000년을 전후해서는 한동안 TV를 틀면 나왔다. 그래서 시청자들도 서광재라는 배우 이름은 몰라도 얼굴을 보면 기억한다.
"가장 많이 한 역할은 판사와 의사다. 조금 있으면 자격증을 딸 것 같다. 주지스님 역도 해봤다. 나이가 드니까 승진이 되더라. '킹메이커'(2022)에서는 경찰총장역을 맡았다."
기자는 이렇게 수많은 작품에 출연해 연기를 한 것만으로도 대단하다고 했다. 계속 캐스팅되는 게 어디냐고 했다.
"요즘도 연기를 2~3개월만 쉬면 연기할 때 팔을 어디에 둬야할지 고민이 된다. 나는 연예인이기 보다는 연기자이고 싶다. 연극이건, 드라마건 주연에 대한 욕심은 없다. 주인공은 싫다. 조연이 훨씬 더 캐릭터의 다양성을 보여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서광재는 캐릭터가 좋은 배역을 다양하게 선택한다. 그는 "기존 작품에서 보여주었던 이미지를 조금 더 넓혀보고 싶다. 한동안 착한 역할을 많이 했는데, 따뜻한 아버지 역할도 한번 해보고 싶다. 물론 코믹한 캐릭터나 악역도 할 수 있다"고 했다.
서광재는 연기 하는 틈틈이 대학에서 학생들에게 연기를 가르치기도 했다. 백제예술대, 청운대, 공주영상대, 중앙대 사회교육원 등에서 15년 동안 강사로 출강했다. 대학생들에게 연극 이론 뿐만 아니라 실기 분야의 제작 실습도 맡아 학생들에게 다양한 방법으로 감정을 표현하는 방법을 가르쳤다.
서광재는 베테랑 연기자임에도 최근 처음부터 다시 연기를 배우는 심정으로, 진짜 바닥부터 한 계단씩 밟아간다는 심정으로 연기를 시작했다. 마음을 좀 더 열고 다양하게 수용하겠다는 자세다. 이를 위해 연예기획사 넘버원이앤엠과 전속계약을 체결했다.
넘버원이앤엠은 가수 위주의 매니지먼트를 진행해왔으나 서광재의 영입을 시작으로 배우 매니지먼트에도 도전하는 등 사업 영역을 점점 확대해갈 예정이다. 넘버원이앤엠의 1호 배우로 눈도장을 찍은 서광재가 새로운 활동을 통해 앞으로 보여줄 행보에 더욱 기대가 모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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