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0여점의 작품중에서 가장 아끼는 기차는 미국 ‘유니온 퍼시픽 빅보이’라는 기차인데 미대륙을 횡단하는 세계에서 제일 긴 증기기관차예요. 이게 200량을 끌고 대륙을 횡단해요.”
‘빅보이’는 기관부 길이만 40.5m에 중량 605t으로 세상에서 가장 크고 가장 강력한 증기기관차입니다. 미국 ALCO에서 개발한 역사상 최대 크기의 괴물 증기기관차로 1941년부터 18년간 운행을 했다고 합니다.
이현만 장인의 ‘빅보이’는 황동으로 부품을 하나하나 깍아가며 1/16스케일로 축소하여 만들어진, 모형의 길이만 2m50cm에 달하고 무게는 200kg에 육박하며 무려 5년 동안 만든 걸작 중의 걸작입니다. 그 디테일은 리벳의 숫자까지도 실물기차와 같을 정도로 정교합니다. “실물에서 1/16로 축소시켜서 0.1mm라도 틀리면 안되요. 글씨 폰트도 실물하고 똑같아야 돼요. 그게 스케일이라는 거예요. ”
“기차 안을 수리하기 위해 경첩이 달린 문을 만든 건데 안을 보면 파이프라인이 많이 보이죠. 사람들이 다니는 통로와 기차 위로 올라가는 접이식 발판까지 실제와 똑같이 만들어 놓은 거예요. ”
“미국 철도회사 ‘유니온 퍼시픽’에서 내가 만든 ‘빅보이’를 박물관 전시를 위해 구매하겠다는 의사를 밝혀왔었어요. 또 제가 거래했던 ‘콕스콤파니’에서 ‘우주왕복선’과 ‘빅보이’를 팔라고 했지만 대답을 하지 않았어요. 2억원을 제시하더군요. 그런데 너무 힘들어서 딱 한 대밖에 만들지 않았는데, 이 기차의 가격을 어떻게 책정하겠어요. ”
기차를 전시해놓은 장식장에는 도면이 함께 전시되어있습니다. “기차를 만든 오리지널 도면이예요. 예전엔 전부 수작업이었으니 손으로 그린거죠. 기차 수집가들이라면 누구나 가장 갖고 싶어하는 기차가 ‘빅보이’예요”
이현만 장인의 작품은 자세히 볼수록 그 재미와 감동은 배가 됩니다 보이는 곳은 당연하고 구석지고 감춰진 곳의 디테일을 발견하면 감탄이 터져나옵니다.
“작동시키면 증기기관차가 석탄을 땔 때 나는 연기도 재현되어 있어요. 뭔가 하나를 개발하려고 하면 밤새 고민을 합니다. 그렇게 고민을 하고 시험을 해보면 될 때도 있고 안 될때도 있지만 고민이 깊어져야 성공 확률이 올라가요.”
작품을 본 실제 빅보이 제작자가 직접 사인을 해 책을 보냈고, 독일 bild지는 그를 빅보이 모형 제작자로 소개하기도 했습니다.
디테일한 기차모형을 제작하는 장인 ‘이현만’
“어릴 때부터 손재주가 있었어요. 학생 때 자전거를 모두 분해한 뒤 버려진 자전거 부품들을 모아 개조해서 타고 다녔어요. 누구한테 배운 적이 없었지만, 한 번 보고 뜯어내면 다시 원래대로 조립할 수 있었어요. 중학교를 졸업하고 지인의 추천으로 기차회사에 들어갔어요. 기차제작에 필요한 부품을 만드는 일을 하게 될 거라고 했는데 막상 가보니 모형기차를 만드는 곳이더라구요. 안다닌다고 했더니 며칠만 나가보라고 설득당해서 다니게 됐는데 그곳에서 10년을 일했어요. 온갖 허드렛일만 하다가 모형 기차를 만들기는커녕 부품만 만들다보니 더는 못하겠더라구요. 32살이 되던 해, 나만의 기차를 만들기 위해 퇴사를 하고 창업을 했죠.”
사업의 모든 희노애락이 담겼던 첫 계약
“무일푼으로 대출을 받아 작게 시작을 했는데 기계를 장만해서 주조로 부품을 만들어 다녔던 회사에 납품했어요. 1년쯤 지났을 때 외국의 한 바이어가 한국에 들어왔다는 소식을 들었죠. 계약을 따내야 한다는 생각에 전에 일하던 공장 동료에게 수소문해서 무작정 찾아갔어요. 그의 호텔방 앞까지 찾아가서 일을 좀 달라고 이야기했죠. ‘나 이런 기차를 만들 줄 아는데. 오더 좀 줄 수 있느냐’, 처음에는 못믿더라구요. 당연히 그렇죠. 그러면서 조그만 도면을 하나 주더군요. 첨엔 도면 볼줄도 몰랐어요.”
“그때부터 혼자 밤새워서 실제 기차에 대한 백과사전보면서 기차의 원리부터 하나하나 공부해 가면서 그렇게 배워가면서 만들었어요. 하루도 쉰날이 없었죠. 샘플을 만들어서 다시 찾아갔습니다. 그렇게 일을 따내게 됐는데 경험도 없는 상태에서 무작정 1,000개를 만들어주기로 한 게 실수였어요. 8개월 동안 4시간만 자고 만들었는데 납품기한을 못 맞춘거죠. 바이어가 직접 찾아와 생산 중단을 요청했고, 저는 위약금을 물면서 4억 5000만 원의 빚을 지게 되었어요. 정말 눈앞이 캄캄하고 죽는게 낫겠다는 생각까지 들었죠. 그런데 바이어가 다시 찾아와 기간을 더 줄테니 마무리를 해달라고 하더군요. 천만다행이었죠. 결국 납품을 완료하고 위약금은 물지 않아도 됐지만 부품 제작비, 공장 운영비, 인건비 등을 빼고 나니 남은게 0원이었어요. 그래도 날아갈 것 같더라구요.”
“그렇게 인연을 맺게 된 회사가 ‘Fine art models’라는 회사예요. 이후 회사의 기차를 거의 다 제가 만들었어요. 세계 바이어들에게 인정을 받아 영국, 일본, 프랑스, 독일, 오스트레일리아, 스위스 등 여러 나라에 수출하게 되었죠.”
“독일 뉘른베르크 쇼라고 2월 첫째주에 열리는 전시회가 있어요. 한국에만 있으면 우물안의 개구리가 되겠다 싶어 갔었죠. 다른 나라에서 만든 모델도 가서 봐야 배울수 있다 싶었는데 우리 모델만큼 잘 만든 모델이 없었어요. 해외 회사들은 이익창출이 우선 순위라 디테일들이 생략이 많이 되고 하다못해 문도 안열리게되어있더라구요. 공정이 단순해져야 원가를 낮출수가 있으니까요. 저는 원가 개념이 없었어요. 돈을 벌고는 싶었는데 이윤을 창충하려고 품질이 안 좋은 제품을 만들고 싶지 않았어요. 한가지 생각밖에 없었어요. ‘어떻게 하면 세계 최고의 모델을 만들 수 있나’ 지금 생각하면 미련했죠.”
“인건비가 너무 오르게 되면서 적자가 계속 쌓이게 됐어요. 노동력이 큰 비중을 차지하는 업계 특성상 인건비가 중요한데, 비싸진 인건비를 감당할 수가 없더라구요. 결국 모형 기차 회사를 정리했습니다. 고민하다가 기차를 모든 사람에게 보여줄 수 있는 전시장을 만들기로 했죠.”
“기차 박물관을 처음 열었을 때, 보는 사람마다 함성을 지르며 놀라워했어요. 이걸 어떻게 만들었는지, 몇 년이나 만들었는지 등 질문이 끊이질 않았어요. 그 모습을 보니 참 흐뭇하더라고요.”
박물관에 들어서면 다양하게 꾸며진 디오라마에 여러 종류의 기차들이 힘찬 기적소리를 울리며 철로 위를 달리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곳에 보이는 모든 디오라마는 이현만 장인이 직접 만든 작품들입니다. 에펠탑, 대관람차, 자이로드롭 등 볼거리가 풍성합니다. 황동으로 정교하게 만들어진 에펠탑 안에는 엘리베이터까지 재현되어 있으며, 자이로드롭은 실제 움직임과 똑같이 작동합니다. 그 풍경사이사이 끊임없이 돌고 있는 기차들을 보고 있으면 마치 여행을 하는 듯한 기분이 듭니다.
“가족, 아이들이 많이 찾아요. 아이들은 대부분 기차박물관을 무척 좋아합니다. 실제로 존재했던 기차를 미니어처로 만들어 놓은 것이기 때문에 증기 기관차, 디젤 기관차, 일렉트릭 기관차, 목탄 기관차 등 세기의 기차들을 모두 만날 수 있어요. 어른들도 재미있게 둘러볼 수 있구요.”
장인의 또 하나의 역작 ‘컬럼비아 우주발사대’
많은 기차들과 함께 시선을 끄는 또 다른 작품은, 금방이라도 하늘 위로 솟아오를 것 같은 ‘우주왕복선’, 30분마다 발사되는 모습을 직접 볼 수 있습니다.
카운트다운에 맞추어서 연기를 뿜으며 하늘로 발사되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마치 우주발사대 현장에 와 있는 듯한데요. 이 우주왕복선을 만들기 위해서 종이로 만들어진 모형을 미국에서 직접 구입하고, 인터넷에서 우주왕복선 사진을 출력해서 도면화 시킨 후에 72분의 1 크기로 2년 이상 걸려서 만들었다고 합니다.
“이 우주발사대가 움직이지 않고 정적이면 의미가 없을것 같아서 ‘발사되게 만들어야겠다.’ ‘발사되면 연기도 나야 되겠다’ 점점 할게 많아졌죠. 2년 좀 더 걸렸어요. 1/72 스케일입니다. 통로가 전부 연결되어있고 계단들도 전부 연결이 되어있고 실제 발사대처럼 격납도 가능하구요. 물이 고이지 말라고 뚫려있는 발판까지 신경쓰면서 만들었죠. ”
카운트다운이 완료되면 점화가 시작되고 연기를 뿜으며 날아오릅니다. 이때 나오는 안내방송 사운드도 실제 음성이라고 합니다. 우주왕복선 올라갈 때 뿜어지는 연기는 스모그 머신을 이용했는데 특허까지 받았다고 합니다. 땅위의 기차를 넘어 우주를 향하는 장인의 열정이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Mr.Lee’의 멈추지 않는 도전
“91년에 독일에 갔는데 그때만 해도 독일에서 ‘코리아’를 잘 몰랐죠. 그런데 전시회에서 나는 모르는 사람이 아는척을 하면서 ‘미스터 리’아니냐고 한국에서는 ‘미스터리’라고 하면 잘 모르겠지만 세계 기차 마니아들은 ‘미스터 리’를 모르는 사람이 없어요. 참 이럴때 그동안의 세월을 인정받는것 같아 흐뭇합니다.”
“세계 1위의 중장비 제조업체인 캐터필러(CAT)에서 불도저 제작 의뢰가 들어왔었는데 로비에 전시된 모형을 보고 캐터필러 회장이 누가 만들었냐며 만나고 싶다고 했었나봐요. 그래서 초대받아 와이프와 15일 동안 캐터필라를 견학한 일도 있었어요.”
그의 작업실에는 기차를 만들 때 사용되는 기계들이 여러 대 있는데 그 중 장인과 가장 많은 시간을 함께 했다는 ‘59년생 기계’ 핸드 조각기 주위에는 쇳가루가 수북이 쌓여 있었습니다. “이 기계에서 만들지 못하는 것이 없어요. 지금까지 만든 기차는 전부 이 기계를 이용하여 만들었어요.”
“기차는 제 인생입니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긴다고 하는데 저는 뭐를 남겨야 할까를 늘 고민하죠. 내가 만들었던 작품이 역사에 계속 남아있기를 저는 바랄 뿐이예요.”
평생 한 가지 일에 몰두한 장인의 손은 투박하고 상처투성이였습니다. 그의 손은 단순히 작업을 하는 손이 아닌 고민에 고민이 더해진 ‘생각하는 손’입니다. 아직도 그는 매일 개인작업을 하며 꿈을 이뤄나가고 있습니다. 그 열정이 그가 장인중의 장인 ‘기차의 명장(名匠)’이라고 불리는 원천인듯 합니다.
@기차왕국박물관카페 / 주소: 인천 남동구 장자로6번길 112-7. 선진정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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