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광 귀족과 가난한 엔지니어의 만남…명품차 끝판왕이 태어났다 [추동훈의 흥부전]

추동훈 기자(chu.donghun@mk.co.kr) 2024. 1. 6. 1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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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부전-38][브랜드로 남은 창업자들-33] 찰리 롤스 & 헨리 로이스

다사다난한 2023년이 끝나고 청룡의 해, 갑진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엔데믹이 본격화된 지난해에는 거시 경제의 위기속에 기업들 역시 진검승부를 펼치며 어려운 시기를 헤쳐 나갔습니다. 미국에선 거대 정보통신 기업들을 중심으로 인공지능, 로보틱스 등 신기술 개발이 활발히 이뤄진 가운데 유럽 역시 여러 기업들이 성과를 내기도, 미끄러지기도 했습니다. 그렇다면 지난해 유럽 기업 중 가장 높은 주가 상승률을 기록한 기업은 어디일까요. 유럽을 대표하는 자동차 기업? 루이뷔통, 샤넬 등 명품 기업? 아닙니다. 정답은 명품과 자동차의 교집합, 바로 명품 자동차의 대명사, 롤스로이스입니다.

롤스로이스 로고
파이낸셜타임스에 따르면 2023년 한 해 동안 롤스로이스 주가는 221.57% 올라 스톡스유럽600 지수에서 상승률 1위를 기록했습니다. 미국 S&P500 지수가 지난해 24% 오른데 반해 영국 FTSE100 지수가 3.8% 상승한 점을 고려하면 롤스로이스의 성과는 더욱 눈에 띄는데요. 여기서 점검 사항 하나. 사실 국내에선 롤스로이스라고 하면 수억 원을 호가하는 명품 자동차 브랜드로 알려졌지만 220%나 주가가 오른 롤스로이스는 사실 영국의 항공기 엔진 제조사입니다.
보잉기에 장착된 롤스로이스 트렌트800 엔진
정확히는 롤스로이스의 자동차 사업 부문은 현재 독일의 BMW 산하로 매각됐고 나머지 사업 부문인 항공기 엔진 제조 사업 부문이 별도 법인으로 유지되고 있습니다. 즉 같은 뱃속에서 태어났지만 자동차 사업 부문은 독립한 것입니다.

어쨌든 같은 아버지 아래 나고 자란 것은 분명한 롤스 로이스. 새해 첫 브랜드로 남은 창업자의 주인공은 롤스 로이스의 창업주 바로 찰리 롤스와 헨리 로이스입니다. 개별 기업으로 창업했다 추후 인수 합병한 ‘록히드 마틴’이나 ‘크래프트 하인즈’와 달리 롤스 로이스는 롤스와 로이스가 공동창업해 처음부터 함께한 브랜드입니다.

이야기에 앞서 간단히 정리하면 귀족 가문 출신으로 자동차광에다 장사 수완이 좋았던 롤스와 가난했지만 누구보다 눈썰미가 좋고 손기술이 뛰어났던 엔지니어 로이스라는 환상의 콤비가 만들어낸 명품 브랜드의 탄생으로 압축됩니다.

찰리 롤스
찰스 스튜어트 롤스는 1877년 8월 영국 런던의 귀족 가문인 롤스 집안에서 태어납니다. 영국의 명문 사립학교 이튼 스쿨을 졸업한 그는 평소에도 자동차, 엔진 등 여러 기계 부품에 대한 관심이 컸습니다. 학창 시절 이런 저런 기계 장비를 곧잘 만졌던 그의 별명은 더티 롤스(dirty rolls)였습니다. 1895년 케임브리지 트리니티 칼리지에 입학한 그는 기계 및 응용 과학을 전공했습니다.

부유한 배경 덕분에 18세의 나이에 프랑스 파리로 여행을 떠난 그는 생애 첫 자동차로 푸조의 페이톤을 샀고 프랑스에서 자동차 모임에 가입해 활동하기도 했습니다. 그의 푸조 차량은 웨일스 지역을 돌아다닌 최초의 자동차 3대 중 한대이기도 합니다. 평소에 운동도 워낙 좋아했던 그는 사이클에도 일가견이 있었습니다. 케임브리지 자전거 경주에 참가하고 자전거 클럽의 주장이 되기도 했습니다.

1898년 케임브리지를 졸업한 롤스는 증기 요트선 산타 마리아호에서 일을 시작했고 노스웨스턴 철도회사에서도 일했습니다. 엔지니어링에도 흥미가 컸지만 그보다는 물건을 파는 세일즈 역량과 사람들과 의사소통하는 능력이 출중했던 그는 진로를 자동차 판매로 결정합니다. 1903년 아버지로부터 6600파운드를 지원 받은 그는 영국 최초의 자동차 대리점 C.S Rolls&Co.를 차려 본격적인 차량 대리점 사업을 시작합니다.

C.S Rolls&Co. 광고문구
초창기 그는 프랑스 푸조, 벨기에 미네르바 차량 등을 수입해 판매하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영국인들의 자긍심을 높여줄 영국 자동차가 없다는 점이 마음에 자꾸 걸리기 시작했습니다. 이 때 그에게 떠오른 인물이 있었습니다. 바로 1900년 처음 만났던 자동차 엔지니어 헨리 로이스였습니다.
헨리 로이스
향후 롤스와 동업을 시작한 헨리 로이스는 1863년 잉글랜드 헌팅턴셔주에서 태어납니다. 제분소를 운영하던 아버지 밑에서 성장한 그는 불행히도 아버지의 사업이 실패로 돌아가며 어려운 시절을 보냅니다. 고향을 떠나 런던으로 이주했지만 아버지는 1872년, 그가 9살 되던 해 사망했고 결국 로이스는 1년의 정규 교육만 받은 후 신문 판매와 전보 배달일로 생계를 꾸려갔습니다.

1878년 그의 숙모의 도움으로 ‘Great Northern Railway’라는 회사에서 견습 생활을 시작한 그는 엔지니어로서의 기초를 다지기 시작합니다. 이후 리버풀의 한 극장에서 조명일을 하거나 각종 도구를 제작하는 회사 등을 다니며 일거리를 찾아다니던 그는 1884년 21살의 나이에 영국의 대표적 공업도시 맨체스터로 향하게 됩니다.

맨체스터는 그에게 살아 숨 쉬는 엔지니어링 교육현장이었습니다. 그는 F.H. Royce&Co 라는 회사를 창업해 발전기와 전기 크레인을 만들어 팔기 시작했습니다. 손기술이 좋았던 그의 발전기는 시장에서 인기를 끌었습니다. 1894년 회사명을 Royce Ltd로 바꾼 그의 사업은 계속 번창했습니다. 이 시기 전 세계는 산업혁명의 흐름 속에서 빠르게 변화하고 있었습니다. 독일과 미국 등지에서 크레인과 발전기 기술이 나날이 발전하고 있었고 로이스 역시 이러한 전 세계의 변화 추세 속에서 자동차 산업을 유심히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1910년 발행된 1파운드 우선주 25주에 대한 주식증서
그는 자동차의 핵심 부품인 엔진을 제작하는데 모든 기술력을 집중했고 1901년부터는 여러 엔진을 직접 사고 분해하는 등 연구개발을 통해 자체적으로 엔진을 제작하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1904년 두개의 실린더를 가진 엔진을 만들어 로이스10이라는 시운전 차량 2대를 만들어냈습니다. 이 차량은 우연한 기회에 롤스의 손에 들어가게 됩니다. 로이스가 헨리 에드먼드란 사람에게 이 차량을 판매했는데, 에드먼드의 친구가 바로 롤스였습니다. 롤스는 로이스10을 보자마자 그간 자기가 느꼈던 갈증이 해소된 느낌이었습니다. 영국의 기술력으로 만든 영국차.

바로 그가 꿈꾸던 차량이었습니다. 롤스는 로이스를 만나 함께 사업을 할 것을 제안합니다. 로이스 차량을 롤스 대리점에서만 팔자는 독점 계약을 맺자고 했습니다. 여러 논의 끝에 롤스와 로이스느 1906년 합작회사 롤스 로이스를 만들기로 했고 이게 바로 우리가 알고 있는 롤스로이스의 시작입니다. 롤스는 기술 전무 이사로 임명돼 로이스에 대한 재정적 지원과 비즈니스 전략을 수립했습니다.

로이스10 차량
롤스는 신차 홍보를 위해 1906년 직접 미국을 찾아가기도 했습니다. 그의 노력 덕에 1907년 롤스 로이스 차량은 자동차 품질과 신뢰성을 인정받기 시작했고 각종 상을 받기도 했습니다. 다만 이후 롤스의 관심은 차에서 비행기로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자동차 엔진에 이어 비행기 엔진을 제작하는 것이 사업에 더욱 도움이 될 것이라 판단한 롤스는 로이스를 설득했습니다.

롤스는 실제 영국에서 두 번째로 비행기를 탄 사람이기도 합니다. 모험을 즐기고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던 그는 안타깝게도 1910년 비행기 추락 사고로 32세의 나이에 사망하고 맙니다. 로이스는 롤스의 뜻을 이어받아 롤스로이스 이글이라는 회사 최초의 항공기 엔진을 개발합니다. 세계 1차대전이 터지자 영국군 요구사항을 반영해 제작에 성공했고 이외에도 크레인 등을 개발했습니다.

롤스로이스 비행기
롤스 사후에도 롤스로이스의 기술력은 전 세계에 명성을 떨쳤습니다. 일 중독 로이스는 제대로 식사도 하지 않은 채 연구개발에 몰두했고 1912년 큰 수술을 할 정도로 건강이 악화됐습니다. 조금씩 일에서 손을 뗐지만 그는 결국 1931년 새로운 R 엔진을 개발해 시속 400마일 이상의 속도로 비행하는 최초의 항공기를 만들기도 했습니다. 그는 2년뒤인 1933년 70세의 나이로 숨을 거둡니다. 한 평생을 엔지니어로 살아온 그는 롤스로이스의 기술력을 완성한 입지적인 인물이기도 합니다.
롤스로이스 팬텀
이후 롤스로이스는 무리한 엔진 개발과 경영난으로 영국 정부에 의해 국유화되기도 합니다. 결국 1973년 롤스로이스의 자동차 부문을 빅커스사에 매각했고 항공기 엔진 제조 부문만 롤스로이스 PLC라는 회사로 남겨둡니다. 이후 빅커스사도 경영난에 쳐하자 결국 독일의 BMW사가 롤스로이스를 인수하며 지금의 롤스로이스로 자리 잡게 됐습니다.

정리해보면 지난해 220% 주가가 상승했던 롤스로이스는 바로 항공 엔진 개발업체 롤스로이스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롤스로이스라고 하면 여전히 명품 자동차의 이미지가 강하지만 이 회사는 그 어떤 회사보다 기술력이 뛰어난 기업임을 이번 2023년 주가 상승세를 통해 확인해볼 수 있었습니다.

공동창업자의 유산은 이제 과거속에 머무르게 됐지만 롤스로이스의 가치는 앞으로도 계속 이어질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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