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대상 언론] '기자'와 '기레기' 사이에 있는 언론인들

윤수현 기자 2024. 1. 6.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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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화로 회의감·무력감 겪는 기자들
기자 20명 대상 심층 인터뷰…'시민 저널리즘 연계' 제안

[미디어오늘 윤수현 기자]

편집자주: 언론·미디어 연구 속 언론은 변화가 더딘 혁신의 대상이다. 업계 종사자들은 학계 진단이 현실과 동떨어졌다고 말한다. 더 나은 사회를 위한 노력은 그 차이를 확인하고 간극을 좁히는 데서 시작되어야 한다. 미디어오늘은 현업인들에게 시사점을 던져줄 수 있는 연구 사례를 소개하며 언론계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모색해본다.

3줄요약:
-디지털화로 인해 기자 업무가 변하고 있으며 정체성도 과거와 달라졌다.

-회의감, 무력감, 압박감을 느끼는 기자들이 다수였으며 사기도 떨어졌다.
-저널리즘 원칙으로 돌아가서, 시민과의 협업을 통해 해결책을 찾을 때다.

포털, SNS 등 디지털 플랫폼이 언론의 중요한 매개체로 부상했고, 언론의 비즈니스 모델은 이에 맞춰 변하고 있다. 기자들의 업무도 포털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다. 콘텐츠는 독자들과 가까워졌지만, 언론 신뢰도는 낮다. 현장의 기자들은 이런 상황 변화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

이화여대 커뮤니케이션·미디어학과 김영욱(교수), 이지상·이재현(석사과정) 연구진은 2022년 4~7월 지상파·종합편성채널·일간지·온라인매체·뉴미디어·통신사 등 언론사에서 근무하고 있는 언론인 20명을 대상으로 면접조사를 진행했다. 연구 내용은 지난해 12월 한국언론학회 학술지(커뮤니케이션 이론)에 게재된 <나는 기자인가? 기레기인가?> 논문에 담겼다.

▲ 2010년 12월8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국회의원들을 취재중인 사진기자들. 사진=미디어오늘 자료사진

조사 결과, 언론인들의 사기는 '바닥' 수준이었다. 언론인들은 언론 신뢰도 하락, 효능감 부족, 내외부 압력 등 많은 부문에서 부정적 감정을 느끼고 있었다. 이에 대한 해결책도 뚜렷하지 않은 상황이다.

달라진 언론인 정체성…구분 짓기·자기 보호 나선 기자들

디지털화로 이용자들의 기사 소비 방식도, 기자들의 업무도 변했다. '기자'라는 정체성도 과거와 달라졌다. A씨(종합일간지 기자, 2011년 입사)는 “입사할 때만 해도 '메이저 언론사'라고 해서 들어왔는데, 이젠 그 강점이 많이 없어진 상황이다. 포털에 잠식됐다고 할 수 있다. 권력의 상하관계나 판 자체가 바뀐 상황이고… 입사할 때랑은 완전히 다른 세상이 된 기분이 든다”고 회상했다.

기자들은 디지털화와 관련해 '구분 짓기'와 '자기 보호' 경향을 보였다. 디지털화에 따른 변화를 자신과 결부시키는 데 인색했고, 이로 인한 업무를 자신의 일로 보지 않았다. 일종의 '엘리티시즘'으로 해석될 수 있다. 연구진은 “'기자의 본래 일'은 따로 있다고 받아들이는 점도 눈에 띄었다”며 “그런(온라인 대응) 업무를 담당하는 기자들이 자신의 기자 생활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전반적으로 언론인들은 디지털 환경 변화가 자신들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는 있지만, 그것이 콕 집어서 나의 문제는 아니라는 회피적인 인식 성향을 보여주었다”고 설명했다.

실제 B씨(지상파방송 기자, 2010년 입사)는 “나는 방송리포트를 만드는 게 최우선이고 유튜브용 콘텐츠를 만드는 건 별도 팀에서 하고 있다. 내가 그 팀에 가지 않는 한 별로 그런 걸 신경 써야 하는 상황은 아니다”라고 밝혔다.

▲세월호 참사 직후인 2014년 5월 코리아나호텔 앞에서 시민들의 기자회견 모습. 기사 본문과는 관련 없는 사진입니다. ⓒ미디어오늘

기자들이 생각하는 '기레기' 담론

'기레기'라는 멸칭은 언론인의 뼈아픈 부분이다. 기자들이 '기레기'로 불리게 된 시작점에는 세월호 참사가 있지만, 디지털화도 이에 한몫했다. 디지털화가 이뤄지면서 자극적 보도가 늘어나고, 이에 따라 언론인에 대한 신뢰도 낮아졌다. 조사에 응한 기자들은 이 멸칭을 디지털화라는 시대적 흐름과 관련된 구조적 문제로 보고 있었다. B씨는 “언론사들이 인터넷을 강화하면서 메이저 언론사 타이틀을 달고서도 자극적인 기사가 많이 나갔다”며 “그때부터 댓글에 '이게 기사냐'는 분위기가 퍼지기 시작했다”고 했다.

정치 이슈와 기레기 담론을 연결하는 경우도 있었다. 연구진은 “기레기 담론이 언론 내부의 문제에서 비롯되었다기보다는 정치적인 환경이나 진영 논린에서 비롯된 정치적인 대립의 산물이라고 인식하는 것을 의미한다”며 “언론개혁을 위한 내부적인 성찰의 기회와는 멀어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압박감·무력감·회의감 느끼는 기자들

압박감, 무력감, 회의감. 현재 언론 상황을 맞이한 기자들이 느끼고 있는 대표적 감정이었다. 연구진은 기자들의 직업관이 흐려지고 사기가 떨어지고 있다고 했다. 기자들도 스스로 인식하는 부분이다. 연구진은 “디지털 세상의 도래에 따른 취재 환경의 변화에 많은 압박감을 느끼면서, 스스로 어떻게 해볼 만한 상황은 아니라는 점에서 취재 환경 개선에 대해서 무력감을 토로하는 기자들이 많았다”고 했다.

C씨(종합일간지 기자, 2010년 입사)는 “전문지식을 따라가려면 10시간은 투자해야 하는데 10분 만에 기사를 쓰는 세상이니 기사의 질이 좋을 수 없다”고 했다. D씨(종합일간지 기자, 2018년 입사)는 “신문은 관공서나 정치인처럼 딱 볼 사람만 보고 일반 독자들은 구독하지 않는 세상이다. 유튜브와 포털과 같은 플랫폼은 커지는데 '계속 돈 받고 기자 생활할 수 있는 건 맞나'라는 생각이 든다”고 밝혔다.

구독 등 수익모델에 대해서는 부정적 시각이 강하게 드러났다. E씨(종합편성채널 기자, 2011년 입사)는 “구독 모델 같은 소리도 하지 말아라. 뉴스레터를 공짜로 구독하는 것도 안 읽는데 무슨 구독이냐”며 “일반인이 뉴스를 보는 것 자체가 에너지가 필요한 일인데 애초에 이 일이 구독 서비스에 적합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고 했다. 연구진은 “전통적으로 저널리즘 원칙 추구와 취재만 생각해 오던 기자들이 이렇게 생전과 관련한 수익과 매출을 고민해야만 하는 상황에 대한 무력감을 표현하는 기자들도 존재했다”고 밝혔다.

언론의 [단독] 장사와 자극적 보도에 대한 회의감을 느끼는 경우도 있다. F씨(종합일간지 기자, 2008년 입사)는 “속보 경쟁만큼 문제인 게 단독 경쟁”이라며 “단독 내용이 획기적으로 상황과 판을 뒤집을 만한 내용이 아닌 게 많다. 확인되지 않은 단독을 조회수 욕심 때문에 그대로 베끼다 보니 그 정보가 진짜인지, 현재 사건에서 어떤 의미가 있는지 돌아볼 시간적 여유가 없다”고 했다.

소모품 같은 일을 하고 있다고 토로하는 기자도 있다. G씨(온라인매체 기자, 2018년 입사)는 “대부분 기자가 확인 없이 그저 받아쓰거나 베끼는 행동을 하거나 기업체에서 준 보도자료를 복사해 붙여넣기 하는 수준으로 기사를 송고하고 있다”고 했다. 연구진은 “광고 중심의 비즈니스 모델에 매달려야 하는 생존의 몸부림은 결국 기자 직업 자체에 대한 회의와 연결되고, 기자의 사기를 전반적으로 떨어뜨리는 직접적인 계기로 작용하고 있다”고 밝혔다.

▲나는 기자인가? 기레기인가? 논문 표지. 사진=커뮤니케이션 이론 학술지 갈무리.

시민 저널리즘, 해결책 될 수 있을까

많은 기자들은 현실의 구조적 문제가 바뀔가능성이 보이지 않는다고 답했다. F씨는 “플랫폼 등 변화가 너무 빠른데 IT기업도 아닌 언론사가 이에 적응하기엔 무리가 있다”고 했다. E씨는 “돈 많은 사주에 의지하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다”며 자조 섞인 농담을 했다.

연구진은 “기자들의 인식에서 이미 클릭에 의존하는 상업적인 언론 비즈니스 모델을 대체할 다른 유형의 비즈니스 모델을 찾기는 어렵다는 허무주의가 중심적인 인식으로 자리 잡고 있다”고 했다.

연구진은 언론계 문제에 대해 당장의 뚜렷한 해결책이 없는 게 사실이지만, 시민과의 협력이 대안이 될 수 있다고 제안했다. 연구진은 “문제 해결에 있어 시민과의 협력은 필수적”이라며 “시민 저널리즘과의 연계를 통해 언론이 직면한 문제를 함께 풀어가는 것도 필요한 일이다. 시민과의 협력을 통해 언론의 역할을 다시 고민하고 새롭고 창의적인 길을 모색하는 것은 중요한 일”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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