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리인하 운 뗀 연준...파월은 언제 펀치볼을 가져올까 [매일 돈이 보이는 습관 M+]

노영우 전문기자(rhoyw@mk.co.kr) 2024. 1. 6.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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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은행의 역할은 파티가 무르익을 때 펀치볼을 치우는 것이다.’

1951년부터 1970년까지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의장을 지냈던 월리엄 마틴은 중앙은행의 역할을 이렇게 정의했다. ‘펀치볼’은 과일 칵테일을 담는 그릇으로 미국 파티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메뉴다. ‘펀치볼을 치운다’는 경제적 의미는 중앙은행이 경기가 너무 과열되기 전에 금리를 올려 과열을 막는다는 의미다. 파티의 흥을 깨는데 좋아할 사람은 없다.

이런 역할 때문에 중앙은행은 많은 사람들로부터 미움을 산다. 경기가 뜨거워 일자리가 넘치고 임금이 올라가는데 금리를 올려 경기에 찬물을 끼얹으면 주변의 눈총이 따가워진다. 그렇다고 경기과열을 제어하지 않는다면 경제에 거품이 생기고 이 거품이 터질 때 경제는 훨씬 더 큰 충격을 받는다. 역설적이지만 중앙은행이 펀치볼을 가져올 때도 있다. 경기가 침체 조짐을 보이면 이때는 금리를 내려 경기부양에 나선다. 2024년에는 전 세계 중앙은행에 펀치볼을 갖고 오는 임무가 주어졌다.

그동안 물가를 잡기위해 금리를 계속 올려왔던 각국의 중앙은행은 경기가 침체에 빠질 것이라는 염려가 커지자 이제는 금리를 내려 경기가 급강하하는 것을 막을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세계의 관심은 단연 미국에 집중된다. 미국이 금리를 내리면 다른 나라들도 잇따라 금리를 내릴 태세다. 금리를 내리는 정책은 파티에 펀치볼을 가져오는 것처럼 많은 사람들에게 환영을 받는다. 환영 받을 만한 정책은 하루라도 빨리하는 것이 좋다는 사람들도 많아지고 있다. 시장에서 연일 미국 금리인하론이 화제가 되고 있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하지만 펀치볼을 아무 때나 가져오는 것은 아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는 과연 언제 펀치볼을 가져올 것인가. 제롬파월 의장은 2023년 12월 마지막 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금리 동결 결정 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금리 인하를 고려하는 상황에 와 있다”고 직설적으로 말했다. 또 “2024년 경기침체 가능성이 있다”고도 했다. 더 나아가 “금리인하가 오늘 회의 주제였다”고 덧붙였다. 연준이 발표하는 성명서도 바뀌었다. 성명서 서두에 경제성장이 둔화됐고 인플레이션은 완화됐다고 명시했다. 과거 성명서에서는 볼 수 없었던 문구다. 연준 위원들이 작성하는 점도표에는 2024년 말 기준금리 수준을 4.6%로 예상하는 사람이 가장 많아 2024년 중 3차례 정도 0.25%포인트씩 금리를 내릴 것이라는 기대감을 심어줬다.

이런 정황을 살펴보면 미국이 2024년에 금리를 내리는 것은 확실해 보인다. 문제는 시점이다. 시장에서는 2024년 3월 금리인하설부터 연말 인하설까지 다양하다. 경제를 전망하거나 투자를 하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나름대로의 기준이 필요하다. 이런 시점에서 과거의 데이타는 중요한 나침반이 된다.

1980년대 이후 미국이 기준금리를 내려 경기 부양에 나선 적은 지금까지 5번 정도 있었다. 미국 연준의 금리 정책은 ‘물가안정과 고용안정’이라는 두 가지를 목표로 한다. 이와 관련한 지표를 살펴보면 연준이 어떤 상황에서 금리 인하를 단행했는지 파악이 가능하다.

먼저 1989년 5월 미국 연준 기준금리는 연9.8%까지 오른 후 떨어졌다. 당시 소비자물가상승률은 5%를 넘나들었다. 기대인플레이션율도 4%대였다. 물가는 고공행진을 거듭하고 있었지만 연준은 금리를 내리는 결정을 했다. 실업률이 문제였다. 당시 실업률은 5%대 초반을 기록했다. 실업과 관련한 다른 지표인 월간 비농업일자리수 증가폭은 1989년 초만 해도 28만 명대를 기록했지만 금리를 내릴 당시에는 12만2000명까지 떨어졌다. 금리 인하 결정을 한 후인 1989년7월 비농업일자라수 증가폭은 4만 명대에 불과했다. 국내총생산(GDP)성장률(전기 대비 연율)은 1989년 2분기 7.6%에서 3분기는 6%, 4분기는 3.7%로 계속 떨어졌다.

한 마디로 물가는 높았지만 경기가 침체 조짐을 보이고 고용환경이 크게 악화되자 연준은 금리 인하 카드를 꺼냈다. 연준이 뭘 중요하게 생각하는지를 보여주는 장면이다.

그다음 연준이 펀치볼을 가져온 시점은 1995년이다. 당시 연준은 연6%의 고금리를 1995년 2월부터 6월까지 유지한 후 7월 들어 금리를 0.25%포인트씩 낮추기 시작했다. 당시 소비자물가상승률과 기대인플레이션율은 3%대를 오르내렸다. 실업률은 5.5%내외를 기록했다. 비농업고용자 증가 수는 15만 명에서 23만 명 사이를 나타냈다. 하지만 1995년 5월에는 비농업고용자수가 1만5000명 감소한 것으로 나타나 시장에 충격을 줬다. 역시 물가보다 고용이 금리를 내리는데 중요한 변수였다.

다음 금리 인하시기는 2000년이다. 이때 미국 연준은 2000년5월부터 같은 해 12월까지 7개월간 기준금리를 연6.5%로 동결한 후 2001년 1월에 연5.5%로 1%포인트나 금리를 내렸다. 당시 소비자물가상승률은 3.5%를 오르내렸고 기대인플레이션율은 3% 내외였다. 실업률은 4%내외, 비농업고용자수는 증가와 감소가 엇갈리며 불안한 모습을 보였다. 당시는 ‘닷컴버블’이 붕괴되기 직전이었다. 금리인하 결정을 한 이후 미국의 실업률은 6%까지 치솟았고 월간 비농업일자리수도 최대 30만 명 줄었다. 당시의 금리 인하는 극심한 경기침체 직전에 이뤄져 선제적인 대응으로 평가된다.

그 다음 금리 인하시기는 금융위기때다. 2006년6월부터 2007년8월까지 총15개월 동안 미국은 연5.25%의 기준금리를 유지한 후 2007년9월에는 연4.75%로 기준금리를 0.5%포인트 내렸다. 이때는 미국 금융위기가 벌어졌을 당시다. 물가는 2%대를 기록했지만 실업률이 4%대 후반을 기록했다. 아울러 글로벌금융위기로 미국 시스템이 붕괴될 위기까지 처했다. 이 때 미국은 2008년 12월부터 제로금리 정책을 펴면서 경제의 충격을 줄이기 위해 발 벗고 나설 때였다.

2019년의 금리 인하는 상황이 조금 다르다. 당시 미국은 2018년12월부터 2019년7월까지 기준금리 2.5%를 유지하다가 2019년8월에 금리를 0.25%포인트 내렸다. 당시 미국 소비자물가는 1%대였고 실업률은 3%대 후반을 기록했다. 비농업고용자수는 2019년2월 2만2000명 감소한 것을 제외하고는 매월 증가세를 이어갔다. 경제적으로 보면 금리를 내릴 이유는 없었지만 당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제롬파월 연준의장에게 금리를 내릴 것을 직접적으로 압박했다. 이 당시 금리인하는 경제여건보다 미국 대통령의 압력에 의해 내린 것으로 유명하다.

현재의 상황을 과거와 비교해보면 미국의 금리정책과 관련한 몇 가지 시사점을 얻을 수 있다.

미국은 2023년 7월부터 계속 기준금리 연5.5%를 동결해오고 있다. 이 기간 소비자물가상승률은 3%대를 기록하고 있고 기대인플레이션율도 비슷한 수준이다. 실업률은 3%대 후반을 나타내면서 완전고용에 근접해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비농업고용자수도 15만 명에서 23만 명 사이를 유지하면서 탄탄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과거 금리를 내리기전 금리 정점에서 금리를 동결했던 기간의 평균 지표와 현재를 비교 해봐도 비슷한 얘기를 할 수 있다.

1989년 금리 고점에서 금리를 동결한 기간은 2월부터 9월까지 7개월이다. 이 기간 중 소비자물가상승률은 평균 4.9%, 기대인플레이션율은 3.9%를 기록했다. 또 실업률은 5.2%, 비농업고용자증가수는 평균 15만1000명을 기록했다. 1995년 금리 고점에서 금리를 동결한 기간에는 물가상승률이 3%, 실업률은 5.6%였다.

이런 방식으로 각 시기의 평균 물가와 고용상황을 비교해보면 2023년 7월부터 10월까지는 소비자물가상승률은 평균 3.5%, 실업률은 3.8%를 기록하고 있다. 소비자물가상승률은 과거에 비해 높은 수준이고 실업률은 최저 수준이다. 특히 비농업고용자수 증가는 최근 평균 21만2000명을 기록해 과거 어느 때보다 높다.

물가는 높고 고용은 과거 금리 인하 시점보다 훨씬 좋은 상황인데 금리를 내릴 이유가 없다. 앞으로 미국 연준이 금리 인하에 들어가는 시점을 언제로 잡을까. 과거를 살펴보면 연준이 금리인하 결정을 할 때 물가 지표는 그리 중요하지 않을 것 같다. 과거 물가가 3%가 훌쩍 넘어도 금리를 내린 경험이 종종 있기 때문이다.

물가보다 더 중요한 지표는 고용이다. 미국의 실업률 3%대는 거의 완전고용 수준이다. 완전고용 수준에서 금리를 내려 경기를 부양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경기 침체로 실업률이 최소한 4%는 넘어야 금리 인하를 시작할 것으로 예상된다.

더 중요한 지표는 비농업고용자수 증가폭이다. 지금처럼 비농업고용자수 증가폭이 20만 명을 오르내리는데 금리를 내린 적은 없다. 보다 구체적으로는 15만 명 이하로 떨어져야 연준은 경기침체와 고용불안에 대한 경각심을 갖고 금리를 내릴 것으로 보인다.

다만 한 가지 변수는 미국 대선이다. 대선을 앞두고 정치 논리가 기승을 부린다면 경제지표와 무관하게 금리를 내릴 가능성은 여전히 남아있다. 특히 제롬 파월 연준의장이 정치적 압력에 취약한 인물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그런 가능성이 갈수록 커질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미국은 2024년 11월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있다. 아마 예상대로라면 조 바이든 현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간의 한판 승부가 예상된다. 이 대선은 미국은 물론 전 세계가 주목하는 이벤트다. 트럼프 대통령은 벌써부터 “바이든 대통령이 고금리와 인플레이션으로 미국 국민을 도탄에 빠뜨렸다”고 비판하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 입장에서는 이런 상황에서 경기가 침체에 빠진다면 트럼프와의 경쟁에서 이기기 어려운 상황이다. 금리를 낮춰 국민들의 부담을 줄여주고 경기를 살려 경제를 활성화 하는 것이 어느 때보다 절실한 상황이다. 통화정책의 시차는 3분기가 지나야 비로소 효과를 발휘한다. 파월 의장은 ‘트럼프 트라우마’도 있다. 지난 2019년 금리를 올려야 할 시기에 트럼프 대통령의 압박에 못 이겨 금리를 낮춰 통화정책에 실기했다는 비판은 지금까지도 꼬리표처럼 따라 다닌다. 트럼프 대통령의 당선 가능성이 높아진다면 파월 의장에 대한 금리 인하 압박도 거세질 것으로 예상된다.

[노영우 국제경제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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