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남수의 視線] 이재명 암살 시도를 불러온 파시즘의 부활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를 살해하려고 한 피의자 김 모(67)씨가 4일 구속됐다. 부산지법 성기준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김 씨를 살인미수 혐의로 검찰이 청구한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피의자 김 씨는 지난 2일 오전 부산 가덕도 신공항 부지를 둘러본 뒤 기자들과 문답을 진행하며 차량으로 이동하던 이 대표의 왼쪽 목을 흉기로 찌른 뒤 현장에서 경찰에 의해 체포됐다. 그는 이 대표의 동선을 사전에 파악하는 등 주도면밀하게 범행을 준비한 것으로 밝혀졌다. 체포된 김 씨는 범행에 앞서 변명문을 준비하고, 유치장에서는 책을 읽는 등 전형적인 확신범의 행태를 보이고 있다. 야당 대표를 직접 겨냥한 사건으로 국민은 충격을 받았다.
이 사건을 두고 ‘테러’ ‘피습’ ‘암살’ 등의 단어들이 난무하고 있지만, 사건의 정황과 수법으로 보아 단순히 피습으로 보기에는 사건이 엄중하다. 사건 직후 윤석열 대통령도 야당 대표에 대한 테러라고 규정했다. 특히 린치를 가는 정도에 그치지 않고 분명한 살해 의도를 가지고 사전에 치밀하게 준비하고, 직접 행동에 나선 김 씨의 행태로 보아 ‘암살’을 시도했다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감정적 동요없이 냉정하게 실행한 점은 섬찟하기까지 하다. 그저 과대망상의 정신이상자거나 극단주의자의 우발적 범죄라고 여길 수 없는 이유다. 어쩌다 이런 일이 벌어지게 됐을까.
지난해 5월 윤석열 대통령이 취임하고 이어 야당 대표가 된 이재명 대표 간에는 단 한번의 공식대화도 없었다. 행사장에서 잠깐 인사를 나눴을 뿐 대통령과 다수 의석을 차지하고 있는 야당 대표와의 실질적인 대화는 전무했다. 박빙으로 승부가 갈린 지난 대선 여파 때문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이 대표가 재판을 받고 있는 중범죄자라는 윤 대통령의 인식 때문이다. 여당과 야당 간의 대화도 형식에 그쳤다. 여·야 간 협치는 고사하고 사사건건 충돌했다. 여·야 가의 극한 대립과 양극단의 정치는 국민의 분노 게이지만 높였다. 그 분노가 상대를 악마화하는데 기름을 부었고, 결국 이재명 암살 시도 사건을 불러왔다.
2024년이 밝았다. 그러나 대결정치는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지난해 12월 26일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에 취임한 한동훈 전 법무부 장관은 취임 수락연설에서 “중대 범죄가 법에 따라 처벌받는 걸 막는 게 지상 목표인 다수당이, 더욱 폭주하면서 이 나라의 현재와 미래를 망치는 것을 막아야 한다. 그런 당을 숙주삼아 수 십 년간 386이 486, 586, 686되도록 썼던 영수증을 또 내밀며 대대손손 국민들 위에 군림하고 가르치려 드는 운동권 특권정치를 청산해야 한다”라면서 “이재명 대표의 민주당이, 운동권 특권세력과 개딸 전체주의와 결탁해 자기가 살기 위해 나라를 망치는 것을 막아야 한다”고 했다. 듣기에 따라서는 이재명 대표와 민주당은 중범죄 집단이며, 척결해야 할 대상인 듯한 뜻으로 읽힌다.
윤석열 대통령의 신년사에도 이와 비슷한 내용이 있다. 부패한 패거리 카르텔과 싸우지 않고는 진정 국민을 위한 개혁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자기들만의 이권과 이념에 기반을 둔 패거리 카르텔을 반드시 타파하겠다고 한 것. 특히 한동안 잠잠했던 이념 문제까지 언급하면서 적대적이었던 그동안의 입장에서 크게 바뀌지 않았다. 윤 대통령의 신년사와 한동훈 비대위원장의 발언을 통해 새해 정치권의 변화를 기대했던 국민은 실망할 수밖에 없었다. 더구나 최근 국회를 통과한, 이른바 ‘쌍특검’에 대한 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는 총선 정국과 맞물려 대결정치가 더욱 격려해질 것을 예고했다.
이런 타협없는 양극단의 정치지형이 이재명 대표에 대한 암살 시도로 이어졌다고 할 수 있다. 정우용 역사학자는 한 유튜브 방송에 출연해 이번 사건을 파시즘적 국가 내부 적에 대한 척결, 타파 주문 가운데 나온 사건이라고 했다. 그는 “반유대 정서가 강했던 유럽에서도 최소한의 도덕적 규제가 있었다”라면서 “그러나 히틀러는 유대인을 국가의 적으로 규정, 테러를 정당화함으로써 파시즘적 학살을 정당화할 수 있었다”고 분석했다. 현 정부의 이재명 대표를 중범죄자로 악마화하는 바람에 그를 징치해도 된다는 정당성을 부여한 꼴이 됐다는 것이다.
실제로 상대를 ‘이념에 기반한 패거리 카르텔’이라든가 ‘공산 전체주의 반국가 세력’이라고 규정하고 이를 반복하게 되면, 지지층에게는 종교적 신념을 갖게 할 뿐만 아니라 공격성을 강화할 수도 있다. 이는 적에 대한 테러가 정당하다는 인식을 확산시키게 된다. 자신의 극단적 행동 역시 정당화되기 때문에 반사회적 행동임에도 스스로에게는 국가를 위해 헌신했다는 착각에 빠지게 한다는 것이다. 마치 자신을 항일운동에 몸을 던졌던 의사인 냥 여기게 된다면 이는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그야말로 적대적 정치가 낳은 시대의 괴물이 아닐 수 없다.
민주주의가 막강한 권력에 의해 유린당하는 순간 어느 틈엔가 파시즘이 부활한다. 한때 파시즘의 전형인 군사독재와 싸워 민주화를 이뤘지만, 민주화로 열린 공간에 대화와 협치가 자리를 잡지 못하고 있는 사이, 조롱과 경멸, 증오와 적대감이 그 자리를 차지하게 된 것 아닌가. 많은 희생을 치르면서 얻어낸 민주주의라는 공간에서 역설적이게도 파시즘이 부활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게 된다. 이재명 암살 시도가 불러온 파시즘의 부활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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