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호도 응원한다… 겸손한 고우석의 야망, 오승환 업적에 도전할 수 있을까
[스포티비뉴스=김태우 기자] 샌디에이고와 계약을 마무리하고 6일 오전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귀국한 고우석(26‧샌디에이고)은 인터뷰 내내 겸손했다. 아직 메이저리거가 된 것을 실감하지 못한다고 했다. 앞으로의 목표나 야망 등은, 진짜 실력으로 메이저리거임을 인정받은 뒤로 미루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고우석은 현지의 큰 기대를 받고 있는 엄연한 메이저리거다. 샌디에이고와 2년 보장 450만 달러에 계약했다. AP 통신 등 현지 언론의 보도에 따르면 3년차 300만 달러의 옵션, 그리고 매년 출전 경기 수나 마무리 경기 수에 따라 걸린 인센티브까지 포함하면 3년 최대 940만 달러를 받는 조건이다. 비록 앞서 메이저리그에 진출한 이정후(6년 1억1300만 달러)나 다른 슈퍼스타들에 비하면 초라한 금액이지만, KBO리그 불펜 투수의 선구자적 임무라는 점에서 어깨가 가볍지 않다.
샌디에이고의 기대도 크다. 고우석의 포스팅 마감 시한이 다가오자 제안을 했다. 조시 헤이더가 떠난 불펜의 뒷문을 막아줄 선수 중 하나로 고우석을 지목했다. 고우석은 마쓰이 유키, 로베르트 수아레스와 더불어 샌디에이고의 7~9회를 책임질 것으로 예상된다.
대선배인 박찬호도 응원의 메시지를 남겼다. 박찬호는 6일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고우석과 공항에서 찍은 사진을 올리며 ‘LG 고우석은 새해부터 파드리스 고우석으로… 그의 도전에 축하를 보내며 그의 시즌에 행운을 기원합니다’라고 썼다. 박찬호는 코리안 메이저리거의 선구자격으로 현재도 아시아 최다승(124승) 기록을 가지고 있는 레전드다. 샌디에이고 구단과 예전부터 친분이 있어 이 구단이 낯설지 않은 인물이기도 하다.
고우석은 귀국 후 “샌디에이고는 처음 가봤다. 기대를 많이 하고 갔는데 날씨도 너무 좋고 눈에 보이는 풍경들을 보면서 아름답다고 느꼈다”면서 “사실 아직 첫 등판을 하지 않아서 메이저리그에 대해 크게 와닿는 점은 없다. 경쟁을 해야 하는 위치니까 잘 이겨내서 메이저리그 로스터에 들어간다면 그때 실감이 날 것 같다. 머릿속으로 어릴 때부터 꿈꿨던 장면은 있지만 아직 메이저리거라고 생각하고 있지 않아서, 메이저리거라고 할 수 있을 만큼 능력을 보여드려야 그때 말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자세를 낮췄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그가 오승환의 성공을 이어 갈 유일한 후보라고도 평가한다.
◆ 메이저리그는 한국 불펜의 무덤? 오승환 성공 따라갈까
사실 KBO리그 선수들의 메이저리그 도전은 계속해서 그 역사를 이어 오고 있다. 다만 상당수 선수들이 야수였고, 투수들은 KBO리그를 대표하는 선발 투수들이었다. 류현진 김광현 양현종이 그랬다. 근래 들어 KBO리그에서 메이저리그에 직행한 불펜 투수는 사례가 없다. 굳이 하나가 있다면 오승환이다. 오승환은 KBO리그를 평정한 뒤 일본 무대로 진출했고, 일본에서도 좋은 활약을 한 뒤 30대 중반의 나이에 메이저리그에 진출했다. KBO리그에서 곧바로 메이저리그에 간 건 아니다.
메이저리그 스카우트들은 KBO리그 스타들의 재능에 대해서는 높게 평가하지만, 불펜 투수 쪽에서는 다소 박한 평가를 내리는 경향이 있다. 메이저리그의 구속 혁명 이후 불펜에는 시속 100마일(161㎞)을 던지는 선수들이 꽤 많이 늘어났고, 95마일(153㎞)은 말 그대로 평균 수준으로 여겨질 정도다. 이에 비해 KBO리그 불펜 투수들은 기본적인 구속 자체가 떨어진다. 오승환의 경우는 특유의 구속 이상의 구위와 디셉션 동작이 높은 평가를 받은 축에 속했다.
그런 측면에서 고우석의 이번 계약도 어느 정도 이해는 된다는 평가다. 고우석은 2년간 450만 달러를 보장받았고, 연봉 자체만 따지면 연 평균 200만 달러 수준이다. 메이저리그 불펜 투수들의 평균 연봉은 200만 달러를 살짝 웃도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KBO리그에서는 최고 마무리 투수지만, 메이저리그에서는 성공을 장담할 수 없는 평범한 수준으로 본 것이다. 이번 계약 총액에서도 이런 시각은 어느 정도 드러난다.
하지만 오승환도 처음부터 꽃길을 걸은 건 아니었다. 연봉을 생각하면 ‘도전’이라는 단어에 더 가까웠다. 당시 세인트루이스로부터 2년 보장을 받은 것도 아니었다. 1+1년이었다. 1년 뛰는 것을 보고, 그 다음을 판단하겠다는 심산이었다. 그만큼 당시까지만 해도 한국인 불펜 투수에 대해 메이저리그는 확신을 가지지 못했다는 것이다. 옵션이 실행돼도 보장받는 금액은 2년 총액 525만 달러 수준이고 나머지는 인센티브였다. 한국과 일본 모두에서 성공한 오승환의 경력을 고려하면 박한 대우였다.
그러나 오승환은 실력으로 증명했다. 2016년 중간 계투로 시즌을 시작한 오승환은 안정적인 투구로 세인트루이스 불펜을 지켰다. 메이저리그 평균 대비 구속은 빠르지 않지만, 워낙 힘이 좋은 패스트볼에 메이저리그 타자들이 잘 보지 못했던 독특한 디셉션 동작으로 승승장구했다. 반대로 개막 마무리이자 실적 있는 마무리였던 트레버 로젠탈은 부진했다. 그러자 보다 못한 세인트루이스는 시즌 중반부터 오승환을 마무리로 기용했다. 오승환의 승리였다.
오승환은 2016년 76경기에 나가 무려 79⅔이닝을 던지는 등 전천후로 활약했다. 6승3패19세이브를 기록했고, 경기를 마무리한 경기 수 또한 35경기로 인센티브 요건을 많이 채웠다. 오승환은 2017년 개막 마무리로 출전하기도 했다. 비록 2016년보다는 떨어지는 성적으로 결국 마무리 보직을 내놓기는 했으나 20세이브를 추가하며 자존심은 살렸다.
오승환은 2018년 토론토와 콜로라도를 거쳤고, 2019년에는 콜로라도 소속으로 21경기에 나갔다. 그렇게 메이저리그에서 4년 동안 232경기에서 16승13패42세이브 평균자책점 3.31을 기록하고 메이저리그 생활을 접었다. 오승환은 2020년 시즌을 앞두고 친정팀 삼성으로 돌아왔다. 오승환이 전성기에 메이저리그로 갔다면 더 큰 성공을 거뒀을 것이라는 게 대다수의 시각이다.
물론 고우석은 오승환만한 경력을 가지고 있지는 않다. 그러나 고우석은 아직 젊다. 오승환은 전성기에서 내려올 시점인 30대 중반에 메이저리그에 갔지만, 고우석은 이제 막 전성기를 시작할 나이다. 신체 능력이 가장 왕성할 때이며 경험도 충분히 쌓였다. 샌디에이고가 고우석에 기대를 거는 대목이다. 고우석이 꼭 마무리는 아니더라도 7‧8회를 지키는 셋업맨 몫만 할 수 있으면 2년 뒤 FA 시장에서 지금보다 훨씬 더 좋은 대우를 받을 수 있다. 고우석은 그때도 20대 후반이다. 대체선수대비 승리기여도(WAR) 1이상의 중간 계투 투수들은 요즘 시장에서 못해도 500~600만 달러의 좋은 대우를 받는다.
한편으로 KBO리그 불펜 투수들에 대한 시선과 평가도 고우석의 어깨에 달렸다. 현재 메이저리그 구단 스카우트들은 고우석을 비롯한 몇몇 불펜 투수들에게 큰 관심을 가지고 있다. 사이드암으로 투구폼의 이점을 가질 수 있는 팀 후배 정우영에 대한 관심이 은근히 폭발적이고, 조상우 박영현 등 좋은 구위를 가진 투수들도 관심이 있다. 고우석이 메이저리그에서 통한다면 이들의 빅리그 진출에도 좋은 길이 닦일 수 있다.
고우석도 철저한 준비를 약속했다. 고우석은 "2월 중순쯤 첫 경기에 들어가거나 할 것 같다. 그때까지 몸을 잘 만드는 것이 첫 번째 같다. 연습경기 하고 타자와 승부하면서 이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야 한다. 로스터에 들어가야 메이저리거라고 말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서 "일단 집에서 좀 쉬고, 다음 주부터는 하던대로 운동하면서 일정을 조율해야 할 것 같다"고 이야기했다. 철저한 준비로 성공의 길을 닦을 수 있을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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