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목가게에 '아마존식 구독' 도입하면 벌어질 일 [분석+]
둔화세 보이는 구독경제 산업
고객 지갑 열어젖히기 어려워
‘퀴비’ 초단기 폐업에 숨은 의미
아마존처럼 성공하는 방법 간단
구독료보다 더 좋은 혜택 제공
‘아마존 전략’ 작은 기업에 적합
골목상권에도 적용할 수 있어
도쿄 미용실 멤버십 좋은 사례
# 한국의 골목은 위기다. 국민들이 지갑을 좀처럼 열지 않는 상황에서 "팬데믹 때보다 더 경영이 힘들다"고 토로하는 상인을 만나는 건 어렵지 않다. 생존 기반이 흔들리는 골목상인의 얼굴에 웃음꽃이 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 필자는 '구독경제'가 골목상권의 유용한 도구가 될 수 있다고 제안한다. 가령 멤버십 서비스로 충성고객을 늘린 아마존의 전략을 '골목상권'에 적용하면 반등의 기회를 모색할 수도 있다.
구독경제는 더 이상 새롭지 않다. 너도나도 하고 있으니 혁신모델이라고 칭하기도 어렵다. 성장세도 한풀 꺾였다. 대표적인 구독경제 비즈니스 모델인 OTT 산업에서 이런 신호가 뚜렷하다. 최근 넷플릭스가 나름대로 실적을 내고 있긴 하지만, 산업이 커졌기 때문이라고 보긴 어렵다. 구독료를 올리고 새 요금제를 도입한 덕분이다.
디즈니플러스 같은 후발주자는 여전히 사업 확장에 애를 먹고 있다. 유튜브나 아마존 같은 글로벌 기업들이 '독점 횡포'란 비난을 감수하면서까지 멤버십 비용을 올리는 것도 예년만큼 수익이 나지 않아서다.
몇년 전까지만 해도 혁신의 아이콘으로 불렸던 구독경제가 웬일인가 싶지만, 따지고 보면 구독경제가 인기를 한창 끌던 시절에도 '논란의 여지'는 많았다. 대표적인 게 '퀴비의 실패'다. 지금은 낯선 사명일지 모르지만, 퀴비가 등장한 2020년엔 글로벌 IT업계가 주목하는 구독경제 기업이었다.
'슈렉' '마다가스카' 등을 제작한 스타 PD이자 드림웍스 창업자 제프리 카젠버그와 이베이ㆍHP를 경영했던 스타 CEO 맥 휘트먼 두 사람이 손을 맞잡았다는 것만으로도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비즈니스 모델도 나쁘지 않았다. 퀴비는 10분 이하의 '쇼트폼 영상'을 주력으로 올리는 플랫폼이었다. 호흡이 긴 영상이 대부분인 유튜브와 1분 안팎의 짧은 영상만 올리는 틱톡 사이를 파고들겠다는 일종의 틈새 전략이었다.
이렇게 능력 있는 경영진과 매력적인 모델로 퀴비는 출범하기도 전에 2조원이 넘는 금액을 투자받았다. 월트디즈니, 소니, 21세기 폭스, NBC유니버설 등 투자자의 명단도 화려했다. 말이 스타트업이지 규모는 빅테크나 다름없었다.
퀴비는 출범 후에도 숱한 화제를 뿌렸다. 할리우드의 유명 감독과 배우를 끌어모아 콘텐츠를 제작했고, 아침과 저녁 시간엔 뉴스도 방영했다. 플랫폼의 기술력도 훌륭했다. 이용자가 스마트폰을 들고 있는 가로ㆍ세로 방향에 맞춰 동영상이 변하는 기술인 '턴 스타일'을 내세웠다. 구독료도 월 7.99달러(광고 있는 요금제 4.99달러)로 10달러 안팎의 요금을 받던 경쟁사보다 저렴했다. 퀴비는 "연내 유료 가입자 750만명을 확보하겠다"는 거창한 목표도 세웠다.
그런데 퀴비는 고작 반년 만에 문을 닫았다. 퀴비의 폐업엔 여러 이유가 있었지만, 결정적인 패인은 유료 구독자를 확보하는 데 실패했다는 점이었다. 7.99달러를 내고 볼 만한 콘텐츠가 없었던 게 치명타로 작용했다.
퀴비는 쇼트폼 전용 플랫폼답게 '모바일 온리(Mobile Only)'를 추구했는데, 무료 서비스인 틱톡이나 유튜브보다 나을 게 없었다. 비싼 돈을 들여 오리지널 콘텐츠를 몇개 내놓긴 했지만, 넷플릭스나 디즈니플러스가 갖춘 콘텐츠 포트폴리오와 비교하면 초라한 수준이었다.
퀴비의 초단기 폐업은 구독경제를 모색하는 기업에 많은 시사점을 준다. 아무리 콘셉트가 좋아도 고객이 체감하지 못하면 말짱 도루묵이기 때문이다. 가장 중요한 관건은 고객이 구독료 이상의 혜택을 누리고 있느냐다.
이런 공식은 구독경제의 가장 큰 성공 사례인 아마존을 보면 잘 드러난다. 2018년 JP모건은 아마존의 멤버십 서비스인 아마존프라임의 가치가 연 784달러라고 분석했다. 당시 아마존프라임의 연회비는 119달러였는데, 구독자는 구독료 대비 6~7배 이상의 경제적 혜택을 얻고 있었던 셈이다.
이마트ㆍ롯데마트 등 대기업이 구독경제 분야에서 의미 있는 성장을 하지 못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 풀이할 수 있다. 특히 대기업 멤버십의 경우, 고객에게 필요하지 않은 상품을 같은 그룹의 서비스란 이유로 밀어 넣었다가 낭패를 본 사례도 숱하다. 고객이 제대로 누리지도 못하는데 혜택이라고 주장하는 건 어불성설이다.
그렇다면 구독경제는 이제 성장성이나 가치를 완전히 잃은 걸까. 그렇진 않다. 고객에게 완전히 새로운 경험이나 확실한 혜택을 부여한다면 누구나 구독경제의 성공모델이 될 수 있다. 특히 필자는 지금의 상황이 대기업이 아닌 스타트업이나 소상공인에게 유리하게 작용할 것으로 본다.
가장 큰 장점은 다른 기업과의 협업이 쉽다는 거다. 경쟁사와의 협업을 결정하기까지 상당한 숙고를 해야 하는 대기업과 달리 몸집은 작은 기업은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지면 얼마든지 힘을 합칠 수 있다. 구독경제에서 협업이 가능하다는 건 고객에게 줄 수 있는 혜택이 더 늘어난다는 뜻이다. 작은 기업일수록 민첩하고 변화에 민감하다는 점도 강점이다. 구독을 통해 고객이 원하는 '진짜 혜택'을 그만큼 빠르게 파악할 수 있다.
필자가 이렇게 생각하는 근거를 소개해 보자. 일본 도쿄에선 수백개의 미용실이 연합해서 구독 멤버십을 만든 사례가 있다. 커트 비용이 우리나라 돈으로 4만원에 이를 만큼 지나치게 비싸다는 점을 파고든 일종의 협업 전략이었다. 그렇다고 커트 단가를 낮춘 건 아니다. 대신 머리 감겨주기, 간단한 스타일링 등 쉽게 협업할 수 있는 서비스를 '무료화'했다.
이 멤버십에는 도쿄 안팎에서 출장을 다니는 회사원이나 등하교하는 학생이 주로 가입했는데, 낯선 지역에서 급하게 머리를 만져야 할 때 유용하게 쓰였다. 주목할 점은 멤버십 운영에 따른 미용실의 매출 증가 효과가 상당했다는 점이다. 스타일링 등 부가 서비스를 공짜로 받은 고객의 수요가 커트와 염색으로 이어졌기 때문이었다. 그 결과, 이 멤버십에 가입한 미용실은 현재 1000여개로 훌쩍 늘어났다.
한국에서도 '골목의 구독'을 꾀한 시도가 없었던 건 아니다. 팬데믹 기간, 서울의 한 시장에선 여러 업종의 식음료 상점이 모여 협동조합을 조직했다. 이들은 각각의 주력 요리를 담은 반찬 구독서비스를 시작했는데, 아쉽게도 성공을 거두진 못했다.
일본 도쿄의 미용실과 우리나라의 식음료 상점이 달랐던 건 '구심점'과 '시스템'이 없었다는 점이었다. 서로 다른 가게들이 마음을 모아 협업을 꾀하긴 했지만, 고객 편의 서비스가 부족했다. 전화로 서비스 가입을 받고 멤버십 결제도 통합된 공간이 아닌 각각의 가게에서 하다 보니 불편함이 이만저만 아니었다.
사실 이런 편의는 영세한 골목상권이 손대기 어려운 영역이긴 하다. 전통시장의 상인들은 멤버십과 구독이란 서비스 앞에서 두려움을 느꼈을 수 있다. 하지만 솔루션이 없었던 건 아니다. 지자체 같은 공공이 이들의 디지털 전환을 지원했다면, 식음료 상점이 추진했던 구독 서비스는 더 확산했을 거다. 반대로 말하면, 편리한 시스템만 갖춘다면 한국에서도 골목상권의 구독경제가 성공할 수 있단 얘기다.
구독경제는 골목상권에 많은 이점을 안겨 줄 공산이 크다. 구독 모델을 이용하는 소비자는 기본적으로 비용을 주기적으로 지불한다. 기존 고객의 이탈을 막고 중장기적인 실적을 올릴 수 있다. 골목에서도 아마존의 성공 전략이 통할 수 있다는 거다. 한국의 골목에도 아직 '기회'가 있다.
전호겸 교수
kokids77@naver.com
김다린 더스쿠프 기자
quill@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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