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투 속 책값 액수는 ‘묻지마’… 정치자금 창구로 여전히 건재 [심층기획-출판기념회의 정치]
현행법상 수입·세금 신고 의무도 없어
억대 수익 정계정설… ‘쌈짓돈 모금’ 전락
의원들 “세 과시·유권자 만남 기회” 항변
일부 의원은 ‘뇌물수수 혐의’ 유죄 선고
보좌진 대필·외부작가 동원 집필도 허다
법 발의 등 자정 외치나 십수년째 공회전
선관위 “법 개정 논의 서둘러 진행돼야”
최근 현직 공무원의 출판기념회 개최로 논란이 일고 있다. 총선 출마를 위해 사의를 표명했다가 감찰을 받고 있는 김상민 대전고검 검사는 출마 예정지인 창원 의창구에서 오는 6일 예정대로 출판기념회를 진행한다고 밝혔다. 수원 출마를 준비 중인 방문규 산업통상자원부 장관도 오는 7일 출판기념회를 홍보해 현직 장관 신분에 적절하지 않다는 비판이 제기되기도 했다. 방 장관 측은 “개별적으로 친분 있는 사람한테만 보냈다”고 해명했다.
더불어민주당 황희 의원은 2021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 2019년 출판기념회 수익금이 7000만원 정도였다고 소명한 바 있다. 통상 현역 의원이 출판기념회를 열면 적게는 수천만원에서 많게는 억대의 수익이 남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정확한 규모는 해당 정치인과 최측근에게만 공유되기 때문에 외부로 알려지지 않는다.
출판기념회를 통한 책 판매 수익은 현행법상 아무런 신고·보고 의무가 없다 보니 축의금처럼 쌈짓돈 모금행사로 전락하는 경우가 많다. 이는 세금 신고 의무도 부과되지 않는다. 한 기업의 대관 담당 관계자는 “출판기념회 보도자료가 나오면 우리 쪽 의원인지 먼저 체크해 인사를 한다”며 “책은 사실 별다른 필요가 없다 보니 여러 권 값을 내고도 실제 한두 권만 받아온다”고 했다.
정치인의 책을 다수 출판한 한 출판사 관계자는 “책을 내기 전에 통상 몇 권이 팔릴지 서로 약속을 한다”며 “출판사 입장에서도 보장된 수익이다 보니 마다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이어 “서점이 아닌 출판기념회 행사장에서 팔면 책값은 사실 돈 내는 사람 마음 아니겠냐”고 말했다.
실제 2007년 이명박 전 서울시장이 유력 대선주자로 부상하던 당시 일산 킨텍스에서 열린 출판기념회에는 2만명의 넘는 인파가 몰렸고, 김영삼 전 대통령을 비롯해 현역의원 60명이 참석했지만 최근 이런 대규모 출판기념회는 사라지는 추세다.
◆여의도에서도 외면받는 정치인의 책
출판기념회의 또 다른 문제는 정치인들이 자신의 정견을 알리기 위한 출판 대신 돈벌이에 치중하다 보니 정작 책의 질에는 관심이 적다는 것이다. 한 초선 국회의원은 “전문가 출신의 특정 의원 책 두 권을 제외하곤 모두 버렸다”며 “출판기념회를 목적으로 나오는 정치인의 책은 여의도 사람들도 읽지 않는다는 생각에 나도 책을 써보려는 마음을 접었다”고 말했다. 세계일보가 21대 국회 전반기(2020년 6월∼2022년 5월) 국회도서관 대출 목록을 조사한 결과, 상위 10위권 내에 정치인이 쓴 책은 한 권도 없었다.
◆십수년째 공회전, 21대 법안 발의 0건
다만 일각에서는 의원들의 정치 후원금 모금 한도가 2004년 이후 선거가 있는 해 3억원, 그외에는 연간 1억5000만원으로 상한을 정한 뒤 20년간 오르지 않은 현실적인 문제를 개선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총선 경험이 많은 정치권 한 관계자는 “선거를 한 번 치르려면 지역구 관리와 선거를 도와줄 사람 등 많은 인력과 자원이 필요한데 이 돈을 다 어디서 마련하겠느냐”며 “그나마 출판기념회는 오는 사람이라도 추산되고 서로 보는 눈이 있어 불법적인 면이 그나마 제어되는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조병욱·김승환·최우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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