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탄생 100주년] 준비된 대통령의 '통합의 정치'…남북관계 전환점 마련
분단 55년 만에 만난 남북 정상…세계 평화 기여 노벨상 수상까지
정적들 마저 포용한 통합 리더십…과거사 청산으로 국민통합
[서울=뉴시스] 이종희 기자 = 올해는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의 탄생 100주년을 맞이하는 해다. 김 전 대통령은 1924년 1월6일 전라남도 신안군 하의면에서 태어나 1998년부터 2003년까지 15대 대통령으로 재임한 뒤 2009년 8월18일 서거했다.
김 전 대통령은 한국 민주화를 주도하며 정치 발전을 이끈 지도자다. 그는 군사독재 시절 목숨까지 위협받는 탄압 속에서도 민주화를 위해 싸웠던 투사였으며, 민주화 이후에는 평화적 정권교체의 주인공이 됐다.
네 번의 도전 끝에 대통령으로 당선돼 5년 간 재임 기간 동안 자신만의 철학으로 인권과 민주주의, 남북 관계 등 다양한 분야에서 업적을 남겼다.
대통령 후보 시절 표어 그대로 '준비된 대통령'이었던 김 전 대통령은 재임 시절 IMF(국제통화기금) 관리를 조기 졸업하며 외환위기를 성공적으로 극복하고, 남북정상회담과 6·15 남북 공동선언을 통해 남북 관계를 대결에서 공존으로 변화시켰다.
김 전 대통령은 대통령 당선 이후 자신을 죽이려했던 정적들도 포용하는 통합의 정치를 구현해 어렵게 쟁취한 민주화를 안착시켰다.
김 전 대통령은 자신을 혹독한 겨울 속에 피어나 꿋꿋이 살아남는 인동초에 비유했다. 고난을 겪으면서도 불의와 타협하지 않고 끝내 이겨내는 인동초와 같은 그의 삶은 서거 이후 14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여야 정치권에 큰 울림을 주고 있다.
헌정사상 첫 평화적 정권교체 달성…IMF 국난 속 '성공한 대통령'
김 전 대통령의 당선은 그 자체가 한국 정치사의 큰 의미를 갖는다. 헌정사상 첫 평화적 정권교체를 이뤘기 때문이다.
민주화의 결과로 대통령 직선제가 도입돼 두 번의 대선이 치뤄졌지만 정치 세력 교체는 지지부진한 상황이었다. 야당의 당수였던 김 전 대통령의 당선은 세력 교체를 의미하면서 한국 정치사에 상징적인 사건으로 남게 됐다.
다섯 번의 죽을 고비를 넘기고 네 번의 대선 도전 끝에 대통령직에 올랐지만 김 전 대통령 앞에 놓인 대한민국의 상황은 녹록치 않았다.
짧은 기간 안에 압축적인 성장을 이룩해 '한강의 기적'으로 불리며 경제 발전을 한 나라가 됐지만 1997년 발생한 외환위기로 순식간에 국가 부도의 위기로 내몰렸기 때문이다.
김 전 대통령은 15대 대통령 취임사를 발표하면서 외환위기 이후 극복 과정에서 국민들이 겪어야 할 어려움을 말하며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다. 국가부도 위기 앞에 각계 각층이 뼈를 깎는 고통을 겪어야 하는 만큼 국정책임자의 역할이 어느 때보다 중요한 시기였다.
김 전 대통령은 당선과 동시에 외환위기 극복을 최우선 과제로 삼았다. IMF와 추가 협상을 통해 긴급 자금을 조달받고 외채 만기를 연장해 급한 불을 껐다.
국제 기구의 도움을 받는 대신 경제 체질 개선 작업에 나섰다. 김대중 정부는 기업과 노동, 금융, 공공 4대 부문에 개혁을 단행했다. 부실기업을 정리하고, 금융 부문에 국제 기준에 맞는 시스템을 도입했다. 한편으로 노동·공공 부문에 구조조정을 시행하는 자구책도 시행했다.
그 결과 한국은 IMF와 약속한 시점 보다 3년 빠른 2001년 차입금을 완전 상환하면서 IMF 관리 체제를 졸업하게 됐다. 당시 한국의 IMF 체제 조기 졸업은 외신이나 학계에서 널리 회자됐다.
김 전 대통령은 IMF 졸업 뿐만 아니라 IT·바이오 산업의 기틀을 마련해 향후 미래 먹거리를 발굴하는 등 경제 분야 발전에 기틀을 세웠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분단 55년 만에 만난 남북 정상…세계 평화 기여 노벨상 수상까지
김 전 대통령과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2000년 6월13일 평양에서 첫 남북정상회담을 갖고 이틀 후인 15일 6·15 남북 공동선언을 채택했다.
공동선언은 남북 정산이 직접 만나 평화체제를 근간으로 통일 방향에 대한 원칙을 합의하고 인적 교육와 경제 협력을 명문화했다는 점에서 한반도 정세를 크게 바꿔놓았다.
공동선언의 효과는 즉각 나타났다. 남북 교류가 전례없이 늘었다. 공식적인 회담과 왕래 인원도 늘었지만 민간 교류가 늘었다. 금강산 관광사업, 철도·도로 연결 사업 등이 진행됐다.
김 전 대통령은 화해와 협력을 상징하는 햇볕정책을 바탕으로 은둔의 지도자로 불린 김 위원장과 함께 손읍 잡고 나타나 전 세계적인 화제를 모았다. 유일한 분단 국가 지도자들이 만나는 장면은 노벨상 수상으로 이어졌다.
김 전 대통령은 같은 해 12월 동아시아의 민주주의와 인권 개선, 북한과의 평화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한국 최초이자 유일한 노벨평화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노벨상은 해마다 평화, 의학, 문학, 화학, 물리, 경제 등 6개 부문의 수상자를 선정한다. 이 가운데 평화상은 가장 영예로운 상으로 인식되고 있다.
노르웨이 노벨위원회는 김 전 대통령을 수상자로 선정하면서 “김 대통령은 한국과 동아시아 전반의 민주주의와 인권개선에 기여했으며 특히 남북한 간의 평화와 화해에 노력을 기울여왔다”고 설명했다.
김 전 대통령은 수상 소감에서 "한국에서 민주주의와 인권, 민족의 통일을 위해 기꺼이 희생한 수많은 동지들과 국민들을 생각할 때 이 영광은 그분들에게 바쳐져야 마땅하다"며 "노벨상은 영광인 동시에 무한책임의 시작"이라고 말했다.
정적들 마저 포용한 통합 리더십…과거사 청산으로 국민통합
박정희 전 대통령 시절에는 일본에서 납치돼 미국의 도움으로 극적 생환했으며, 신군부 세력에게는 군사 재판을 통해 사형 선고를 받았다. 정권에 의해 끊임없이 투옥과 연금, 감시를 당했고, 망명 생활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김 전 대통령은 자신이 권력을 잡더라도 정치 보복을 하지 않겠다는 신념을 지켰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는 전두환·노태우씨의 사면이다.
전두환·노태우씨를 비롯해 신군부 인사들은 김영삼 전 대통령 시절 구속돼 내란 및 반란죄 수괴 혐의로 무기징역형이 내려졌다. 다만 김영삼 정부 말기에 국민 통합 차원에서 이들을 사면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당시 김영삼 대통령과 김대중 당선인은 청와대에서 회동을 갖고 수감 중인 전두환·노태우씨에 대한 특사에 합의했다. 정권 말기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김 전 대통령의 동의없이 이들에 대한 사면이 이뤄질 수 없었다.
이들에게 부당한 탄압을 받았던 김 전 대통령이지만 정치보복과 반목을 거듭해서는 안된다는 그의 오랜 철학을 지켰다. 김 전 대통령의 오랜 지지자들이 반대가 있었지만 이해를 구했다.
김 전 대통령은 취임 이후 전직 대통령과 함께 청와대에서 만찬을 함께 했다. 사면 받은 전두환·노태우씨를 비롯해 최규하 전 대통령, 김영삼 전 대틍령 등 전직 대통령과 현직 대통령이 함께 하는 자리를 통해 통합을 강조했다.
김 전 대통령이 대선에서 승리할 수 있었던 요인을 살펴보면 정적이었던 김종필 전 국무총리와 손을 잡은 'DJP 연합'에 있었다. 박정희 정권의 2인자인 김 전 총리와 손을 잡고 정권 탈환에 나선 것이다.
김 전 대통령과 김 전 총리가 각각 대통령과 국무총리를 맡고, 내각 구성에 있어서도 공동 정부를 꾸리기로 약속했다. 김대중 정부는 헌정사상 첫 연립정부였다. 정부 출범 이후 김 전 총리는 경제 부처 장관에 대한 임명권을 행사했다.
DJP 연합은 내각제 개헌 약속이 지켜지지 않으면서 결국 파국을 맞았지만, 과거를 넘어선 국민 통합의 길을 제시한 사례가 됐다.
또한 김 전 대통령은 4·3 특별법 제정, 양심수 석방, 의문사 진상 규명 위원회 등 과거사를 다시 돌아보고 화해와 용서를 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한 지도자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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