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등으로 얼룩진 새해, 사랑과 평화로 다시 ‘스타트’
존 레넌 ‘스타팅 오버’
누가 존 레넌을 쏘았나?
새해 시작부터 제1야당 대표가 피습당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일본 아베 신조 전 총리가 괴한의 총격에 쓰러져 결국 사망한 사건이 불과 재작년의 일인데 말이다. 두 사건 모두 방송 카메라에 고스란히 담겨 충격이 더 컸다는 점은 같지만, 이재명 대표는 목숨에 지장이 없다니 천만다행이다. 새해 첫 칼럼의 주인공으로 존 레넌(괴한의 총격에 숨졌다)을 생각해두었는데 이런 사건이 벌어져서 더 놀랐다.
대중음악의 역사에도 피로 얼룩진 페이지가 있다. 헤비메탈 그룹 판테라의 멤버이자 최고의 기타 연주자 중 한명이었던 다임백 대럴은 공연 중에 관객이 쏜 총을 맞고 숨졌다. 힙합의 역사에서 가장 밝게 빛나는 별이 된 투팍은 갱단의 공격으로 세상을 떠났고, 투팍의 라이벌이면서 동부 힙합을 대표했던 래퍼 비기도 몇달 뒤 같은 식으로 숨졌다. 우리나라에서도 남진·나훈아 모두 목숨을 잃을 뻔한 피습 사건을 겪은 바 있다.
그중에서도 존 레넌의 죽음은 가장 널리 알려진 사건이다. 범인이 존 레넌의 팬이라고 알고 있는 사람들도 많은데 잘못된 정보다. 범행을 저지르기 직전에 존 레넌에게 사인을 받긴 했지만, 그건 팬으로서가 아니라 범행을 하려고 접근하기 위해서였다. 두번이나 자살 시도를 했을 정도로 정신이상 증세를 보였던 범인은 결국 망상적 분노에 사로잡혀 20세기 최고의 아티스트를 죽였다.
원래 존 레넌과 관련해 쓰려고 했던 글은 이제부터다. 지난 칼럼에서 2023년을 마무리하면서 한해의 가요계를 내 나름으로 정리해봤으니까 새로운 한해를 시작하면서 독자님들께 추천하고 싶은 단 한곡의 노래를 골라보았는데, 그 노래가 비틀스 해체 뒤 존 레넌이 솔로 활동 중에 발표한 ‘스타팅 오버’다. 노랫말을 보자.
‘우리의 삶은 함께했기에 너무나 소중해/ 우린 같이 성장했으니까/ 우리의 사랑은 여전히 특별하지만/ 한번 멀리 날아가 보는 건 어떨까?/ 우리 둘만 있다면 어디든지 좋을 거야.’
5주 동안 빌보드 1위를 차지했던 이 노래는 잠시 소원했던 아내 오노 요코와 새롭게 시작하자는 두번째 청혼가이기도 했다. 비틀스 시절의 존 레넌은 난해하고 실험적인 가사를 많이 썼다. 대중 친화적이었던 폴 매카트니와 확연히 달랐다. 한참 비틀스를 연구하던 시절 이게 대체 뭔 소리지 싶은 가사를 이해하느라 고생하곤 했는데, 그런 노래는 대부분 존 레넌의 작품이었다. 그러나 솔로 활동을 시작한 존 레넌은 해탈한 현자처럼 힘을 빼고 사랑과 평화만을 노래했다.
‘사랑은 ○○하며’가 반복되는 명곡 ‘러브’나 가만히 듣고 있으면 눈물샘이 꿈틀거리는 순정 고백송 ‘오 마이 러브’는 중학교 수준의 영어 단어로만 쓴 노래들이다. 비틀스 시절의 러브송 ‘올 유 니드 이즈 러브’의 가사도 존 레넌이 썼다. 퀸의 노래 ‘위 윌 록 유’가 아직도 최고의 응원가인 것처럼 존 레넌의 ‘이매진’은 아직도 최고의 반전 송가라고 할 수 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캐럴도 존 레넌의 노래 ‘해피 엑스마스, 워 이즈 오버’다. 짤랑거리는 종소리 속에서 그의 사랑 오노 요코도 함께 노래하고 나중에는 아이들의 합창까지 어우러져 연말에 딱 틀기 좋은 곡이 만들어졌다. 그러고 보니 한해를 시작하고 정리하는 궁극의 선곡이 모두 존 레넌의 노래다. 나로서는 노벨 문학상을 받은 밥 딜런을 제쳐두고 존 레넌을 최고의 작사가이자 작곡가로 꼽을 수밖에.
그는 왜 이토록 사랑과 평화를 갈구했을까? 가장 폭력적인 방식으로 희생당할 자신의 최후를 예감했을까? 희망으로 넘실대는 노래 ‘스타팅 오버’가 실린 앨범 ‘더블 판타지’는 아내와 입맞춤하는 사진을 재킷으로 삼았다. 앨범을 발표하고 한달도 지나지 않은 1980년 12월8일 그는 겨우 마흔의 나이에 피살당했다. 그의 죽음만큼 슬픈 건 44년이 흐른 지금도 사랑과 평화의 시대는 오지 않았다는 거다.
아직도 세계 곳곳에서 전쟁의 참상이 벌어지고 있다. 한반도의 통일은 그때나 지금이나 요원해 보인다. 광기 어린 피습 사건으로 한해를 시작한 우리 정치권은 곧 총선 정국에 돌입한다. 알량한 권력을 쥐겠다고 서로 얼마나 비난하고 음해할지, 또 지지자들은 얼마나 격렬하게 포화를 퍼부을지 아득하다. 그때는 그때고, 일단 지금은 존 레넌의 노래로 새해를 시작합시다.
에스비에스 피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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