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식으로 몸속 미생물 주류 교체…인간을 역습하다
섬유질로 생산된 단쇄지방산
식욕억제·혈당조절·지방분해…
적색육 먹이 삼은 미생물 득세
식욕자극·혈관질환 원인 제공
지난 글에서 생명은 물질과 에너지의 네트워크 속에서만 존재할 수 있으므로 그 속성이 공적인 것이라는 이야기를 했다. 오늘은 그러한 네트워크에 참여하는 단위 생명 개체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얼핏 인간 개체는 뚜렷한 윤곽과 경계를 지니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세수를 하고 화장을 하면서 경계를 꾸미기도 하고, 땀을 닦거나 코를 풀면서 경계를 확인한다. 그러나 좀 더 세밀하게 살펴보면 인간은 단일 개체로 존재하지 않는다. 보통 대략 30조개 세포로 인간이 구성되어 있다고 이야기한다. 그런데 인간의 피부·기도 등의 호흡기, 소장이나 대장 같은 소화기 그리고 생식기 표면에 대략 100조개가 넘는 미생물들이 살고 있다. 이들은 인체와 대사산물을 교류하며 물질과 에너지를 나눠 쓰기도 하고, 식욕과 기분을 좌우하는 신호 물질을 분비하기도 하며, 숙주인 인간이 병원균에 대항하는 것을 돕기도 한다. 한마디로 인체는 단일 개체라기보다 하나의 거대한 공동체에 가깝다.
대사 작용 ‘아웃소싱 일꾼’ 미생물
100조개에 이르는 미생물집단을 미생물총이라 하는데 인간과 미생물총의 교류는 우선 대사 과정에서 긴밀하게 벌어진다. 섬유질이 풍부한 채소를 인간이 먹으면 그중 일부는 인간이 소화해 흡수하지만 자신이 소화할 수 없는 다당류들은 대장에 있는 미생물에게 공급한다. 인체가 지닌 유전자 수는 3만~4만개 정도이지만 미생물총이 지닌 유전자 수는 이것의 100배에 육박한다. 인간이 할 수 없는 틈새의 작업들을 미생물들이 한다고 할 수 있다. 인간이 소화시키지 못하는 섬유질을 공급받은 미생물들은 이를 소화시켜 대사 결과물로 아세테이트, 프로피오네이트, 부티레이트 같은 단쇄지방산(화학구조상 6개 이하의 짧은 탄소수로 형성된 지방산)을 만들어 분비한다. 이 물질들은 인체의 대사 과정에서는 거의 만들어지지 않는 것들이다. 미생물들은 단쇄지방산을 에너지 연료로 사용하고, 일부는 배출하여 인간에게 건네준다. 장내 미생물은 단쇄지방산을 공급하는 것 외에도 인간이 섭취한 단백질을 아미노산과 펩타이드로 분해하여 인간의 에너지 대사에 기여한다. 즉 인간 대사의 일부를 미생물들에게 아웃소싱한다고 할 수 있다.
미생물이 건넨 단쇄지방산은 인간의 몸에서 여러 가지 신호 물질로 작용한다. 이들은 간 세포의 인슐린 민감도를 증진시켜 혈당 조절을 돕고, 간세포에 저장된 지방을 분해하고 산화시켜 간 내부 지방을 줄이기도 한다. 한편 이들은 지방세포에 신호 물질로 작용하여 혈중 지방산을 흡수시킨 뒤 내부에 저장하도록 만든다. 단쇄지방산은 렙틴 같은 식욕억제호르몬의 분비를 촉진하거나, 간접적인 경로로 뇌에 작용해 식욕을 억제하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또한 단쇄지방산은 지피알(GPR)41이라는 수용체에 결합하여 인체의 혈압을 떨어뜨리기도 한다. 더 나아가 이들은 장내에 있는 면역세포의 수용체에 작용하거나 장 점막에 존재하는 염증 유발 효소의 작용을 억제하여 염증을 저해하는 효과를 보이기도 한다.
미생물총이 인간에 미치는 영향은 대사에 국한되지 않고 제2의 뇌로 알려진 장신경계에 작용하여 미생물총-장-뇌 축을 형성하는 데까지 미친다. 장과 뇌 사이의 소통은 신경계 작용, 내분비현상, 면역 현상을 통해 양방향으로 이뤄진다. 미생물총이 어떤 미생물들로 구성되어 있고, 그들이 만들어 배출하는 대사산물이 무엇인지에 따라 장내 미생물 환경은 크게 영향을 받는다. 만일 미생물 구성의 변화와 대사산물의 변화에 따라 장 내부의 항상성이 깨지면 장의 표면을 이루는 상피세포에 손상이 오고 장 누수 현상과 더불어 염증 반응이 발생한다. 이러한 장의 병리적 현상은 장내 신경계에 영향을 미쳐 장의 분비 능력, 면역 방어 능력, 장 운동 능력을 떨어뜨리고, 더 나아가 신경염증을 일으키고 비정상적인 신경 전달물질의 방출을 통해 특정 신경세포를 만성적으로 활성화한다. 이러한 사실들을 바탕으로 우울증과 미생물총의 밀접한 상관관계가 규명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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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도한 육식이 깨뜨린 공동체
또한 인체는 장내의 공생균을 통해 다양한 병원균에 대한 저항성을 획득한다. 인체 내의 공생균은 공간과 영양분을 놓고 병원균과 경쟁한다. 인체는 모든 장내 미생물을 차단하기보다 병원균에 특이적으로 작용하는 항균 물질을 분비하여 공생균이 병원균과의 경쟁에서 이길 수 있도록 돕는다. 장내에 오래 상주한 공생균은 이러한 인체 면역체계의 도움을 등에 업고 병원균과 치열한 싸움을 벌여 병원균이 인체에 접근하는 것을 막는다. 항생제 치료 후 장에 문제가 생기는 것은 항생제로 인해 장내 미생물총이 파괴되면 공생 체계의 방어력이 감소하여 병원균이 침입했을 때 장내 공생공동체의 복원에 어려움을 겪기 때문이다.
문제는 장내 미생물총의 구성은 고정된 것이 아니고 사람이 사는 방식에 따라 변한다는 데 있다. 산업화 이전 오랜 역사 동안 인간은 고섬유질 섭식을 주로 하면서 간혹 기회가 주어질 때마다 육식을 하였다. 이러한 인간의 식습관에 조응하면서 미생물총은 풍부한 섬유질로부터 단쇄지방산을 만들어내며 인간과 협력적 공생을 하였다. 그러나 산업화 이후 거대 도시가 형성되고 대규모 축산을 통해 상시적으로 육식을 하고, 공장에서 만든 가공육을 섭취하면서 고섬유질 섭식은 날로 줄고, 고지방 섭식이 일반화되었다. 이러한 문명화된 사회에서 급격하게 발생한 인류 문화의 변화는 유익균과의 공생관계를 깨뜨렸다. 대부분의 거대 도시에서 마을과 텃밭이 사라지면서 먹거리 공동체가 붕괴되었다. 이로 인해 단쇄지방산을 대사하는 미생물군의 수효는 급감하고, 적색육에 많이 존재하는 콜린 성분을 먹이로 삼는 미생물군이 사람의 장속에서 득세하였다. 이들이 득세할수록 장내 미생물총의 종 다양성과 유전적 안정성은 감소한다. 이들은 식욕을 오히려 부추기고, 인슐린 저항성을 높이며 혈중 지방 농도를 높게 유지시켜 여러 심혈관 질환의 원인을 제공한다. 이러한 조성의 변화는 장 누수 현상이나 만성화된 염증 상태와도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장내 미생물총이 인간과 맺던 공생적 관계가 부조화 관계로 바뀌는 과정이 인간의 생활 공동체가 깨지는 과정과 연결되어 있다는 것은 의미심장하다. 몸속과 몸 밖의 공동체는 서로 연결되어 있다. 깨어진 몸속 공동체를 회복시키려면 붕괴된 몸 밖 공동체에 대한 심각한 성찰이 요구된다. 21세기 문명 비판의 출발점은 우리 몸속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대구경북과학기술원 교수
서울대와 프랑스 퀴리연구소, 영국 케임브리지 분자생물학연구소에서 생화학·면역학 등을 공부했다. 박테리오파지를 이용한 수용체 개발, 노화와 면역 사이의 연관 등을 연구하면서 대학 교육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부단히 모색 중이다. ‘탐구한다는 것’, ‘이타주의자’, ‘소년소녀, 과학하라!’ 등의 책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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