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DUV 장비 규제가 중국 반도체에 부담인 이유 [강해령의 하이엔드 테크] <2편>

강해령 기자 2024. 1. 6.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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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바이든(오른쪽)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 사진=로이터연합뉴스
[서울경제]

IT 시장에 관심 많으신 독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1편에서는 DUV 레이저 생성 과정에 대해 대해서 살펴봤습니다. 2편에서는 본격적으로 DUV 노광기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천천히 따라와 주세요.

◇DUV 장비에도 고급 기술이 곳곳에 숨어있습니다

ASML의 EUV 노광기. 사진제공=ASML

DUV 노광기는 EUV 노광기와 구조가 다를 뿐 빛이 웨이퍼까지 흘러가는 과정과 흐름은 상당히 비슷합니다. 생성기에서 노광기로 올라온 ArF 레이저의 이동 경로를 따라가 보면요. 웨이퍼에 찍히는 회로 모양보다 4배 더 큰 회로가 새겨진 마스크를 먼저 마주하고, 마스크를 통과하면 렌즈부를 지나야 합니다.

사진제공=니콘
DUV와 EUV 노광의 차이. 사진제공=삼성전

빛을 일단 반사하고 보는 EUV 노광기와 다르게 DUV 노광기는 빛 ‘투과’형이라는 게 포인트입니다. EUV는 워낙 파장이 짧고 예민한 빛이라서 어떤 렌즈를 마주해도 흡수된다는 특징이 있죠. ArF는 EUV만큼 예민한 수준은 아닙니다. 마스크를 지나 회로를 머금고, 렌즈를 거쳐 웨이퍼를 찍는 원리입니다. 이 마스크에는 통상 웨이퍼 위에 한번에 12개 정도 칩 회로 모양을 낼 수 있도록 설계가 돼 있다고 하죠.

사진출처=삼성전자, 삼성디스플레이, 구글

그런데 범용이라는 인식이 강해서 그렇지 ArF 노광기에도 상당히 정밀한 기술이 들어가 있습니다. 특히 렌즈부 기술을 보면 신기한 게 많습니다. 렌즈를 보기 전에 빛의 성질을 하나만 짚고 가겠습니다. 빛은 ‘회절’을 합니다. 빛이 어떤 틈 사이를 통과한 뒤의 파장을 관찰해보면 원래처럼 올곧이 직진을 하는 게 아니라 반원의 모양을 하면서 더 넓게 퍼져나가는 현상이 생깁니다. 이게 회절 현상인데요.

회로가 그려진 마스크를 통과할 때도 똑같습니다. 빛이 마스크에 새겨진 얇은 틈을 통과한 뒤에도 일직선으로 질주를 하면 걱정이 없겠지만, 회절 현상 때문에 이리 퍼지고 저리 퍼지며 산란이 일어나는 것이죠. 이게 웨이퍼까지 직행하면 망하는 겁니다.

ASML DUV 노광기 내부의 렌즈 구조는 이렇게나 복잡합니다. 독일의 광학계 기업 칼 자이스와 ASML의 협력이 돋보입니다. 사진제공=ASML, 자이스, SPIE

이 문제를 해결하면 원하는 웨이퍼 자리에 원하는 빛(회로 모양이) 닿으려면 DUV에도 고도화한 렌즈 기술이 필요합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볼 수 있었던 모식도에 나오는 것처럼 단 한 개의 렌즈만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각기 다른 모양의 크고 작은 여러 개의 렌즈가 수직으로 쌓여져야만 하죠. 취재를 해보니 이 DUV 노광기 안에 들어가는 렌즈 수만 해도 100여개 인데다 이들의 무게는 2톤이 넘어간다고 합니다. 이 렌즈 제조는 독일의 유명한 렌즈 기업 자이스가 상당히 잘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또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ArF의 진화 버전인 ArF 이머전, 즉 ArFi 노광기가 있죠. 이 i는 immersion의 약자입니다. ‘액침’이라는 뜻인데요. 液浸. ‘담그어 잠긴다’ 라는 의미입니다. 회로를 머금은 빛을 웨이퍼에 모아주는 마지막 렌즈를 어떤 액체에 담근다는 뜻입니다.

이 액체의 정체. 물입니다. 정말 우리가 일상 생활에서 사용하는 물이고, 이 물을 렌즈와 웨이퍼 사이에 넣는데요. 그 이유는 당연히 해상력 개선입니다.

여러분 물이 담긴 유리컵에 빨대나 젓가락을 넣으면 어떻게 보이시나요. 마치 빨대가 휘어진 것처럼 보이고 좀 더 커보이기도 하죠? 그 이유가 물은 공기보다 빛의 ‘굴절률’이 훨씬 높은 물질이기 때문입니다. 이걸 노광 공정에 적용하면 회로를 훨씬 미세하고 균일하게 찍어낼 수 있습니다.

렌즈가 빛을 모아주는 타이밍에는 일부 빛이 꺾이는 각도가 너무 커서 굴절이 되지 않고 아예 튕겨나가 버리는 이른바 ‘전반사’ 현상이 일어나기도 하는데요. 날아가 버린 빛 때문에 웨이퍼에 미세 회로가 잘 안 새겨지면 힘이 빠지죠.

사진출처=구글

그래서 이 빛들이 도망가지 않고 웨이퍼로 곧잘 향하도록 굴절률이 좋은 물을 웨이퍼-렌즈 사이에 댑니다. 더구나 ArF 레이저는 물에 흡수되지도 않고 통과를 할수 있어 금상첨화입니다. 반도체 노광 업계는 이 ArFi 스캐너와 물 공급 기술이 있었기에 EUV 시대가 도래하기 전까지 ‘무어의 법칙’을 이어갈 수 있었습니다.

ArF 노광기가 한창일 시절에는 ASML은 물론 일본 캐논도키, 니콘 등이 3강 체제를 구축했는데요. 현재는 EUV까지 득세한 ASML이 이 시장에서도 매우 아주 강력한 포지션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중국, 과연 이 기술에 언제 범접할 수 있을까요?

SMEE의 28나노 노광기. 사진제공=SMEE

이제 중국 상황을 조금 더 살펴볼까요? 상하이마이크로일렉트로닉스, 줄여서 SMEE라는 회사가 있죠. 이 회사는 중국에서 노광기를 개발하는 대표 주자인데요.

언론 보도들을 보면 지난해 7월 중국 어떤 매체는 SMEE가 연말까지 자체 개발 28나노 노광 장비를 어딘가로 인도한다는 전망을 하기도 했고요. 지난해 12월에는 SMEE의 후원사인 상하이장장그룹이 위챗 계정을 통해 SMEE 개발 사실을 공식 발표했는데 이걸 중국 매체들이 보도했다가 검열을 당했다고 합니다. 이렇게 28나노 노광기를 개발했다는 사실이 세상에 새어나 오고는 있지만 실체를 본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번 미국의 중국 DUV 제재가 단발성에 그치지 않고 계속 된다면 중국은 또 한번의 큰 파고를 넘어야 할 것 같습니다. 최근 화웨이가 중국 내에서 직접 생산했던 최첨단 7나노 칩도 EUV가 아닌 DUV를 써서 꾸역꾸역 만들었죠. 그런데 이 DUV 장비마저 없으면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라는 기조 유지 자체가 어려울 수 있습니다.

사진출처=ASML, TEL, Nuflare, 사이머

또 사이머, 자이스, ASML 등 세계적 회사들이 머리를 싸매서 만든 기술들을 중국 내부에서만 해결하는 것도 쉽지는 않을 것 같죠. 노광 시스템 생태계 자체를 봐도 갈 길이 멀어 보입니다. 웨이퍼 위의 포토레지스트를 관리하는 트랙, 블랭크 마스크에 회로를 새기는 라이터(Writer) 등 장비와 핵심 소재 공급망에서는 미국, 일본 등 반도체 주요국들이 위세를 떨치고 있죠. 중국이 DUV 분야 생태계를 얼마나 내재화했고 고도화했는지 정확한 정보를 접하기 힘듭니다.

반대로 시장 평가와 달리 중국이 이 장비를 생각보다 빨리 개발해서 대량 양산에 들어간다면 DUV 시장에서 엄청난 패러다임 변화가 있는 것이죠. 물리학 중에서도 최고난도로 꼽히는 광학에서 비교적 단기간에 노하우를 확보했고 1편에서 말씀드렸던 네온 등 필수 희귀 가스 공급망도 가진 나라가 되기 때문입니다.

EUV가 너무 큰 기술 트렌드죠. 다만 DUV 장비 시장도 고급 기술이 숨어있고 여전히 중요합니다. 물론 중국의 ArFi 노광기 사재기 영향도 있었을 것으로도 추정되나 ASML의 지난해 3분기 매출의 48%는 ArFi 분야에서 나왔습니다. EUV(35%) 매출 비율보다 높았죠. 또 파운드리 1위 TSMC의 지난해 3분기 매출의 41%인 70억달러(약 9조원)도 DUV에서 나왔습니다.

DUV 시장이 건재하다 못해 아직까지 너무 활발한 시장이라는 점에서 올해 중국의 DUV 개발 동향과 미국의 제재가 반도체 시장에서 올 한해 큰 이야깃거리가 될 것 같습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좋은 주말 되세요.

강해령 기자 hr@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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