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DUV 장비 규제가 중국 반도체에 부담인 이유 [강해령의 하이엔드 테크] <1편>

강해령 기자 2024. 1. 6.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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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바이든(오른쪽)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 사진=로이터연합뉴스
[서울경제]

IT 시장에 관심 많으신 독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강해령의 하이엔드 테크’를 읽어주시고 아껴주시는 모든 분들, 새해 복 듬뿍 받으시길 기원합니다. 기분 좋게 일어난 새해 1월 1일, 독자님들은 어떤 기사를 가장 먼저 보셨나요? 새해 벽두부터 반도체 업계는 한바탕 난리가 났었는데요. ASML의 심자외선(DUV) 장비로 큰 이슈가 있었습니다.

세계적인 반도체 장비 회사 ASML이 중국에 보낼 DUV 장비 3대 수출을 중단했기 때문입니다.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네덜란드 정부와 직접 접촉하는 등 백악관 최고위층이 이 일을 주도한 것으로 알려졌죠.

최첨단 노광 장비인 극자외선(EUV) 뿐만 아니라, 이제 범용 반도체를 만들 때 쓰이는 DUV 장비 수출까지 막아서는 움직임입니다. 새해를 시작하자마자 중국을 강력하게 조이겠다는 미국 정부의 의지가 반영된 거죠.

이 지점에서 호기심이 생기 시작합니다. EUV 기술은 이미 많은 기사를 통해 어떤 것인지 콘셉트를 이해했고. 그럼 전 세대 장비인 DUV 장비는 어떻게 움직이는 걸까. DUV 장비는 2000년대부터 만들어졌다고 하니 EUV 장비보단 만들기가 쉬워 보이는데, 왜 중국은 천문학적인 돈을 투입하고도 뚝딱 만들어내지 못하는 걸까. 중국은 무엇에서 고전하고 있기에 ASML에 의존할까.

이 궁금증을 풀기 위해 이제부터 저와 반도체 DUV 노광 장비 속을 들여다보고 어떤 기술들이 숨어있는지 자세히 보겠습니다. 총 2편입니다. 다음 편에서는 DUV 시장 현황과 중국의 장비 개발 움직임까지 짚어보겠습니다.

◇DUV가 무엇일까

사진제공=ASML, 사이머

우선 DUV 시스템부터 이해하기 위해 빛을 생성해내는 부분과 노광기 내부. 크게 두 가지 영역으로 나눠서 살펴보려 합니다. 빛을 생성해내는 부분부터 시작합니다. 그 전에 DUV가 무엇인지 한번 알아봐야 할 것 같은데요. DUV는 반도체 노광 공정에 쓰이는 빛입니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덕분에 우리는 반도체 노광 공정에 꽤 익숙해져 있습니다. 노광 공정은 동그란 웨이퍼 위에 빛으로 반도체 회로를 반복적으로 찍어내는 작업을 말합니다.

이 공정에서 빛은 아주 핵심적인 도구죠. 빛이 있어야 웨이퍼에 회로를 찍을 수 있으니까요. 그런데 이 빛의 파장이 짧으면 짧을수록 해상력(분해능)이 좋아져서요. 훨씬 미세하고 정확한 모양의 회로를 찍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EUV 편에서도 분석해봤던 레일리의 공식에 따라서 말이죠.

193나노미터 파장의 ArF 레이저. 자료제공=삼성전자

DUV는 Deep Ultra Violet, 말그대로 심자외선입니다. 엔지니어들이 앞 세대 노광에서 썼던 아이-라인(i-line·365nm)이라는 빛의 파장보다 훨씬 더 짧은 빛을 개발한 것이죠. 간단하게는 EUV 파장인 13.5나노와 300나노 이하 사이의 파장이라고 생각해주시면 될 것 같습니다.

DUV는 지금으로부터 약 20여년 전인 2000년대 초반부터 활용되기 시작합니다. 이 DUV 노광을 위한 레이저 빛의 종류는 크게 불화크립톤(KrF), 불화아르곤(ArF)이 있습니다. KrF의 파장은 248나노, ArF는 193나노미터인데요. 오늘은 KrF보다 더 발전된 기술인 ArF를 기준으로 이야기 해보겠습니다.

이 ArF 레이저는요. 우리가 아무 곳에서나 얻을 수 있는 빛이 아닙니다. 복수의 화학 원소 간 결합을 유도해서 만들어낸 빛인데요. 여러분 피부 치료를 할 때 쓰이는 엑시머 레이저 장비를 들어보셨죠? 이 ArF도 엑시머 레이저입니다.

엑시머는 EXCIted + diMER의 앞글자와 뒷글자를 따서 만든 용어입니다. Excited는 ‘들뜬’이라는 뜻이죠. dimer는 두개의 분자가 중합해 생긴 물질, 즉 ‘이합체’죠. 한마디로 ‘들떠 있는 상태의 이합체’라는 뜻입니다.

실제 ArF 레이저는요. 불소(F₂)와 아르곤(Ar)이 연애를 하듯 들떠서 결합했다가 언제 그랬냐는 듯 떨어지면서 생겨나는 빛입니다. 더 자세히 볼게요.

Ar과 F₂는 ‘금방 사랑에 빠지는(금사빠)’ 원소입니다. 그냥 내버려 두면 아무 원소와 결합하려는 성질을 가지고 있거든요. 그래서 안정제 역할을 하는 네온을 섞어서 가스를 만듭니다. △95% 이상 네온과 1% 내외의 Ar을 섞은 가스 95% 이상 네온과 1% 내외 F₂를 함유한 가스를 각각 준비합니다.

틈새 팁을 드리면 네온은 최근 업계의 화제가 된 가스죠.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네온 가스 채취 주요국인 우크라이나에서 공급이 제한되자 반도체 노광 업계에는 공급 부족 현상과 인플레이션을 마주해야 했습니다. 이때 중국이 활약했죠. 네온 공급망이 예전보다는 다변화했지만, 중국은 아주 유력한 네온 확보 국가로 위엄을 과시했죠. 원재료 초강국의 면모입니다.

사진제공=사이머

금사빠인 아르곤과 불소 가스를 네온으로 진정시키고, 이제 두 물질은 한 장소(oscillator·발진기)에서 만납니다. 이 장소에서 전력, 파워를 주기 시작하면 비로소 아르곤과 F₂는 구애 활동을 시작합니다. 전하(전자 알갱이)를 방출한 아르곤과 불소 한 짝이 만나서 ArF, 그러니까 우리가 찾던 불화아르곤이 되는데요. 이 ArF는 조금 전 설명드린 것처럼 짧고 굵게 불타오르는 연애를 합니다.

결합해서 들떠 있을 때의 수명이 굉장히 짧은데요. 이때가 포인트입니다. 이 원소들의 결합이 깨져서 에너지가 가장 낮은 상태가 되는 ‘그라운드 스테이트’ 때 레이저가 발생합니다. 그게 바로 193나노 파장의 ArF 레이저입니다. 여기서 생성된 193나노 ArF 레이저는 증폭 과정과 함께 일정한 폭으로 다듬어지는 정비 작업을 거쳐 노광기로 전달됩니다.

사이머의 DUV 생성 장비. 사진제공=사이머

이 고난도 초정밀 기술을 구현하려면 첨단 제조 기술로 만든 장비가 있어야겠죠. 이걸 아주 잘 만드는 회사가 현재 세상에 두 군데 존재합니다. ASML의 자회사이기도 한 미국의 사이머, 일본의 기가포톤입니다. 미국 사이머는 우리 시청자 분들이라면 상당히 익숙한 회사죠? EUV 노광기 속에서 EUV 생성기를 만드는 부속품도 사이머가 세계에서 단독으로 생산합니다.

이들은 상당한 독자 노하우를 쌓은 것은 물론이고요. 남들이 이 기술을 흉내내고 베낄 수 없도록 다양한 특허를 만들어 놓았죠. 수십 년간 노력으로 쌓은 이들의 노하우를 중국이 단번에 따라잡는 게 쉽지 않을 것이라 보는 시각이 많습니다. 더구나 아주 촘촘한 특허망을 피해야 하기 때문에요. 새로운 무언가로 만들어내려면 엄청난 고뇌와 시간이 필요하죠. 미국이 노광기 규제에 적극적으로 나설 수 있는 것도 자국 회사인 사이머의 존재감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2편에서는 본격적으로 ASML의 ArF 노광기 내부를 보실 수 있게 준비했습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강해령 기자 hr@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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