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고객에게 일 시키지? 셀프계산대와 무급노동[딥다이브]
대형마트의 셀프계산대 좋아하시나요? 일반 계산대 앞 긴 줄을 피해 셀프계산대로 갔다가 오류가 나서 쩔쩔맨 경험, 한 번쯤 있으실 텐데요. 셀프계산대가 실제로는 그다지 결제 시간을 줄여주지 못하는 데다, 절도가 늘어나는 부작용도 있다고 하죠. 이거 시간과 비용을 절약해주는 진보한 기술인 거 맞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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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자를 일하게 하라
셀프계산대를 이용하면서 혹시 이런 생각 해보셨나요. ‘왜 내가 공짜로 계산원 일을 하고 있지?’
그렇다면 본질을 꿰뚫어 본 겁니다. 마트 직원의 유급 노동을 소비자의 무급 노동으로 대체해 비용을 절감하는 것. 그게 바로 소매업체가 셀프계산대를 늘리고 있는 이유이죠.
그런데 어디 셀프계산대만 그런가요. 키오스크나 은행 ATM기도 마찬가지이죠. 소비자들은 한때 누군가 해줬던 일(예금 인출, 민원 발급, 햄버거 주문 등)을 무료로 수행하는 데 상당히 익숙해져 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생각보다 기업이 떠넘긴 일을 소비자가 기꺼이, 좋아서 하는 경우도 있는데요. 그 대표적인 예가 지금으로부터 100년도 더 전인 1916년 미국 슈퍼마켓 체인 ‘피글리 위글리(Piggly Wiggly)’가 도입한 셀프 서비스 매장입니다.
처음엔 다들 이 셀프서비스 매장이 실패할 거라고 봤죠. 손님들이 귀찮아할 거고, 좀도둑이 늘어날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웬걸. 피글리 위글리는 놀라운 성공을 거뒀습니다. 물건을 직접 고르게 되자 사람들이 예정에 없던 충동소비를 하게 됐기 때문이죠. 결국 다른 슈퍼마켓들이 앞다퉈 이 방식을 따라옵니다.
1986년 시작된 계산대의 혁명
38년 전 이 낯선 기계를 만난 소비자 반응은 어땠을까요. 일단 호기심을 자극하는 데는 성공했습니다. 14주의 테스트 기간 이 매장을 찾은 고객 중 3분의 2가 셀프계산대를 한번 이상 사용했거든요. 이 중 38%는 셀프계산대를 선호한다고 답변했고요. 꽤 긍정적인 결과였는데요. 특히 사람들은 셀프계산대가 계산원보다 더 빠르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럼 진짜 빨랐을까요? 당시 크로거 부사장의 설명은 좀 다릅니다. “실제로는 셀프계산대가 결제에 시간이 더 오래 걸리지만, 고객이 스스로 작업하기 때문에 더 빠르다고 느낀다”는 거죠.
하지만 이 혁신은 너무 시대를 앞서갔습니다. 시장은 생각만큼 열광하지 않았죠. 실제 미국 대형 마트가 본격적으로 셀프계산대를 도입하기 시작한 건 2000년대 초반. 하지만 성장은 다소 울퉁불퉁했습니다. 예컨대 알버슨스(Albertsons)는 2011년 ‘쇼핑객에 더 많은 개인화된 서비스를 제공하겠다’며 셀프계산대를 전면 철수했다가 2019년 다시 도입했죠. 미국 코스트코 역시 2013년 셀프계산대를 다 없앴다가, 2019년 다시 돌아왔고요. 지난해 초엔 월마트가 미국 뉴멕시코주 매장 3곳에서 셀프계산대를 없애 화제가 됐습니다. 미국은 아니지만 영국의 슈퍼마켓 체인 부스(Booths)는 최근 대부분 매장에서 셀프계산대를 폐쇄한다고 발표했고요.
(참고로 한국에선 롯데마트 2017년, 이마트 2018년부터 셀프계산대 도입)
왜 이렇게 기업들이 오락가락할까요. 2024년까지도 셀프계산대가 완벽한 사용경험을 선사하고 있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종종 형편없는 결과를 초래하죠. 고객과 점원, 그리고 기업에도요.
셀프계산대가 싫은 이유
일단 셀프계산대의 장점부터 나열해볼까요.
고객 입장에서 가장 큰 건 계산대 앞 긴 줄에 서지 않아도 된다는 거죠. 2019년 설문조사에 따르면 소매점을 찾은 고객들은 제품이 품절되거나(48%) 찾기 어려운 것(40%)보다 긴 계산 줄(60%)을 가장 짜증 나 했습니다.
또 보통 도난 방지를 위해 스캔한 제품 중량을 인식하는 시스템을 두는데요. 이게 물건을 늦게 올려도 미리 담아도 오류가 발생하죠. 보통 예민한 게 아닙니다. 경고 메시지가 뜰 때마다 마치 기계가 이렇게 질책하는 것만 같죠. ‘당신, 혹시 도둑이야? 아니면 멍청한 건가?’ 실제 2021년 미국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67.3%의 쇼핑객은 셀프계산대가 잘 작동하지 않은 경험이 있다고 답했습니다.
바코드가 없는 포장되지 않은 신선식품을 셀프계산대로 구입하는 건 더 도전적인 일입니다. 수십 가지 품목 중 자신이 고른 농산물을 정확히 골라내고(내가 고른 사과가 홍로인지, 부사인지 구분해야) 개수를 입력하는 과정을 거쳐야 하죠. 영국 슈퍼마켓 부스는 바로 이 점이 셀프계산대를 포기하게 된 결정적인 이유라고 밝힙니다. “우리는 (바코드가 없는) 농산물과 빵 제품이 많습니다. 그로 인해 셀프계산대에선 모든 일이 느려지고 정말 복잡합니다.”(영국 부스의 나이젤 머레이 이사의 BBC 인터뷰)
셀프계산대 앞에서 고객보다 더 바쁘고 힘든 사람은 마트 직원입니다. 미국 워싱턴주의 대형마트 점원은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스캐너와 터치스크린으로 어려움을 겪거나 물건을 훔치려고 시도하는 고객들을 “피 냄새를 맡은 상어처럼” 중단없이 감시해야 한다고 자신의 업무를 설명하죠. 일반 계산대와 달리 셀프계산대에서 직원을 호출하는 고객들은 대체로 당황했거나 짜증 났거나 화가 나있는 상태입니다. 감정노동도 훨씬 심할 수밖에 없죠.
쇼핑객 7명 중 1명은 도둑질 경험?
미국에선 소매점 절도가 심각한 이슈라는 소식, 딥다이브에서 전해드린 적 있는데요. 셀프계산대의 가장 큰 문제점 중 하나가 바로 이겁니다. 명백하게 절도를 증가시키고 있습니다.
또다른 분석 결과에 따르면 셀프계산대에서 도난이 일어날 확률은 사람 계산원이 있는 일반 계산대의 21배에 달합니다. 미국 스타트업 그라방고(Grabango)가 컴퓨터 비전 기술을 사용해 5000건의 거래를 추적한 결과인데요. 고객이 담아가는 물건보다 적게 계산되는 사례가 얼마나 되나 보니까 일반 계산대는 0.3%, 셀프계산대는 6.7%였죠. 금액 기준으로는 3.5%, 즉 셀프계산대를 통해 100만원 어치를 사갈 때 3만5000원 꼴로 덜 결제한다(훔치거나 실수하거나)고 합니다. 무시하기 어려운 비율인데요.
아니, 도난이 급증하고 대기시간도 별로 줄여주지 못하면 셀프계산대가 무슨 소용인가요. 그래서 일부 전문가는 셀프계산대의 멸종을 예언합니다. 소매업 전문가 필 렘퍼트는 무인매장 아마존고(Amazon Go) 같은 기술, 즉 물건을 들고 나가면 알아서 계산해 결제하는 기술이 더 대중화되면 언젠가는 셀프계산대를 대체할 거라고 보는데요.
하지만 아마존고 방식은 투자비가 아직까진 어마어마하게 듭니다. 그리 단기간에 거기로 넘어가진 않겠죠. 대신 그 중간지점이 모색 중입니다. 셀프계산대이긴 한데, 바코드를 일일이 스캔할 필요가 없이 그냥 바구니에 제품을 넣기만 하면 알아서 순식간에 계산해주는 방식인데요. 제품마다 주파수 칩을 붙여 이를 인식하는 기술로, 이미 유니클로가 일부 매장에 선보이고 있죠. 월스트리트저널은 이를 두고 “유급 직원의 노동을 무급 쇼핑객에 이전하는 전통적인 셀프계산대와 달리, 노동력을 완전히 제거한다”며 “셀프계산대를 싫어하는 사람도 좋아할 것”이라고 찬사를 보냅니다. 이 기술은 영국 테스코 역시 최근 테스트 중이라고 합니다.
셀프계산대가 첫 선을 보인 지 38년. 기계는 아직 사람 계산원을 완전히 대체하기엔 한참 부족해 보입니다. 계산원 일자리를 빼앗는 적으로도 지목되는 셀프계산대. 개인적으로는 조금 더 이것저것 따져보고 차근차근 도입돼도 좋을 듯합니다. 사람이냐 기계냐를 소비자가 선택할 수 있도록 둘이 공존하는 게 고객 입장에서는 가장 나으니까요. By.딥다이브
ATM처럼 셀프계산대에도 금방 익숙해질 줄 알았건만. 셀프계산대 도입 역사가 긴 미국에서도 이 기계는 여전히 환영받지 못하고 있다는 걸 확인했는데요. 기술이 가져올 미래에 대한 예측은 조금씩 빗나가곤 합니다. 주요 내용을 요약하자면
-소비자가 직접 상품 바코드 스캔을 하게 하는 셀프계산대. 미국에서는 1986년 첫 선을 보였고, 2000년대 들어 대부분 대형 마트에 자리잡게 됐습니다. 직원의 유급 노동을 소비자의 무급 노동으로 전환하는 겁니다.
-하지만 셀프계산대는 종종 고객을 당황스럽게 만듭니다. 오류는 잦고 직원의 개입은 빈번합니다. 일부 슈퍼마켓이 셀프계산대 철수를 결정한 이유입니다.
-게다가 셀프계산대는 도둑질을 크게 늘렸습니다. 기계를 이용할 때 사람들은 더 쉽게 물건을 훔칩니다. 일부러, 또는 실수로 계산하지 않은 물품이 늘면서 소매점은 매출에 상당한 손실을 입고 있습니다.
-결국 직원을 더 배치하고, AI 감시 기술을 도입하는 식으로 보안을 강화하고는 있는데요. 이거 비용 절감 효과 있는 거 맞을까요? 아직은 셀프계산대 기술이 고객과 기업, 모두 만족시키기엔 부족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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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애란 기자 haru@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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