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리포트] 사거리 900km의 의미…북 첨단무기 '무시'가 능사일까
방산 업계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는 실전 데이터입니다. 아무리 좋은 무기를 만들었다고 해도 실제 전장에서 써보지 않은 무기는 신뢰를 받기 어렵습니다. 같은 무기라도 실전에서 검증을 거칠 경우, 가격이 몇 배로 뛴다고 하는 전문가 이야기도 있습니다. 미국 방산 업계가 막강할 수 있는 이유 중 하나는 다른 나라에서는 좀처럼 가질 수 없는 이런 실전 테스트 기회를 무수히 가질 수 있다는 점입니다.
북한판 '○○○'… 성능 의심
바로 이런 점에서 북한 무기의 신뢰성도 다분히 의심받고 있습니다. 대륙간탄도미사일 ICBM을 비롯해 미국 주력 전차인 M1 에이브럼스를 닮은 신형 전차,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 SLMB 발사관을 가진 중형 잠수함까지 북한이 김정은 체제 이후 각종 신형 무기를 선보이고 있지만 의심의 눈초리는 여전합니다. 북한이 열병식 등을 통해 이런 무기를 선보일 때 우리 군 당국이나 미국이 보인 반응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지난 1998년 북한이 광명성 1호를 발사했을 때 일로 기억합니다. 북한의 주장과 달리 최종 발사 결과는 실패였다는 게 중론이었지만 당시 위성 발사 시도도 하지 못하고 있던 우리나라 입장에서는 충격이었습니다. 하지만 당시 북한 발사체 기술에 대한 평가는 높지 않았습니다. 한마디로 주먹구구식이어서 우리나라가 개발 혹은 추구하는 발사체와는 비교할 게 못 된다는 취지였던 걸로 기억합니다.
우크라이나에서 발사된 북한 미사일…사거리 900km의 의미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러시아와 북한은 서로 절실한 부분이 딱 맞아떨어지면서 급속도로 가까워지고 있습니다. 러시아는 당장 쓸 탄약을 비롯한 전쟁 물자를, 북한은 첨단 무기와 기술을 요구하면서 실제 거래로 이어지는 모습입니다. 4일(현지시간) 미국 백악관은 최근 러시아가 북한으로부터 제공받은 탄도미사일 중 일부를 지난달 30일과 지난 2일 각각 우크라이나를 향해 발사했다고 발표했습니다. 미사일 사거리는 900km인 걸로 파악됐습니다.
그간 북한이 심혈을 기울여 온 ICBM과 비교하면 사거리가 길다고 할 순 없지만 우리나라 입장에서 보자면 오히려 가장 위협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반도 남북 길이는 약 1,000km입니다. 사거리 900km면 북한 전역에서 제주도를 제외한 대한민국의 거의 모든 지역을 타격할 수 있습니다. 북한은 이번 실전 발사를 통해 자국산 미사일의 성능을 확인하는 동시에 발전시켜 나갈 데이터도 얻게 될 걸로 보입니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습니다. 포탄을 넘어 탄도미사일까지 지원받게 된 러시아가 그간 북한에게 판매하지 않았던 최신 전투기를 제공하고 발사체와 잠수함 분야 첨단 기술을 넘겨주게 될 경우 사태는 더욱 심각해지게 됩니다. 전 세계에서 고립돼 우군이 절실한 한 러시아에게는 충분히 고려할 수 있는 옵션입니다. 미국도 북한과 러시아의 이런 움직임이 한반도를 넘어 인도-태평양 지역의 안정을 위협할 수 있다며 우려하고 있습니다.
탄도미사일 쓰지 않아도 장사정포 등 재래식 전력만으로도 한국이 입을 타격이 큰 데 굳이 그런 무기 체계를 들먹일 필요가 있느냐고 할 수도 있지만 북한의 미사일과 핵 전력은 (특히나 핵의 경우 실제 사용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미국 등 동맹국의 한반도 전개 자체를 주저하게 만들 수 있다는 점에서 유사시 전쟁의 양상을 바꿀 있는 핵심 위협 요소입니다. 우리와 미국의 대북 정책이 냉탕과 온탕을 오가며 우왕좌왕하는 사이 북한의 군사 능력은 독버섯처럼 자라났습니다. 북한 군사력이 통제 가능한 수준을 넘어서는 건 아닌지 우려됩니다.
(사진=미 백악관 제공, 연합뉴스)
남승모 기자 smnam@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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