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문·제작 기쁨 잠시…손 놓고 있는 시간에 걱정이 [ESC]
창업과 지속 가능성
지인·소개 등 창업 초기 꾸준히
300만원대 우드슬랩 여럿 완성
의뢰 끊기자 ‘시간이 비용인데…’
창업을 했으니 돈을 벌어야 한다. 그저 취미로 연 작업실이 아니라 상업적으로 지속 가능하다는 것을 대내외에 증명해내야 했다. 인테리어 공사를 할 때는 당장 눈앞에 닥친 일들의 무게로 걱정할 정신조차 없었는데, 일단 장비를 들이고 나니 덜컥 겁이 났다. 이제 뭘 해야 하지?
신기하게도 창업 초반에는 제작 의뢰가 꾸준히 들어왔다. 지인이거나 지인의 소개도 있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적지 않았다. 뭘 보고 주문을 해주셨는지,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앞길이 막막한 초짜 공방장의 입장에서는 정말이지 천군만마를 얻는 느낌이었다. 그저 정성을 다해 만드는 게 보답하는 일이라 믿고 앞으로 나아가는 수밖에 없다.
스승의 전문 분야를 내가
어쨌든 처음 몇 달 동안은 꾸준히, 쉬지 않고 일할 수 있었다. 우선 아내의 직장 동료가 우드슬랩 테이블과 벤치 제작을 맡겨 주었다. 우드슬랩 테이블 제작은 처음 공방을 시작하는 입장에서는 꽤 큰 프로젝트다. 수종에 따라 천차만별이지만 보통 200만~300만원대의 고가에 거래되기 때문이다. 통나무를 세로 2~3m 길이로 길게 제재하고, 기계식 건조 과정(업계에서는 ‘떡판을 쪄낸다’고 표현한다)을 거친, 두께 50㎜내외의 원목 판재를 ‘우드슬랩’이라고 부른다. 목재를 접합하는 게 아닌, 한 판을 통째로 테이블 상판으로 사용하기에 아름답고 유려한 곡선을 그대로 즐길 수 있다.
옆면을 나무껍질 부분의 자연스러운 곡선 그대로 살려 작업하면 ‘라이브엣지 테이블’이 된다. 물론 자재의 상태나 사용자의 취향에 따라 네모반듯한 형태로 제작할 수도 있다. 주로 북미산 월넛(호두나무)이나 메이플(단풍나무)류의 하드우드가 사용된다. ‘공간의 완성은 우드슬랩 테이블’이라는 말이 있다. 완성된 제품을 주방이나 다이닝룸에 설치하면, 공간의 품격이 달라진다. 나는 ‘자연의 일부’를 생활 공간에 들여놓은 일이라고 말하곤 한다.
처음 제작해 납품한 우드슬랩 테이블의 원재료는 인도네시아산 망고나무였다. 과일 ‘망고’가 열리는 그 망고나무가 맞다. 우리 집 주방에도 망고나무 테이블을 직접 만들어 사용하고 있는데, 여러 손님들을 초대해 식사모임을 하다보면 식탁에서 눈을 못 떼는 분들이 있다. 식사시간 내내 끝없이 테이블을 쓰다듬다가 가는 손님도 있다. 그런 분들 중에 연락이 온다. “혹시 테이블 주문해도 되나요?” 아이고, 당연히 됩니다. 감사합니다. 지인 할인도 해드려야죠. 첫 주문자도 그렇게 우리 집 식탁을 어루만지고 돌아간 분들 중 하나였다.
망고 우드슬랩은 국내에선 아직 널리 알려지지 않았지만 화려한 무늬와 색감이 압권이다. 단단해서 쉽게 변형되지 않는 하드우드이고, 밀도가 높아 대단히 무겁다. 그래서 샌딩(표면을 부드럽게 하는 작업)도 정말 시간이 오래 걸린다. 업계의 용어로, ‘샌딩이 안 먹는다’. 그러니 별 수 없다. 먹을 때까지 샌딩, 샌딩, 또 샌딩이다. 망고의 특성상 목재에 유분(기름기)이 많은 점도 까다로운 대목이다. 나무가 갈라져 있는 부분에 레진을 충전해서 보수해야 하는데 액체 상태의 레진이 잘 스며들어 굳을 수 있도록 사전 처리에 신경을 무척 많이 써야 한다. 치과에서 사용하는 그 레진이 맞다. 목공용 레진이 따로 있는데, 레진을 활용한 공예에 대해서는 따로 한번 다룰 예정이다. 레진 작업이 끝나면 또 샌딩이다. 우드슬랩 테이블의 경우, 제작에 드는 품의 8할 정도는 샌딩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천연 오일로 마감하고 다리를 달면 비로소 거친 한 장의 우드슬랩이 아름다운 가구로 재탄생된다,
망고 테이블 말고도 월넛이나 메이플 테이블도 제작했다. 스승의 전문 분야인 우드슬랩 테이블로 목공을 처음 배웠는데, 내가 만든 공방에서 직접 제품을 만들어 납품하고 있으니 격세지감이다. 오일 테라피에 사용하는 오일 수십개를 한꺼번에 보관할 수 있는 원목 거치대도 주문받아 만들었다. 내 공방 근처의 미술 공방인 ‘제주그림’ 대표님은 합판 소재의 작업용 드로잉 테이블 4개를 한꺼번에 의뢰했다. 예산이 빠듯해 머뭇거렸는데, 이웃집이기도 해서 최소한의 비용으로 제작해드렸다. 그 미술 공방은 제주의 ‘민화’를 테마로 작업하는 곳인데 교육생이 끊이지 않는다. 공방을 ‘사회적 기업’으로 만들어가는 과정도 밟고 있다고 한다. 오가는 길에 내가 직접 만든 드로잉 테이블에서 그림 그리기에 열중하고 있는 사람들을 보면 보람이 느껴진다. 많은 교육생을 보며 부러운 마음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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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이 안정적 수익원인데…
다양한 장르의 소규모 공방이 비교적 쉽게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 게 바로 ‘교육’이다. 나도 창업과정에서 “교육부터 시작하라”는 조언을 많이 들었다. 하루짜리 간단한 체험교육이 가장 쉽다. 회원을 모아 소정의 교육비를 받으며 3개월 혹은 6개월짜리 커리큘럼을 운영하는 방식이나 주위 학교나 관공서의 체험 교육 프로그램을 따낼 수도 있다. 교육 공방의 장점은, 작업의 난도는 낮지만 안정적인 수익을 창출하기에 비교적 용이하다는 데 있다. 도마나 원목 트레이 같은 소품, 간단히 샌딩하고 조립할 수 있는 책꽂이나 스툴 등이 주로 수업 교재로 사용된다.
이곳 제주와 같은 지방 소도시의 특성인지도 모르겠지만, 초등학생이나 학부모를 대상으로 한 학교의 목공체험은 의외로 수요가 많다. 스승의 공방에 다닐 때는 보조 강사 자격으로 학교 교육을 자주 나갔다. 미리 재료와 간단한 수공구 등을 준비해 가서, 체험자가 1~2시간 안에 제품을 완성할 수 있도록 하면 된다. 물론 어려움은 있다. 우선 계속 말을 해야 한다. 대단히 큰 스트레스다. 정보를 알려주고, 쏟아지는 질문에 답해야 하며, 작업이 막히면 직접 일일이 도와줘야 한다. ‘안전관리’는 늘 최우선순위에 둬야 할 문제다. 동시에 체험자가 흥미와 보람을 느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정말 어려운 일이다. 교육장에 들어서면 늘 맞지 않는 옷을 입고 있는 것처럼 불안하고 불편했다.
한 명의 ‘목수’를 탄생시키기 위한 중장기 교육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건 더 부담스럽다. 누군가를 가르칠 깜냥이 안 된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지금도 종종 교육 문의가 들어오는데 정중히 거절하고 있다. 혼자 사부작사부작 일하는 환경을 선호하는 취향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누군가는 배부른 소리라고 할 수도 있겠다. 그렇지만 혼자이고 싶은데 어쩌겠는가. 내 마음대로 일하고 싶어 창업했다. ‘마음대로 좀 하면 어때!’하는 마음으로 버티고 있다.
물론 주문제작은 비정기적이다. 계절이나 경기의 영향도 받는다. 초반의 주문 러시는 찰나의 꿈이었을까. 기약 없이 손을 놓고 있어야 하는 기간이 길어지기 시작했다. 소상공인에게 ‘시간’은 곧 ‘비용’이기에, 이렇게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슬슬 들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교육’은 여러 가지 이유로 내가 가고 싶은 길은 아니었다. 어떻게 해야 할까. 변화가 필요했다.
글·사진 송호균 나무공방 쉐돈 대표
한겨레 기자로 일했다. ‘이대로는 도저히 가족과 함께 하는 시간을 내기 어렵다’고 생각해 2016년 온 가족이 제주도로 이주했다. 본업은 육아와 가사였는데, 취미로 시작한 목공에 빠져 서귀포에서 목공방을 열었다./boxStyle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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