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2년생 동갑내기 이찬재 안경자 부부가 보여주는 예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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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보니 아름다웠더라
1942년생 동갑내기 이찬재·안경자 부부는 손자들에게 보여주려고 그리기 시작한 그림을 SNS에 올려 2019년 ‘인터넷의 오스카상’으로 불리는 웨비 어워즈 (The Webby Awards)의 사회 부문에서 예술 문화상을 받았다.
브라질에서 살 때(부부는 1981년 브라질로 이민을 갔다가 2017년 한국으로 돌아왔다) 딸과 5분 거리에 살아서 손주들과 가깝게 지냈어요. 매일 등하교시키면서 대화를 많이 나눴죠. 그런데 2015년 딸네가 갑자기 한국으로 돌아가 하루아침에 허망한 상태에 빠졌어요. 당시 뉴욕에 살던 아들이 아버지의 건강이 걱정되자 그림을 그리라고 하더군요. 그림을 배운 적도 없고 취미로 그림을 그린 적도 없어서 “말도 안 된다”며 거부했었죠.
안경자(이하 ‘안’) 하루 종일 멍하니 있는 남편에게 변화가 필요했어요. 마지못해 남편이 스케치를 시작했고 그걸 아들에게 보여줬더니 이번엔 그림을 인스타그램에 올리라는 거예요. 우리는 인스타그램이 뭔지도 모르는데 말이에요. 아들이 전화로 인스타그램이 무엇인지 자세히 설명해주면서 아버지가 그린 그림을 휴대전화로 촬영해 올리는 방법을 가르쳐줬고 그대로 따랐죠. 처음엔 너무 겁이 났어요.
뭐가 겁났나요?
안 버튼 하나를 잘못 누르면 사라질 것 같았어요.(웃음)
이 그림이 깨끗하게 찍히지 않아서 이 방 저 방 햇빛을 찾아 옮겨 다니며 촬영했던 게 기억나요. 지금 생각하면 아주 우스운 사진인데 아들이 사진이 잘 안 나와도 상관없으니까 매일 올리라고 했어요. 그림을 그리기 전에는 하루가 길게 느껴지고, 허전하고 답답했는데 그림을 그리면서 아이들과 대화하는 것 같은 기분을 느끼게 됐죠.
그림의 주제가 일상과 닿아 있습니다. 주제는 어떻게 선정하나요?
안 우리 인스타그램 계정이 드로잉스 포 마이 그랜드칠드런(@drawings_for_my_grandchildren), 손주들을 위한 그림이거든요. 저와 남편이 이번엔 아이들과 어떤 이야기를 할지 정합니다. 아이들이 두고 간 장난감이나 해변에서 놀았던 어떤 날의 이야기 등을 정하면 머릿속에 스토리텔링이 완성되죠. 글과 그림을 가족 메신저에 보내고 아들, 딸과 함께 이에 대한 생각을 주고받아요. 당시에 우리는 브라질, 아들은 뉴욕, 딸은 서울에 있으니 시차가 있어 시간을 맞춰 대화를 나눴죠. 다음 작업은 번역입니다. 아들은 미국에서 태어난 아이를 위해 영어로, 딸은 브라질에서 태어난 아이들을 위해 포르투갈어로 번역합니다. 그래야 손주들이 읽을 수 있지 않겠어요? 그래서 3개 국어로 올렸는데 여러 나라에서 우리를 응원하는 사람들이 늘어났죠.
글과 그림을 본 인친들의 반응은 어떤가요?
안 “그림이 따뜻하다”, “눈물이 난다”, “돌아가신 조부모님과 부모님이 생각난다”, “우리 할머니, 할아버지가 되어주세요”라는 반응이 제일 많아요. 지역과 언어는 다르지만 느끼는 마음이 같다는 걸 배웠어요.
이른바 온라인 소통을 시작하고서 바뀐 것이 있나요?
안 우리의 시야가 확대됐고, 모든 아이가 내 손주가 됐다는 점이에요. 특히 한국에 돌아와서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 다니는 아이들이 선생님과 함께 서로 손잡고 공원을 걸어가는 모습을 보면 그렇게 예쁠 수가 없어요. 한참을 따라가지요. 마치 내 손주가 있는 것처럼 말이에요.
인스타그램뿐만 아니라 틱톡에서도 활동 중이십니다.
이 한국에 돌아와 전시회를 열고, 강연도 하고 책도 출판하면서 바쁘게 지냈어요. 그러다가 코로나19 팬데믹이 덮쳤지요. 친구를 만나지 못하고 헬스장에 못 가고 집에만 있는 시간이 시작됐죠. 안 되겠다는 생각을 한 딸이 틱톡을 하자고 했어요. 어느 날 딸이 지코의 ‘아무노래’ 영상을 보여줬죠. 노래가 리드미컬하고, 춤이 재미있고 멋있다고 하니까 따라 해보라고 하더군요.
안 춤을 따라 추면서 깔깔 웃었죠. 우리의 ‘아무노래 챌린지’를 본 지코가 선물을 보내주기도 했어요. 딸이 작품을 선정하고 우리가 따라 출 수 있도록 리드해요. BTS나 비, 박재범 등등 다양한데 따라 하기 수월할 때도 있지만 어려울 때가 더 많아요. 딸이 추는 것을 보고 한 동작 한 동작을 따라 하죠. 나중에 그 동작들이 연결돼야 하는데 그만 그 순서를 잊어버려요. 그럼 또 한바탕 웃는 거죠.
이야기를 듣다 보니 두 분 참 즐거운 분들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안 남편은 매사 논리적으로 따지는 경향이 있지만, 저는 긍정적이고 낙천적이에요. 또 세상에 궁금한 게 많고요. 이것이 나의 에너지 원천인 듯해요.
이 저는 하루를 즐겁게 보내려고 합니다. 여느 아버지들처럼 친구와 만나는 걸 아주 좋아하죠.(웃음)
마지막으로 <우먼센스>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나요?
안 아들이 5살 때 남편이 엽서 두 장에 그림을 그려준 적이 있어요. 그때 ‘그림을 잘 그리는 우리 아버지’라고 인식됐나 봐요. 그 기억이 모든 것의 출발이었습니다. 부모님이 은퇴하셨거나 연로하신 경우 우리 부모님이 어떤 특별한 일이나 취미를 가졌고, 어떤 재주가 있는지 열심히 살펴보세요. 전혀 모르고 있었던 의외의 능력이 보일 수 있어요. 어머니가 요리하는 모습을 촬영하거나 아버지에게 사자성어 풀이, 한자 쓰기를 권하면 어떨까요? 혹은 휴대전화로 꽃이나 경치, 손주 표정을 찍도록 응원하세요. 이제부터라도 부모님의 인생을 기록해보도록 힘을 드리세요. 저 또한 매일 글을 써요. 동화를 쓰고, 내 지난 일들을 쓰고, 한국에 와서의 적응기를 쓰죠.
이 아들과 딸이 권하지 않았다면 우리가 인스타그램과 틱톡을 할 수 있었을까요? 덕분에 하루하루를 즐겁게 지내고 있습니다.
기획 : 하은정 기자 | 취재 : 김지은(프리랜서) | 사진 : 이찬재·안경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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