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의 시대, 글쓰기로 나를 멋지게 드러내는 사람들 [ESC]
노후 보장되지 않는 시대, 나 자신 마케팅하는 퍼스널브랜딩
유튜브 대본 등 ‘돈 버는 글쓰기’ 관심…사람 마음 움직이는 일
맥락 만들고 소비자 관심사에 집중…“글 잘 써야 콘텐츠 좋아져”
글쓰기가 유행이란 말을 올해 아니 지난해 종종 들었다. 글 쓰는 게 직업인 나로선 의아했다. 재밌고 좋은 게 많은데, 글쓰기가 유행이라고? 지난해 봄, 동영상 강연 회사의 요청을 받고 글쓰기 강의 영상을 촬영했다. 담당자와 이야기를 나눴는데, 글쓰기로 돈 버는 방법을 알려주는 강의가 인기가 많다고 했다. 글쓰기로 돈을 번다고? 그걸 가르친다고? 놀라웠다. 일단 나는 그런 방법을 모르고, 글쓰기가 직업이지만 글쓰기로 돈을 번다고 생각조차 해본 적이 없었다.
돈 안 들이고 할 수 있는 일
담당자에게 그 강의를 수강하면 돈을 벌 수 있냐고 물었다. “요즘은 누구나 온라인에 스토어를 열 수 있잖아요. 물건을 팔려면 제품 소개 글을 써야 하고요. 구매 버튼 누르는 확률을 높이는 문장이 있지 않을까요? 그런 글쓰기를 가르쳐주는 강의인 거죠.” 마음을 움직인다는 점에서는 돈 버는 글쓰기와 다른 글쓰기의 목적이 같구나. 순간 나는 ‘다른 글쓰기’를 하는 사람으로서 상실감이 들었다. 다른 글쓰기를 어떻게 규정해야 하는지는 애매하지만, 아무튼, 나는 글을 써서 돈을 벌고 있지는 못하니까.(시집도 잘 안 팔리고, 에세이도 잘 안 팔린다.) 뚜렷하게 증명해서 나에게 알려주듯, 내 강의는 매우 인기가 없었다. 나만의 문장을 쓰는 법, 글쓰기로 내면과 만나는 법과 같은 것을 가르쳤다. 이런 글은 돈벌이에 도움이 되지 못할 것이다.
퍼스널 브랜딩 컨설턴트이자 책 ‘그놈의 마케팅’ 저자인 신영웅씨는 글쓰기의 유행(정말 유행인지는 더 두고 봐야겠지만!)을 ‘퍼스널 브랜딩’의 유행과 연결해서 이야기한다. 유행을 유행과 연결한다? 문장이 이상한데. 글쓰기에 대해 적는 기사라 예민해졌나.
“요즘 어린 친구들 보면 입버릇처럼 하는 말 있잖아요. ‘아, 회사 때려치우고 유튜브나 할까. 온라인 스토어 개설해서 물건이나 팔까.’ 그들은 직장 열심히 다녀도 노후가 보장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요. 회사나 집단에 기댈 수가 없잖아요, 이제. 그렇다 보니 혼자 살아가는 방법을 찾는 거죠. 가장 돈 안 들이고 해볼 수 있는 게 자기 자신을 파는 거고요. 더 정확하게 말하면 자신의 취향. 그래서 퍼스널 브랜딩이 인기를 끌게 됐어요.”
어렴풋이 알고 있는 얘기였지만 전문가에게 들으니 손등을 베이는 느낌이었다. 퍼스널 브랜딩, 즉 자신을 브랜드로 만드는 것. 멋진 용어인데 시대적 고뇌가 담겨 있다니. 물론 이유가 그것만은 아니다. 자신을 단독자로 인식하고 스스로를 드러내는 데 적극적인 세대가 출현했다. 물론 이것도 따지고 들어가면 ‘먹고살기 어려워서’ ‘삶이 불안해서’라는 푸념이 나오겠지만.
그리고 젊은 나이에 일확천금을 벌었다는 이야기를 종종 듣는다. ‘경제적 자유’라는 너무 말도 안 되게 멋진 단어도 출현했으며, 주변을 둘러보면 화려하게 사는 것 자체가 직업인 ‘인플루언서’들을 쉽게 볼 수 있고, 또 누군가는 코인으로 수백억을 벌었다고 한다. 이러한 현상들이 박탈감을 느끼게 한다. 퇴사, 이직, 엔(n)잡과 같은 단어가 시대의 키워드가 되면서 일찌감치, 조금은 다른 삶의 방식을 찾는 사람들이 늘어나게 되었다. 신영웅씨가 한마디를 더 했다. “개인을 브랜딩하기 적합한 매체가 생긴 것도 크게 영향을 미쳤죠. 유튜브나 인스타그램. 요즘은 틱톡도 있고요.”
그런데 이런 흐름과 글쓰기가 무슨 상관이지? “글쓰기가 브랜딩의 시작이니까. 온라인 스토어에서 물건을 팔거나, 유튜브를 하거나 에스엔에스(SNS) 인플루언서가 되거나, 퍼스널 브랜딩이 잘되어야 성공합니다. 소비자들은 그 사람의 취향이나 안목을 구매하는 거니까요. 자신을 브랜딩하려면 글쓰기를 해야 하는 거고요. 그리고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지만, 많은 사람들이 글은 써볼 수 있다고 믿어요. 사진이나 영상은 상대적으로 어렵다고 느끼고요. 그러다 보니 글쓰기가 유행인 거고요.” 나는 정말로, 신영웅씨에게 퍼스널 브랜딩 컨설팅을 받고 싶어졌다. 오랫동안 글을 쓰며 살아왔는데, 문장으로 나를 브랜딩한다는 개념에 대해서는 정말 단 한번도 의식해본 적이 없다.
사람들이 가장 쉽게 생각하는 무기
‘우리는 매달 새로운 사람이 됩니다’라는 슬로건으로 모임을 운영하는 자기발견 커뮤니티인 ‘미션 캠프’의 김재진 대표를 만났다. “우리는 ‘미션 캠프’라고 불러요. 나를 찾는 캠프예요. 프로그램 신청을 받으면 500~600명씩 지원하세요.” 미션 캠프에는 다양한 캠프가 있다. 웹사이트에서 내가 특히 재미있게 본 캠프는 ‘인터뷰 캠프―당신의 지금을 인터뷰합니다’이다. “네, 그 캠프는 온라인에서 진행되는데요, 신청을 정말 많이 하세요. 저희가 매일 오전 하나씩 질문을 보내드려요. ‘나’에 대한 질문이에요. 충분히 생각하고 답변을 글로 써서 다시 저희에게 보내주시는 방식으로 진행돼요. 이렇게 한달간 나에 대한 인터뷰를 하고 나면, 책이 완성되는 거죠.”
그의 말을 듣고 미션 캠프 슬로건을 다시 읽어보니 더 멋지고 훌륭하게 느껴졌다. “자신을 이해하고 발견하는 과정, 이것이 저희가 생각하는 퍼스널 브랜딩이에요.” 김재진 대표의 말을 들으며, 퍼스널 브랜딩은 나를 팔기 위한 방식이기도 하면서 나답게 사는 걸 찾는 과정, 나를 이해하고 싶은 마음, 더 뛰어난 사람이 되고 싶은 욕망 같은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역시 이 경우에도 쉽고 필수적인 무기는 글쓰기. “맞아요. 많은 사람들이 글을 가장 쉬운 무기라고 생각해요. ‘쉽다’는 말에는 동의하지 않지만, 확실한 건, 글쓰기가 모든 콘텐츠의 기본이라는 거예요.” 앞서 이야기 나눈 신영웅씨처럼 김재진 대표도 ‘글쓰기’가 쉬운 게 아니라고 말해줘서 고마웠다.
“시간이 지날수록 신청자들이 많아지고 있어요!” 미션 캠프에서 발행하는 종이 잡지 ‘컨셉진’의 김경희 편집장이 말했다. “제가 진행하고 있는 에디터 캠프 같은 경우, 다양한 사람들이 수업을 듣는데, 유튜브 하려고 이 수업을 듣는다는 사람도 꽤 있어요. 공통점은 다들 글을 잘 쓰고 싶어 한다는 거예요. 자기가 원하는 걸 글로 적을 수 있어야 유튜브 대본도 쓰니까요.”
솔직히, 놀랐다. 자신을 찾는다는 화두가 대중 차원에서 중요하게 인식되기 시작한 것은 꽤 되었다. 스스로를 발견하기 위해 여행을 떠나거나, 명상을 하거나, 다양한 활동을 한다는 것도 알고 있다. 그런데 글쓰기와 퍼스널 브랜딩이라니.
아, 그래서 퍼스널 브랜딩을 잘하려면 글을 어떻게 써야 하는 건데? “소비자들이 궁금해하는 주제 중에서 내 관점을 잘 보여줄 수 있는 걸 써야 해요. 글 쓸 때 이 부분을 간과하는 경우가 많죠. 보통은 자기가 쓰고 싶은 걸 쓰고 누군가 공감해주길 바라요.”(신영웅) 자신을 상품 가치 있는 존재로 만드는 거라면, 우선 소비자들이 무엇에 관심을 갖고 있는지 알아야 한다는 것. 또한 그것을 자신만의 언어로 쓰는 것. 그런데, 나, 쓰고 싶은 것만 쓰며 살아왔구나. 그래서 책이 안 팔렸나? 퍼스널 브랜딩이 안 되고 있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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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모 관련 책 만들다 탈모가 왔다면
김재진 대표도 의견을 주었다. “맥락을 만드는 게 중요해요. 수업 때 이런 이야기를 했어요. 저 탈모가 생겼어요. 아이러니하게도, 탈모 제품 브랜드의 책을 만들다가 생겼어요. 그 브랜드에 대해 공부하다 보니 그 책을 잘 만들고 싶어졌거든요. 좋은 제품이라는 걸 알게 되어서요. 사람들이 제 이야기를 듣고 그 브랜드를 궁금해했어요.” 사람들은 그 탈모 제품 브랜드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탈모 책을 만들다 탈모가 생긴 한 남자를 재미있게 쳐다보았을 것이다. 또한 그 안타까운 남자는 자신의 탈모를 사랑하게 되었을 것이다. 자신을 브랜딩하는 글쓰기란 이런 것이구나.
마지막으로 9년 동안 다닌 회사를 그만두고 휴식을 취하다가 최근 유튜브 채널을 개설한 원지영씨를 만났다. 그는 여행·음식 등 일상의 이야기를 브이로그 형태로 보여주고 있다. 먼저, 앞으로 취직 안 할 거냐고 물었다. “현재는 수익이 안 나고 있어서 취직을 할 거예요. 여유 있게 유튜브를 하고 싶어요. 수익이 나도, 유튜브만 하진 않을 거예요. 다양한 일을 하고 싶어요.” 그는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다. “구독자가 많지 않고 조회수도 높지 않지만 내 이름을 걸고 하는 무엇인가를 사람들이 좋아해주는 걸 보면 신기하고 뿌듯하고 즐겁더라고요. 그래서 내 색깔은 무엇인지, 어떤 콘텐츠를 기획하면 좋을지 고민하고 있어요.”
정말로 세대마다 특징과 인식이 다른 걸까. 내가 이삼십대일 때는 ‘내 이름을 걸고’ 무엇인가를 한다는 것이 특별한 것으로 여겨졌다. 정확하게 말하면 특별한 사람만 하는 어떤 것. “유튜브뿐 아니라 어떤 방향으로 나를 더 알리고 확장시킬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어요.” 원지영씨의 이 말은 나를 더 놀라게 했고, 감동스럽기도 했다. 불과 2~3년 전만 해도 ‘엔(n)포 세대’라는 말이 유행했는데, 시대는 또 한번 변했다. 인식도 유행을 타는 것일까. 최근엔 하고 싶은 것들을 오히려 적극적으로 하고 있다. 포기 대신 시도!
글쓰기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나누었다. “글 잘 쓰는 분들을 보면 멋있더라고요.” 처음 듣는 말이다. “저도 생각을 글로 잘 정리해서 표현하고 싶어요. 그러면 콘텐츠를 만들 때도 도움이 될 거예요. 콘텐츠의 목적은 표현하고 설득하는 거잖아요. 글을 잘 써야 그런 일들을 효율적으로 할 수 있어요.”
아, 결국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찾는 과정이구나. 글쓰기도, 퍼스널 브랜딩도 그 자체가 본질은 아니구나. 마음속에 희망이 솟구친다. 지금 이 시점, 모든 유행의 본질은,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찾는 과정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응원하고 싶고, 동참하고 싶다.
이우성 시인·슈퍼 크리에이티브 콘텐츠 크루 ‘미남컴퍼니’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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