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진짜 밥맛을 찾아서, 솥밥 [ESC]
쌀에 물을 붓고 열을 가하면 서서히 점성이 생기며 풀처럼 된다. 조밀했던 쌀 전분이 느슨해지는 전분의 호화 현상이다. 우리는 매일 호화된 밥을 먹으면서 밥알의 적당한 수분을 기가 막히게 판단해내는 능력을 평생 키워왔다.
특히 한국과 일본에서 주로 먹는 품종, 자포니카는 윤기가 잘잘 흐르면서 수분이 촉촉하게 고루 있는 밥알을 보며 ‘차지다’라고 칭찬을 한다. 국물 요리는 대량으로 끓여야 맛있지만 밥은 적은 양을 지을 때 맛있게 된다. 모 대형 고깃집 입구엔 미니압력밥솥이 몇 십 대 줄지어 있다. 고기를 구워 먹은 뒤 후식은 당연히 밥이라고 생각하는 한국인의 진심을 울리기 위해 고객의 식사 주문 후 테이블별 취사를 해주는 방식으로 식사의 만족도를 높이기 위해서다. 밥이 주가 아닌 고깃집에서도 테이블마다 갓 지은 밥을 내어주는 것을 보며 한국인의 밥사랑을 새삼 실감했다.
스테이크는 구운 뒤 고기를 쉬게 하는 ‘레스팅’ 시간을 제대로 가졌냐가 매우 중요하다. 고기 내외부 열과 수분의 적절한 분산은 입안에서 느끼는 식감과 풍미를 좌우하기 때문이다. 밥도 스테이크의 레스팅처럼 ‘뜸들이기’가 식감의 관건이 된다. 한국인 못지 않게 밥에 진심인 일본인들의 밥짓기 표현 중에 ‘갓난아기 울어도 뚜껑 열지 말라’라는 말이 있다. 뜸들이기를 할 때는 누가 뭐래도 가만히 두고 전분이 완전히 부드러운 상태가 되도록 하라는 의미리라. 불을 끄고 바로 솥뚜껑을 열면 뜨거운 증기가 달아나 밥알에 심이 남게된다. 결국 제 밥솥의 증기로 쌀알의 겉과 속을 충분히 익히는 것이 밥맛의 핵심이라 하겠다.
이 모든 것을 이제는 소형이든 대형이든 전기 밥솥이 알아서 해준다. 하지만 이토록 편리하고 똑똑한 전기 밥솥은 갓 지은 밥으로 감동도 주지만 세월이 지나며 많은 이들을 작은 솥에 갓 지은 밥의 향기와 윤기에서 오는, 밥에 있어서 만큼은 날선 우리네 취향을 다소 무디게 만든다. 이에 요즘 우리는 외식을 통해 잃어버린 밥맛을 되찾곤한다.
원물인 쌀과 밥솥, 밥짓기에 철학을 담은 솥밥 명물들은 밥상 위 주연은 밥임을 당당히 주장한다. 뚜껑을 열면 개성 있는 고명에 감탄하고 촉촉한 밥알의 식감을 온전히 즐기며 누룽지의 제 맛도 느낄 수 있는 별미 외식 솥밥을 소개한다.
바르왓제주말로 바다인 ‘바르’와 밭인 ‘왓’을 합쳐 상호를 정하고 솥밥에 제주의 바다와 밭을 담았다. 쌀이 귀했던 옛날, 보리를 보태고 감자를 듬뿍 얹은 밥인 ‘지슬반지기밥’, 애월읍의 취나물과 한라산 표고버섯을 더한 ‘드릇제주솥밥’ 등 제주 산물을 잘 풀어낸 제주 출신 임서형 셰프의 로컬리즘 솥밥을 즐길 수 있다.
제주 제주시 한림읍 한림남길 24 2층/ 전화번호 0507-1428-4588/ 지슬반지기제주솥밥 2만5천원. 드릇제주솥밥 한상 3만원.
숨라이스바핫한 서울 용산구 한남동 골목 안에 숨어 있는 숨라이스바. 솥을 이미지한 ‘숨’의 명칭은 트레인 안의 주물솥을 보면 고개가 끄덕여진다. 실내 분위기도 상차림도 밝고 환하다. 솥뚜껑을 열면 전국에서 공수한 싱싱한 산물이 밥 위에 아름답게 펼쳐져 있다. 솥밥에 부어둔 누룽지는 금세 별미 국물이 된다.
서울 용산구 이태원로54길 58-18 1층 / 02-790-7753 / 금태가리비솥밥 2만7천원. 미나리항정솥밥 2만5천원.
돌돌솥경남 창원 가로수길 인기 솥밥집. 뭘 주문해도 푸짐함에 식욕이 당긴다. 특히 고기 메뉴 솥밥은 큐브스테이크가 밥위에 그득 오른 형상이다. 밥을 덜고 누룽지 육수를 부으면 솥 아래 촛불을 지펴 따뜻한 온도를 유지하게 해줘 제대로된 후식 누룽지를 선물한다. 소스와 상차림 구성에 일식 스타일도 가미되어 있지만 젓갈, 김치 등은 다분히 한국적이다.
경남 창원시 성산구 창이대로492번길 11 지하 1층/ 0507-1342-6432 / 부채살솥밥 1만6천원. 항정살솥밥 1만5500원.
글·사진 이윤화 다이어리알 대표/ ‘대한민국을이끄는외식트렌드’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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