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울에 채취한 초록 감태…바닷바람이 입안에 훅 [ES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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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여년 전 기와가 있고 중정에 작은 연못이 있는 서울 북촌의 한옥에서 친한 셰프가 요리를 선보였다.
초록색의 음식이 주는 청량감이 있는데 감태는 그 청량감을 넘어선 비현실적인 초록을 선사한다.
감태를 가장 맛있고 편하게 먹는 방법은 구운 감태를 김밥처럼 요리하는 것인데 밥이랑 맞닿으면 보드랍고 촉촉해지는 감태의 장점을 살려주면 좋다.
김밥 소는 다양하게 사용할 수 있지만 노란색 단무지를 곱게 채 썰어서 넣거나 고추장에 잘 양념해서 볶은 김치를 같이 사용하면 감태의 초록색과 대비되어 더 예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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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처럼 가공되는 ‘가시파래’
생감태, 부드럽고 촉촉한 식감
단무지·숙채 넣어 ‘새로운 김밥’
10여년 전 기와가 있고 중정에 작은 연못이 있는 서울 북촌의 한옥에서 친한 셰프가 요리를 선보였다. 요리사인 우리들은 항상 새롭고 귀한 재료에 매료되기 마련인데 게다가 한옥 정원에서 선보이는 요리들이라니! 마음속 기대가 가득했다.
정성껏 차려낸 요리 중 초록색으로 감싼 주먹밥이 가장 눈에 띄었다. 손으로 집어 드니 묵직한 주먹밥의 겉면에 가볍게 붙어있는 초록의 눅눅한 김 같은 것이 손에 묻어났다. 손가락에 붙은 초록을 입으로 가져가니 상큼한 바닷바람이 느껴졌다. 감칠맛이 나는 김과는 사뭇 다른 새콤한 느낌. 그리고 코를 찌르는 톡 쏘는 향기가 매력적이었다. 난생처음 보는 초록색. 참기름 향이 아쉬웠을 정도로 크게 인상적이었던 감태와의 첫 만남을 아직도 기억한다.
감태는 김처럼 가공되어 팔리고 있지만 사실은 파래다. 정확한 이름은 가시파래라고 하는데 감태 뭉치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끝이 뾰족하다. 또 김처럼 바스락거리거나 쉽게 부서지지 않는다. 가시파래란 이름처럼 갈고리 끝으로 서로 얼기설기 얽혀있어서 부스럼이 덜하다. 얇고 가늘고 긴 형태 덕분에 찢어지는 느낌도 없다. 젖은 종이처럼 착 달라붙는 부드러운 느낌도 좋다. 입안에서도 쉽게 사라지지 않고 잠시 남아 조직감을 주다가 녹아 없어진다.
무엇보다 감태가 주는 가장 좋은 느낌은 색감이다. 초록색의 음식이 주는 청량감이 있는데 감태는 그 청량감을 넘어선 비현실적인 초록을 선사한다. 마치 먹을 수 없는 인공적인 무엇처럼 초록이다. 그런데 이 초록은 자연 그 자체다. 충남 서산에서 초록의 겨울 바다를 본 적이 있는데 마치 한여름의 잔디밭처럼 푸르다. 실제로 1월이나 2월이면 바닥에 주욱 널리는 감태의 부드러운 부분을 채취해 상품으로 만든다고 한다. 감태는 오염된 지역에서는 자라기 힘들기 때문에 특산지에선 특별한 관리가 필요하다. 최근에는 다른 종류의 파래나 돌김 등과 섞어서 감태를 제품화하기도 한다.
시중에서 구할 수 있는 천연 감태는 크게 두가지다. 감태를 채취해서 성형하고 말려 만든 생감태. 이 생감태를 소금과 기름에 양념해서 구워만든 감태구이. 생감태의 경우 부드럽고 촉촉하다. 생감태는 특유의 바다 향과 새콤한 끝 맛 덕분에 다양한 재료들과 함께 사용할 수 있다. 잘게 뜯어서 샐러드에 토핑으로 올리거나 감태 자체를 식초, 간장, 약간의 설탕과 함께 버무린 후 참기름으로 마무리하는 미역무침처럼 촉촉하게 무쳐 먹어도 맛있다.
감태를 가장 맛있고 편하게 먹는 방법은 구운 감태를 김밥처럼 요리하는 것인데 밥이랑 맞닿으면 보드랍고 촉촉해지는 감태의 장점을 살려주면 좋다. 밥에 식초, 설탕, 소금 그리고 참기름 양념을 한꺼번에 해주고 이 밥을 감태 위에 얇게 펼친다. 김밥 소는 다양하게 사용할 수 있지만 노란색 단무지를 곱게 채 썰어서 넣거나 고추장에 잘 양념해서 볶은 김치를 같이 사용하면 감태의 초록색과 대비되어 더 예쁘다. 개인적으로 감태김밥에 가장 많이 사용하는 건 버섯인데, 표고버섯에 불고기 양념을 해서 볶아준 뒤 안에 듬뿍 넣어주면 좋다. 감태 자체의 촉촉한 느낌 때문에 감태김밥 안에는 생토마토, 파프리카 등 수분이 많은 생채보다는 익혀서 아삭한 숙채를 넣는 게 더 맛있다. 이렇게 화려한 색으로 돌돌 만 감태김밥은 먹을 때 혀에 닿는 첫 느낌이 인상적이다. 보드랍고 촉촉한데 상큼한 첫 느낌. 씹으면 새롭게 느껴지는 약간 질깃한 질감 덕분에 완전히 새로운 김밥이 탄생한다.
비현실적으로 느껴지는 초록의 청량함은 자연 그 자체의 색이다. 한겨울에 생성되는 새로운 초록. 한국의 겨울은 초록색이다.
홍신애 요리연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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