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면 싸가던 北여공 눈에 선해"…개성공단 폐쇄 수순에 입주社 눈물

김성진 기자 2024. 1. 6. 0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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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개성공단지원재단 해산 발표...사실상 공단 청산 수순
지난달 통일부 간담 때도 예고 없어...입주기업 입장 발표 검토
2022년 7월 경기도 파주시 판문점 3초소에서 본 북한의 개성공단지원센터 모습. 개선공단지원재단이 쓰던 건물이다./사진=뉴스1.

북한에 땅을 사게 될 줄 경남 토박이 이모 사장은 꿈에도 몰랐다. 남북관계가 해동되던 2004년, 개성공단이 추진될 때 이 사장의 중소기업 A사는 공단 내 6000평이 넘는 부지를 매입하고 250억원을 들여 전자소재 생산 설비를 지었다. 한해 영업이익의 20배가 넘는 금액이었다. 하지만 이 사장은 기업 성장을 위해 필요한 결정이라 생각했다. 당시 이 사장은 중국에도 생산 공장을 두고 있었다. 중국 공장은 불량품이 자주 나왔다. 하지만 직원들과 말이 통하지 않으니 시정에 시간이 오래 걸렸다.

북한 사람들은 말이 통했다. 한때 A사는 북한 노동자를 1000명 넘게 뒀다. 간식으로 초코파이를 주면 직원들은 먹지 않고 싸서 집에 있는 가족들을 먹였다. 이 사장은 "라면을 끓여주면 면발이 퉁퉁 불어도 비닐에 싸서 집에 가져가 가족을 먹이고 그랬다"며 "그런 모습을 보면 어렸을 때 공장에서 일하던 한국의 어머니, 할머니들이 생각났다"고 말했다.

북한 정부는 한국기업 유치를 위해 토지를 한 평당 15만원에 팔았다. 임금은 북한 최저임금 기준에 따라 한달에 50여만원이었고 매년 인상률은 5% 이하로 제한돼 있었다. 베트남보다 개성공단에 공장을 짓는 것이 인건비 감축 효과가 더 컸다. 5일 이 사장은 "한국의 기술, 북한의 노동력이 결합하면 동반 성장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고 했다. 2015년 개성공단 입주기업은 125개 사, 생산량의 가치는 56억달러(한화 7조원)에 달했다.

개성공단은 남북 관계가 경색된 2016년 2월 가동이 전면 중단됐다. A사는 한국과 해외에 생산공장이 있어 피해를 상쇄했다. 하지만 생산공장이 개성공단에 유일하게 있던 기업들은 피해가 극심했다. 개성공단기업협회의 조사에 따르면 실질 피해액은 투자자산 5936억원, 유동자산 2452억원 등 1조3240억원이다. 이중 정부는 5412억원을 지원했다.

공단이 한창 가동되던 2007년 입주기업들을 지원하는 개성공단지원재단이 설립됐다. 재단은 공단 가동 중단 후 입주기업들의 판로 개척, 마케팅 지원 등을 했다. 법적 지위나 예산 여건상 저금리 융자 등 입주기업들이 필요로 하는 지원은 하지 못했다. 입주기업들도 재단 지원이 "큰 도움이 되지는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공단이 가동할 때도 존재했던 재단이 명맥을 유지한다는 것을 긍정적으로 해석했다. 이 사장은 "개성공단이 재가동되는 때를 위해 재단을 남겨둔 것으로 받아들였다"고 했다. 정부는 2020년 북한이 공단 내 남북 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한 후에도 '개성공단을 폐쇄한 것이 아니다'라는 입장을 견지했다.

입주기업들은 정부 지원도 중요하지만 '공단 재가동'을 바라고 있다. 투자금을 회수하기보다 개성공단에 구축한 생산설비를 가동하는 것이 장기적으로 기업 성장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통일부는 그러나 지난 4일 개성공단지원재단을 해산한다고 공식 발표했다. 개성 공단의 정상화에서 더욱 멀어진 셈이다. 통일부는 소규모 청산법인을 차려 재단의 기업 지원 업무를 남북교류협력지원협회 등에 이관하고 공단 내 자산도 정리한다. 상근이사 1명을 포함해 재단 직원 41명 중 10명은 청산법인 등으로 이동하고 남은 30여명은 희망퇴직 수순을 밟는다.

업무를 넘겨받는 남북교류협력지원협회는 개성공단뿐 아니라 남북교류 업무 전반을 수행하는 단체다. 통일부도 지난해 조직 개편으로 개성공단을 담당하던 남북협력지구(개성공단)발전기획단을 남북관계관리단으로 축소 통폐합했다. 통일부 전체 인원이 80여명 줄었고, 감축 인원은 대부분 기획단 소속이었다. 입주기업들은 통일부 조직 개편과 지원재단 해산을 사실상 개성공단 폐쇄 수순으로 해석한다.

통일부는 조직 개편 후 지난달 개성공단기업협회와 간담회를 했지만 지원재단 해산 결정을 미리 알리진 않았다. 협회는 급작스런 재단 해산 소식에 공단 입주기업들과 공식 입장 발표를 검토하고 있다.

김성진 기자 zk007@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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