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문일답] "7분 남기고 계약…아직 메이저리거라 말하기는 성급" 고우석 '1박4일' 초고속 계약 마치고 귀국했다
[스포티비뉴스=인천국제공항, 장승하 영상기자] 고우석(샌디에이고 파드리스)이 메이저리거가 돼 돌아왔다. 미국 샌디에이고에서 메디컬테스트에 이어 계약까지 마친 고우석은 6일 새벽 인천국제공항 제2터미널을 통해 귀국했다. 30일의 포스팅 기간을 꽉 채우고 나서야 계약이 확정돼 미국에서 체류한 기간은 단 사흘에 불과했다. 새벽에 한국에 도착한 고우석은 피곤한 기색을 보이면서도 새로운 도전에 나서는 설레는 마음을 솔직하게 밝혔다.
입국 인터뷰에서 고우석은 "모든 일들이 급하게 이뤄져서 얼떨떨한데 이렇게 도착하고 나니 실감이 난다. 기분 좋다"며 "계약하기 직전까지 시간이 남지 않아서 걱정했다. 7분 앞두고 계약이 성사됐다. 기쁠 줄 알았는데 안도하는 마음이 들었다"고 밝혔다. 샌디에이고의 제안을 받은 뒤의 기분에 대해서는 "오퍼가 들어왔다는 것만으로도 기분 좋았다. 조건에 대해서는 에이전시에서 설명을 잘 해줬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도착해서 쉬는 시간 없이 많은 일들을 했다. 여기 있는 것도 실감이 잘 안 난다"며 "샌디에이고 구단에서 야구에 대한 얘기를 많이 했다. 적응을 도와주시겠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했다. 계약을 위해 방문한 펫코파크에서는 다르빗슈 유를 만나 대화하고 사진도 찍었다며 미국에서 있었던 에피소드를 들려주기도 했다.
고우석은 15분가량 이어진 인터뷰 내내 "아직은 메이저리거가 아니다"라며 자신을 낮췄다. 메이저리그 로스터에 들어가 확실히 전력이 될 수 있을 때까지는 겸손한 마음으로 몸을 만들겠다고 했다.
포스팅에 앞서 '조건부 허락'을 예고했던 고우석의 친정 팀 LG 트윈스는 기준에 못 미치는 계약 조건에도 대승적 차원에서, 고우석의 꿈을 위해 전격적으로 이적을 승인했다. 고우석은 구단의 결정에 고마워하면서 LG와 LG 팬들이 있어 미국행을 망설이기도 했다고 털어놨다.
▶ "아직 메이저리거 아니다" 고우석 일문일답
- 샌디에이고는 처음 가봤나. 어떤 느낌이었나.
"샌디에이고는 처음 가봤다. 기대를 많이 하고 갔는데 날씨도 너무 좋고 눈에 보이는 풍경들을 보면서 아름답다고 느꼈다."
- 장인어른(이종범)과 처남(이정후)은 뭐라고 하던가.
"가기 전에 비행기 탈 때 축하한다는 연락을 받았다. 부모님도 기뻐하셨다. 그래서 기분 좋았다."
- 메이저리거가 됐다는 실감이 나나.
"사실 아직 첫 등판을 하지 않아서 메이저리그에 대해 크게 와닿는 점은 없다. 경쟁을 해야하는 위치니까 잘 이겨내서 메이저리그 로스터에 들어간다면 그때 실감이 날 것 같다."
- 서울에서 데뷔전을 치를 수도 있다.
"그런 점이 신기하기도 하다. 하지만 아직 경쟁을 해야하는 위치에 있기 때문에 내가 메이저리거라고 말하기에는 성급한 면이 있다. 몸 잘 만들어서 서울에서 첫 경기 할 수 있도록 하겠다."
- 메이저리거에 대한 꿈이 예전부터 있었나.
"머릿속으로 어릴 때부터 꿈꿨던 장면은 있지만 아직 메이저리거라고 생각하고 있지 않아서, 메이저리거라고 할 수 있을 만큼 능력을 보여드려야 그때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 LG에서 포스팅을 허락한 덕분이기도 한데.
"그래서 시원섭섭한 느낌도 들었다. 친정 팀이라는 존재가 있어서 그랬던 것 같다. 너무 감사하다. 지금은 모든 것들이 다 감사하다."
- 김하성과 같은 팀에서 뛰게 됐다.
"정후 통해 먼저 연락처를 받아서 연락드렸다. 축하한다고 해주셨다. 외국에서 야구를 하는데 같은 리그에서 뛰었던, 대표팀에서 만났던 선배가 있어서 마음이 안정이 된다."
- FA가 아닌 포스팅으로 메이저리그에 도전한 이유.
"사실 포스팅을 준비한 시간이, 작년 시즌 전부터였다. 그런데 성적이 좋지 않았다. 팀이 우승하지 못했다면 신청을 할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아닐 거로 생각했다. 팀이 모두 잘해서 우승했고 나는 발만 담궜다. 그런 기쁜 순간 뒤에 포스팅을 신청해야 하는 상황이 왔다. 내가 어떤 평가를 받는지 궁금해서 신청한 것이 가장 컸다. 마지막까지 기다렸는데 별다른 소식이 없어서, 언론에서는 얘기가 나왔지만 적극적인 오퍼가 있지는 않아서 기대하지 않았다. 막판에 오퍼가 오면서 고민을 했다. 사실 FA를 1년 앞두고 포스팅으로 메이저리그에 진출하는 것에 대해 왜 그렇게 했는지 묻는 분들이 많았다. LG를 떠나기는 하지만 LG로 돌아올 수 있다는 것 때문에 포스팅을 신청하게 됐다."
"LG라는 구단, 그룹에 내가 남긴 것들은 굉장히 작다. 나 개인의 꿈인데도 믿어주고 지지해주셔서 감사하다."
- 기다리는 동안 어떤 마음이었나.
"나보다 에이전시에서 마음고생을 했다. 나는 선수니까 실패했을 때도 준비했다. LG에서 야구하면 되는 거였는데, 에이전시는 계속 좋은 계약을 위해 노력해주셨다. 감사하다."
- 스스로 인정할 메이저리거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2월 중순쯤 첫 경기에 들어가거나 할 것 같다. 그때까지 몸을 잘 만드는 것이 첫 번째 같다. 연습경기 하고 타자와 승부하면서 이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야 한다. 로스터에 들어가야 메이저리거라고 말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 앞으로의 일정은 어떻게 되나.
"일단 집에서 좀 쉬고, 다음 주부터는 하던대로 운동하면서 일정을 조율해야 할 것 같다."
- 이니셜 WS Go를 월드시리즈 진출로 해석해 반기는 팬들이 있더라.
"내가 본 건 이름이 좀…그런 것만 봐서. 기분이 나쁘기보다 일단 이름을 제대로 알렸구나 하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그래서 다행이다. 좋은 쪽으로 해석할 수도 있고 유쾌하게 넘어갈 수도 있어서 이름 지어주신 부모님께 감사하다."
- LG 팬들에게.
"어떻게 보면 미국에 가야겠다고 결정하기 어려웠던 이유는 LG라는 구단과 팬들의 뜨거운 열정이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나에게 주신 사랑과 응원에 감사하다. 영원히 떠나는 것은 아니다. 더 발전해서 돌아와야 한다고 생각한다. 솔직히 못 하면 짧게 있다가 돌아올 수도 있다. 그 짧은 시간 안에서라도 발전하고 싶다. 나 개인의 꿈인데도 응원해주셔서 정말 감사하다."
- LG 선수들에게 연락도 많이 받았나.
"비행기 타는 날까지도 잠실에서 운동을 했다. 짐작을 했는지 알고 그랬는지 연락을 많이 받았다. 돌아가서 잠실에서 인사드리겠다고 했다."
- LG 구단과 나눈 대화가 있나.
"계약 직후에 연락드려서 감사하다고 했다. 축하한다고 해주셨고, 허락해주셔서 감사하고 덕분에 좋은 계약 할 수 있었다고 말씀드렸다."
- 팀에서는 유영찬을 후임 마무리로 꼽던데.
"잘하지 않을까. 의심하지 않고 잘할 거로 생각한다."
- 메이저리그에서 이루고 싶은 목표가 있다면.
"진짜 메이저리거가 된다면 제대로 한 번 해보겠다"
▶2일 합의→3일 승낙→4일 계약, 긴박했던 2박3일
고우석은 지난 4일 샌디에이고와 2+1년 계약을 맺고 메이저리그 도전을 공식화했다. 보장된 계약기간 2년 동안 연봉 400만 달러를 받는다. 올해 연봉은 175만 달러, 내년 연봉은 225만 달러다. 3년차는 상호 동의에 따른 옵션(무추얼 옵션)이 걸렸다. 양 측 합의로 옵션이 발동되면 연봉이 300만 달러로 오른다. 3년치 연봉과 출전 경기 수 등에 걸린 수당을 더하면 최대 940만 달러까지 받을 수 있다.
친정 팀 LG는 고우석의 포스팅을 허락하면서 계약 내용이 일정 규모를 넘어야 한다는 조건을 달았다. 사실 샌디에이고와 계약 내용은 그 조건에 못 미치는 수준이었지만 LG는 29년 만의 우승과 고우석의 꿈을 명분으로 포스팅을 수락했다. 샌디에이고의 제안이 포스팅 마감(한국시간 4일 오전 7시)을 이틀 앞두고 오면서, LG의 허락과 메디컬 테스트에 이어 샌디에이고 계약까지 모든 과정이 단 사흘 만에 이뤄졌다. 그만큼 긴박한 시간이었다.
3일 출국부터 6일 입국까지 나흘은 '1박 4일' 강행군이었다. 고우석은 국내 에이전시인 리코스포츠 이예랑 대표는와 인천-도쿄-샌디에이고(출국), 샌디에이고-로스앤젤레스-인천(귀국)순서로 이동하는 1박 4일 일정을 보냈다.
고우석은 2일 오후 샌디에이고의 제안을 확인했다. 먼저 LG에 이를 전달했고, 3일 오후 고우석이 메디컬테스트를 위해 미국으로 출국했다. 그사이 LG는 구단 고위층에 이 사실을 보고한 뒤 이적을 허락한다는 결론을 받았다. 샌디에이고는 4일 오전 고우석과 계약을 공식적으로 발표했다. 고우석과 2년 계약을 발표하는 보도자료에 KBO리그와 국제대회 커리어를 소개하면서 "kt 위즈와 한국시리즈 5차전 마지막을 책임진 투수"라고 썼다.
LG 차명석 단장은 "축하한다. 고우석 선수는 KBO리그 최고 마무리 투수 중 한 명이다. 메이저리그에서도 충분히 경쟁력을 가지고 있고, 잘 적응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좋은 성적으로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메이저리그 선수로 활약하길 기대한다. 고우석 선수의 새로운 도전을 응원한다"고 격려 메시지를 전했다.
▶'가성비' 필승조 후보, "샌디에이고 필승 3총사" 예상
연평균 200만 달러로 '대박'이라고 보기는 어려운 계약이지만 샌디에이고는 고우석에게 중요한 임무를 맡길 것으로 보인다. 로버트 수아레스, 마쓰이 유키와 함께 8, 9회를 막는 투수가 될 거라는 전망이 나왔다.
MLB네트워크 존 모로시 기자는 고우석이 샌디에이고와 합의를 마쳤다고 보도하면서 "고우석은 이정후와 처남 매제 관계다. 바람의 손자와 가족 관계라는 얘기다. 샌디에이고는 고우석을 수아레스, 마쓰이와 함께 필승조 삼총사로 생각하고 있다. 매치업에 따라 세 선수가 모두 마지막을 책임지는 투수가 될 수 있다"며 "고우석은 불펜 경험이 풍부하다. KBO리그라는 높은 수준의 리그에서 경험을 쌓았다. 샌디에이고 불펜의 핵심 멤버이자 부임 후 첫 시즌을 맞이하는 마이크 실트 감독의 필승조가 될 수 있다"고 예상했다.
통계사이트 팬그래프닷컴은 고우석의 커리어와 나이를 바탕으로 뽑은 올 시즌 예상 성적을 공개했다. 고우석이 62경기에 등판해 62이닝을 투구하면서 3승 3패 11홀드 3세이브, 평균자책점 3.83을 기록한다는 추정치가 나왔다. 탈삼진은 72개로 9이닝당 탈삼진 10.4개, 9이닝당 볼넷 예상치는 4.16개다. 특급 불펜의 수치는 아닐지 몰라도 꾸준히 기회를 받을 만한 성적은 된다고 볼 수 있다.
지난해 샌디에이고 불펜에서 60경기 이상 등판한 선수는 조시 헤이더(61경기)와 루이스 가르시아(61경기) 2명이었다. 닉 마르티네스가 선발 9경기를 포함해 63경기 등판했다. 이외에 톰 코스그로브가 54경기, 스티븐 윌슨이 52경기에 나왔다. 60경기에 등판한다면 고우석도 이들만큼 샌디에이고 불펜에서 믿을 수 있는 선수로 평가받았다는 뜻이 된다.
▶LG는 포스트 고우석 준비…염경엽 감독의 선택은
LG는 이미 다음 마무리 준비에 들어갔다. 지난해 1군에 데뷔해 67경기에서 6승 3패 12홀드 1세이브 평균자책점 3.44를 기록한 신예 유영찬이 고우석의 뒤를 잇는다. 유영찬은 지난 시즌을 앞두고 LG 염경엽 감독의 눈에 들어 1군에서 시즌을 시작했다. 추격조에서 경험을 쌓은 뒤 필승조로 떠올랐고, 고우석이 2022 항저우 아시안게임 출전으로 자리를 비운 9월에는 데뷔 첫 세이브도 올렸다. 염경엽 감독은 유영찬이 본격적으로 필승조를 맡기 전부터 "성장하면 국가대표급 셋업맨이 될 수 있다"며 강한 신뢰를 보여왔다.
이제 '공식발표'까지 나왔다. 염경엽 감독은 5일 LG 트윈스 구단 신년회를 마친 뒤 "유영찬은 파워피처에 가까운 구속을 가졌다. 구속은 1~2㎞ 정도 더 올라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작년에 포크볼의 완성도가 올라왔고, 이번 캠프를 통해 포크볼과 슬라이더를 더 잘 던지게 된다면 충분히 30세이브를 올릴 수 있다고 봤다"고 말했다.
또 "마무리 투수에게 필요한 멘탈에서도 좋은 점수를 얻었다. 가장 중요한 무대 한국시리즈에서 큰 경험을 했다는 점도 근거가 됐다. 한국시리즈 세이브는 없었지만 올 시즌 마무리를 맡길 만한 투수라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그렇다고 급조한 대안은 결코 아니다. 염경엽 감독은 고우석의 메이저리그 포스팅이 시작된 뒤부터 마무리 대안을 구상하기 시작했고, 연말 인터뷰에서 이미 유영찬을 다음 마무리로 생각한다는 뜻을 밝혔다. 단 이때는 염경엽 감독의 마음 속에 고우석이 LG에 잔류한다는 기대가 남아있었다. 그러나 짧은 기간 동안 고우석 측과 샌디에이고의 협상이 급물살을 탔다. 그러면서 유영찬에게 기회의 문이 열렸다.
유영찬은 "마무리를 맡겨주신다는 기사를 먼저 봤다. 좋은 기회가 와서 설렜다"면서 "내가 마무리를 할 거라는 생각은 한 번도 안했다"고 말했다. 지난해처럼 찾아온 기회를 놓치지 않고 잘 살리겠다며 "팀이 조금이라도 더 이길 수 있는 방향으로, 팀에 힘이 많이 되는 투수가 됐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형들도 그렇고 주변에서 '마무리, 마무리' 해주시기는 하는데 내가 아직 자리를 잡은 것도 아니고 그저 기회가 왔을 뿐이다. 최선을 다하려고 생각하고 있다"고 겸손하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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