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는 시간을 세고, 시간은 인류문명을 세웠다…1초를 향한 5200년 여정 [Books]
채드 오젤 지음, 김동규 옮김, 21세기북스 펴냄
왜 하필 라파엘로는 ‘티마이오스’를 집어 넣었을까. 여러 해석이 가능하겠지만 우주론을 다룬 ‘티마이오스’엔 시간의 정의가 등장한다. 플라톤은 시간을 “영원히 움직이는 이미지”로 판단했다. 자연의 관점에서 시간은 이미지의 연속이다. 그게 우주다. 그런데, 인류가 수천 년간 우주의 운행에 반기를 들었던 최초의 기계가 있으니, 바로 ‘시계’다. 시계는 연속적으로 구획된 흐름을 갈라쳐 인위를 부여한다.
인간이 역사상 가장 관심을 가졌던 단 하나의 활동, 즉 ‘시간의 측정’을 실증한 책 ‘1초의 탄생’이 출간됐다. 한 치의 오차를 불허하려는 인류의 치열함을 추적한 책이다. 신년 벽두에 출간된 ‘1초의 탄생’은 우리에게 주어진 ‘1초’의 의미를 되새기도록 이끈다.
아일랜드의 한 오랜 무덤가에서 이야기는 출발한다. 기원전 3200년경 건설된 통로형 무덤인 아일랜드의 ‘뉴그레인지 석실’은 이집트 피라미드보다 역사가 깊었다. 그러나 석실 입구에 설치된 작은 창의 용도는 풀리지 않았다. 고고학자 마이클 오켈리는 뉴그레인지 석실을 오래 연구했는데, 묘지는 비밀을 쉽게 내주지 않았다. 1969년 12월 21일 동이 트던 그 시간까지는.
오켈리가 묘실에 들어갔던 그날은 해가 가장 낮게 깔린 동지였다. 오전 8시 58분, 창을 통해 태양 직사광선이 석실에 쏟아졌다. 빛줄기는 17cm까지 넓어지더니 9시 15분 사라졌다. 딱 ‘17분’. 이건 뭘 의미하는가. 자연광은 동지 아닌 다른 날엔 전혀 관측되지 않았다. 오켈리는 무릎을 쳤다. ‘뉴그레인지 석실의 창은 1년 중 단 하루만 측정 가능한 시계다.’
하지만 몸무게 100kg도 안 되는 인간이 ‘고작 1년’을 계산하려 돌덩이를 머리에 이고 다닐 순 없는 노릇. 물시계, 모래시계, 천문시계를 거쳐 중세에 이르러 탑시계까지 개발됐지만 마찬가지였다.
금속 스프링을 감아 에너지를 저장하는 구동장치가 개발되면서 휴대용 시계 개발은 급물살을 탔다. 하지만 금속 스프링을 감아 에너지를 저장했다가 천천히 방출하는 이 방식은 태엽이 풀릴수록 시간이 느려지는 한계를 가졌다. 시계로선 부적합했다. 그때, 원뿔 모양의 부품이 개발된다. 원뿔 부품에 감긴 체인이 구동축을 밀고, 스프링이 풀릴 때 점점 감소하는 힘(태엽이 풀릴수록 시간이 느려지는 한계)을 보상해주는 원리였다. 16세기 프랑스의 한 국왕은 ‘자루에 시계가 달린’ 단검을 샀다고 기록돼 있다.
그렇다 해도 시계는 엄청나게 비싼 사치품이었다. 또 제아무리 최신기술을 집약했다 해도 ‘하루 8만6400번’을 ‘똑딱’해야 하는 정밀성은 떨어졌다.
스위스의 쥐라란 지역은 정밀성의 한계를 극단까지 몰고간 시계 실험실이었다. 부품을 제작하고 조립하고 테스트하고 조정하는 시계 제작 과정에 인력 150명이 투입됐다. 그러나 스위스의 시계 혁신에 또 한번 바람을 불어넣은 건 미국 시계회사 ‘월섬’이었다.
망자의 돌무덤을 시계로 썼던 고대 이후 5200년이 지난 지금, 인류 기술은 어디까지 왔을까. 세슘 원자시계의 전자기파는 ‘91억9263만1770분의 1초’까지 측정한다. 이게 뭔 말인가 하면, 인간이 ‘약 92억분의 1초’를 셀 줄 안다는 얘기다. 1962년 인류는 ‘1초’를 이렇게 정의했다. ‘세슘-133 원자의 에너지 바닥 상태의 두 초미세 준위에서 방출되는 전자기파의 진동하는 주기의 91억9263만1770배에 해당하는 시간’. 이게 국제표준시 ‘1초’다.
손목에 시계를 찬 인구는 줄어들고, 투박한 바늘 시계 대신 스마트워치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아무리 시계가 바뀌어도 시간을 측정하려 했던 인류의 집요함은 미완성이다. 2024년엔 손목에 시계 하나를 차보자. 시계 속 은밀히 들리는 ‘1초의 똑딱임’이 꿈을 이뤄줄 주문(呪文)일지도 모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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