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농구도 공부도 잘하는 엄친아’ 이정현의 모든 것
[점프볼=최창환 기자] 이정현(24, 187cm)은 토끼띠 스타들을 대표해 2023년 1월호 표지를 장식한 바 있다. 데뷔 3년 차인 2023-2024시즌 역시 폭풍 성장기를 이어가며 MVP 후보로 떠오르고 있는 만큼, 2024년 1월호 표지도 이정현을 위한 자리였다. 2000년 1월 창간 이래 2년 연속 점프볼 1월호 단독 표지를 장식한 최초의 스타다. 1년 사이 유니폼은 바뀌었지만, 농구를 대하는 그의 자세는 변함이 없었다. A to Z 콘셉트로 성장 과정을 들어보니, 그는 뽀시래기 시절부터 농구에 진심이었다.
※ 본 기사는 농구전문매거진 점프볼 1월호에 게재됐으며, 인터뷰는 지난해 12월 18일 진행됐음을 알립니다.
ASIAN GAMES 생애 처음으로 아시안게임 대표팀에 선발됐습니다. 기대가 컸던 만큼 결과에 대한 아쉬움도 컸을 것 같아요.
나라를 대표해 큰 무대에서 경쟁할 수 있는 기회를 받는다는 것 자체가 영광스러운 일이잖아요. 선발됐을 땐 너무 기분 좋았죠. 대회가 끝난 후 기분은 말로 어떻게 표현할 수 없을 것 같아요. 결과가 참…. 아쉬움이 많이 남았죠. 마음도 불편했고요. 개인적으로는 대표팀에서 기회를 많이 못 잡았어요. 조금이나마 뛸 때도 좋은 모습을 못 보여준 것 같고요. 소속팀과 대표팀에서의 역할이 달랐고, U대표팀 일정을 마친 후 합류해 대표팀 선수들과 호흡을 많이 맞춰보지도 못했죠. 아시안게임 끝난 직후 바로 KBL컵이 열렸어요. 감독님이 뛸 수 있겠냐고 물어보셔서 많이 뛰고 싶다고 말씀드렸죠. 감독님도 “많이 뛰고 싶었지?”라고 하시더라고요. 삼성과의 첫 경기가 연장전까지 가서 원 없이 뛰었죠. 감독님이 체력 바닥난 게 보여서 교체해주겠다고 하셨는데 제가 끝까지 뛰겠다고 해서 계속 뛰었던 거예요. 그렇게 해서라도 시즌에 대비해 컨디션을 끌어올리고 싶었는데 그 과정에서 작은 부상이 있었어요. 그러다 보니 시즌 초반에는 컨디션을 찾는 데에 어려움을 겪었죠.
BACK NUMBER 연세대 시절 백넘버는 1번이었습니다. 프로 데뷔 후에는 줄곧 6번인데 어떤 의미가 있나요?
제가 좋아하는 숫자가 6번, 11번이었어요. 그래서 고등학교 시절에는 항상 11번이었는데 대학에 입학해보니 선배(양재혁)가 쓰고 있어서 1번을 달았죠. 오리온 입단했을 때는 1번(김세창), 11번(조한진) 다 선배가 쓰는 번호였는데 6번은 비어있었어요. 왠지 모르게 끌리는 숫자여서 청소년대표팀에서는 항상 6번을 썼거든요. 그래서 프로에 온 이후에는 6번을 계속 사용 중이에요. 큰 부상도 없었고, 좋은 퍼포먼스도 보여주고 있는 것 같아서 아직까진 등번호를 바꿀 생각이 없어요.
괜찮아요(웃음). 지난 시즌을 맞이할 땐 정말 설렜어요. 감독님이 새로 오셨고 선수 구성에도 변화가 있었죠. 감독님이 이제 포인트가드를 맡아야 한다고 하셨고, 많은 역할과 많은 출전시간을 줄 거란 말씀도 하셔서 너무 기대됐어요. 막상 훈련이 시작되고 보니 고쳐야 할 게 한두 가지가 아니었지만, 그래도 힘든 상황을 함께 극복하며 동료들 사이에서 끈끈함이 생겼죠. 다 같이 이겨내서 4강까지 갔는데 뿔뿔이 흩어질 수도 있다는 게 너무 마음에 걸리더라고요. 계속 한 팀에서 같이 농구를 하고 싶었는데 소노에서 농구단을 창단한다고 해서 감사한 마음뿐이었죠. (남아 있는 주황색 옷이 있나요?) 저는 원래 튀는 색깔을 안 좋아해서 없었어요. 유니폼을 비롯해 캐롯과 관련된 흔적은 다 지웠습니다(웃음).
DISLIKE 가장 싫어하는 게 있다면?
벌레를 굉장히 싫어해요. 혼자 살고 있는데 집에 벌레 나오면 바로 부모님께 전화해서 나 어떻게 하냐고 할 정도예요. 얼마 전 방에서 핸드폰 보고 있는데 벌레가 기어 나오더라고요. 너무 무서워서 밖으로 나왔어요. 1시간 고민하다 결국 잡긴 잡았는데 ‘이 방 안 쓰고 거실에서 잘까?’ 심각하게 고민하기도 했죠. 그나마 모기는 잡을 수 있는데 기어 다니는 벌레는 못 잡아요. 바퀴벌레 같은 건 상상도 하기 싫어요.
ENERGY 지칠 때 힘이 되는 존재는?
아무래도 팬들에게서 큰 힘을 얻죠. 경기장 들어가면 제 유니폼이나 플래카드 들고 있는 분들이 다 눈에 들어오거든요. 눈 마주치면 민망할 수 있으니 슥 보고 지나가며 혼자 기분 좋아하는 스타일이에요. 또 다른 존재는 집이요. 집은 그 자체만으로도 힘이 돼요. 제가 원래 혼자 있는 걸 좋아하는 편이고, 쉬는 날이라고 특별히 나가서 뭘 하려고 하지도 않거든요. ‘구해줘 홈즈’ 나갔을 때 선택했던 집은 아니에요. 그 집이 마음에 들었지만, 체육관에서 거리가 있는 편이었거든요. ‘구해줘 홈즈’에서 알게 된 공인중개사를 통해서 다시 알아보고 계약했어요.
FOOD 최애 음식은?
소고기, 돼지고기, 닭고기 등 고기 종류는 다 좋아해요. 점심, 저녁 가리지 않고 다 고기만 먹어도 질린다는 느낌이 안 들어요. 쌈은 안 싸먹고 그냥 소금만 찍어먹는 스타일이에요. 요리는 못해요. 부모님이 반찬 만들어서 보내주시면 데워먹기만 하는 편이죠. 요리에 도전해보고 싶은데 아직까진 자신이 없어요. 치우는 것도 번거롭고 귀찮을 것 같아요.
진짜 어려운 질문인데 일단 2018년 정기전이 제일 먼저 생각나요. 입학 후 처음으로 치른 정기전이었는데 우리가 이전에 고려대와 붙은 2경기 모두 졌거든요. 전력이 고려대에 뒤처진다는 평가도 많았고요. 그런 상태에서 정기전을 치렀는데 계속 역전을 거듭한 끝에 이겼어요. 그렇게 많은 관중들 앞에서 경기를 치른 건 처음이었는데 짜릿하게 이겨서 잊지 못할 추억으로 남아있어요. 그 기분은 연세대, 고려대 재학생들만 느낄 수 있는 거죠. 코로나19 때문에 정기전을 2번 밖에 못 겪어 본 게 너무 아쉬워요. 프로 온 후에는 지난 시즌 안양 KGC(현 정관장)와의 4강 2차전이요. 1차전에서 플레이오프 역대 최다 점수 차(56점)로 패했는데 2차전에서는 그걸 딛고 이겼거든요. 시리즈를 따내진 못했지만, 그 경기는 앞으로 프로선수 생활을 하는 데에 있어 값진 경험으로 남을 것 같아요.
HOBBY 농구 이외의 취미는 무엇인가요?
혼자서 넷플릭스나 유튜브를 봐요. 그거 외에는 특별히 취미라고 할 게 없어요. 제 MBTI가 ISTP거든요. J랑은 성향이 굉장히 멀어요. 제가 봐도 재밌는 인생은 아닌 것 같아요(웃음). 농구할 때 외에는 그냥 잔잔하게 쉬며 소소한 행복을 찾는 편이에요.
INJURY 어깨부상을 당할 때는 어떤 느낌이 들었나요?
팔이 엉켰는데 상대 선수(맥스웰)가 팔을 올리는 순간 ‘뚜둑’하는 소리가 들리더라고요. 순간적으로 항의했는데 항의 끝난 직후부터 어깨가 너무 아팠어요. 처음에는 단순 타박상인 줄 알았어요. 벤치에서 아이싱할 때까지만 해도 잠시 쉰 후 다시 뛸 수 있을 거라 생각했죠. 가스공사와 홈 2연전이었는데 첫 경기에서 져서 다음 경기는 반드시 이겨야 했거든요. 잠깐 쉬는 사이에 보니 통증이 더 심해지고 팔도 안 올라가더라고요. 그래서 그때부터 쭉 쉬고 있어요. 쉬는 동안 우리 팀 경기를 TV로 보다 보니 몸이 반응해요. 제가 어느덧 TV 앞까지 가있더라고요. 뛸 때는 긴장이 안 되는데 중계를 보니 오히려 긴장도 됐고요. 학창 시절에도 종종 부상은 있었지만 다행히 대회 기간과 겹치지 않아서 자리를 비웠던 적은 없었어요. 어깨를 다친 것도 이번이 처음이고요. 또 다치면 안 되잖아요. 조금 시간이 걸리더라도 완전히 회복해서 돌아갈 계획이에요.
JINX 징크스가 있다면?
특별한 징크스는 없어요. 똑같은 패턴대로 훈련하고 경기를 준비해야 하는데 이건 징크스라기보단 루틴인 것 같아요. 경기 잘 풀린 날의 기억을 되살려 웜업, 스트레칭을 똑같이 하려고 하는 편이에요. 그래야 심적으로 안정이 되고 경기에도 더 집중할 수 있더라고요.
저는 어릴 때부터 호랑이 선생님들에게 지도를 받아왔어요. 중고등학교 때는 오세일 선생님, 대학 때는 은희석 감독님과 농구를 했죠. 그래서 혼나거나 질책을 들었을 때 다른 선수들에 비해 크게 위축되진 않는 편이에요. 감독님이 뭐라고 하실 때보단 스스로 플레이가 안 풀린다고 느껴질 때 위축이 돼요. 감독님이 지난 시즌까지만 해도 나쁜 버릇이 많다고 얘기하셨는데 올 시즌은 초반 컨디션 안 좋았을 때를 제외하면 크게 뭐라고 하시는 건 없어요.
LAST DAY 만약 내일이 지구의 마지막 날이라면 무엇을 가장 먼저 할 것 같나요?
제가 만약이라는 생각을 안 하는 편이어서 감이 안 오네요. (한 철학자는 “내일 지구가 멸망하더라도 오늘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라고 했는데?) 지구가 멸망하게 생겼는데 사과나무를 왜 심어요(웃음). 저는 그냥 평소와 다를 바 없이 살다가 마지막 날을 맞이할 것 같아요.
MVP 강력한 국내선수 MVP 후보로 꼽히고 있습니다.
감사할 따름이죠. 그런 평가가 나온 이상 뒷걸음질하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목표 의식은 분명해요. MVP라는 목표를 새기고 매 경기 최선을 다해야죠. 받는 순간까지도, 만약 받는다면 그 이후에도 변함없이 모든 걸 쏟아부으며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어요.
NICKNAME 친구들 사이에서 별명은?
‘작정현’ 외에 별다른 별명은 없어요. 대학 입학 직후 (이)정현(삼성)이 형과 함께 인터뷰를 했는데 그때 ‘큰정현’, ‘작정현’이라는 별명이 생겼어요. 정현이 형을 동경해왔기 때문에 별명도 너무 마음에 들었죠. (외국선수들은 ‘리틀 브론코’라고 부르던데?)지난 시즌에 빈스 형(김정래 통역)이 디드릭 로슨에게 저를 소개할 때 마음대로 ‘리틀 브론코’라고 하더라고요. 이후 외국선수들 사이에서 자연스럽게 불리게 됐어요. (테마곡이어서인지 장내 아나운서는 ‘Hype Boy’라고 부르던데 뉴진스 좋아하시나요?)좋아합니다. 민지랑 하니 좋아해요(웃음). 테마곡은 제가 직접 골랐어요. 노래가 신나기도 하고 제 이미지와 잘 어울리는 것 같았거든요.
강을준 감독님이 트라이아웃 시작하기 전 “우리 팀에 올 확률이 높다”라고 귀띔해주셨어요. 그래서 저도 어느 정도 예상은 하고 있었죠. 그런데도 막상 단상에 오르니까 긴장되더라고요. 지명 소감도 준비했었는데 순간 머리가 하얘졌어요. 그래도 감사 인사는 다 하고 내려왔던 걸로 기억해요.
PROPERTY 갖고 있는 가장 큰 자산은 무엇인가요?
당연히 집이죠. 자가는 아니지만…(웃음). 체육관에서 걸어가도 5~10분이면 도착해서 너무 좋아요. 부모님도 종종 경기 보러 오셨다가 주무시고 가시죠. 지금은 혼자 살고 있지만 동생이 제대를 앞두고 있는데 같이 살 계획이에요. 동생은 평범하게 공부하는 대학생이고요. 운전면허를 대학 입학하기 전에 땄는데 차는 아직 없어요. 운전하고 싶은 마음은 있는데 차는 올 시즌 끝나면 부모님과 상의해본 후 사려고요.
QUESTION 동료에게 평소 궁금했거나 물어보고 싶은 게 있다면?
최근에 충격 받은 게 있어요. 우리 팀 선수들이 출연한 KBL 유튜브 영상을 보는데 덧셈, 곱셈 관련 문제가 나오더라고요. (박)종하가 쓴 답이 너무 충격적이었죠. 진짜 그렇게 알았던 건지, 재미를 위해 그렇게 쓴 건지 궁금해요.
박종하 : 주위에서 재밌었는데 진짜냐고 연락이 많이 오더라고요. 촬영 당시 분위기가 너무 칙칙하고 진지했는데 저의 그 답을 기점으로 재밌어졌죠. ‘유튜브 분량 뽑았다’라는 느낌도 들더라고요. 진짜인지, 재미였는지에 대한 답은 시청자들의 판단에 맡기겠습니다.
당연히 정현이 형이었죠. 같은 포지션이었기 때문에 플레이 스타일을 닮고 싶었어요. 대학 3학년 때부터는 (이)대성이 형이었고요. 대성이 형이 갖고 있는 에너지레벨, 농구에 임하는 자세가 인상적이더라고요. 마침 신인 때 대성이 형과 함께 뛸 수 있었고, 원정 가면 룸메이트였어요. 맛있는 거 많이 사주시면서 챙겨주셨죠. 지난 시즌부터는 포인트가드 역할을 맡게 돼 본받아야 할 포인트가드들을 찾아보게 되더라고요. 지금은 (김)선형이 형, 양동근 코치님을 닮기 위해 노력하고 있어요.
SING 자신의 노래 실력에 점수를 매긴다면?
-100점 줄게요. 최악이에요. 최악. 노래 부르는 걸 안 좋아해요. 노래를 못하기도 하고, 부르면 목 상태도 안 좋아지더라고요. 발라드 듣는 것만 좋아해요. (오리온 시절 구단 유튜브 영상을 보니 한호빈 선수가 노래를 정말 잘하던데?) 그때 저도 같이 불렀어요. 기억 못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기억하지 말아주세요(웃음).
TIME MACHINE 타임머신이 있다면 언제로 돌아가고 싶나요?
대학 1학년 시절이요. 지금 돌아봐도 너무 즐거운 기억만 남아있는 시기거든요. 친구들도 많이 사귀었고, 강의라는 것도 처음 들어보고, 강의 끝나면 맛집도 많이 다녔어요. 대학리그나 정기전을 처음 경험해본 나이이기도 했고요. 이제는 다 하고 싶어도 못 하잖아요.
UNLESS 만약 농구를 하지 않았다면?
평범하게 공부하는 학생이었을 것 같아요. 저는 처음 장래희망을 적을 때부터 꿈이 농구선수였어요. 한 번도 꿈이 변한 적이 없어요. 초등학교에서 농구교실을 통해 처음 농구를 접했고, 이후 KCC 유소년클럽에서 2년 정도 배웠죠. 이게 계기가 돼 서해초로 전학가면서 본격적으로 엘리트농구를 하며 꿈을 이뤘어요. 농구하길 정말 잘했다고 생각해요. 사실 농구 외에 다른 걸 하고 있는 제 모습은 상상하기 힘들어요.
몇 점이라고 꼬집어 말하긴 어렵지만, 그래도 좋은 점수를 받을 수 있을 것 같아요. 갑작스럽게 부상을 당해 쉬고 있는 것만 빼면 개인적으로는 시즌을 너무 잘 치르고 있다고 생각해요. 물론 개인기록은 좋지만 팀이 더 많이 이기지 못한 건 아쉬운 부분이죠. 저나 팀이나 점점 성장하면서 더 잘하는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 거예요.
WORRY 최근 제일 큰 고민이나 걱정은 무엇인가요?
저는 천하태평해서 걱정을 크게 하지 않는 편이에요. 부상을 당한 후 ‘복귀했는데 원래 기량을 못 보여주면 어떡하지?’란 생각을 잠시 했는데 그렇게 오래가진 않더라고요. 그건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이잖아요. 농구든 일상생활이든 일이 생기면 ‘알아서 되겠지’라며 받아들여요.
X-FILE 아무에게도 말 안 했던 비밀 중 공개할 수 있는 비밀이 있다면?
여기서 말하면 비밀이 아닌 거잖아요(웃음). 아, 이건 진짜 어렵네요. 패스입니다~!
YOUTH 어릴 땐 어떤 어린이였나요?
아무도 안 믿겠지만 모범생이었어요. 부모님, 선생님 말씀 잘 듣고 공부 열심히 했죠. 운동 좋아하는 엄친아 스타일이었어요(웃음). 성적도 좋았고요. 중학교 진학 후 합숙생활을 하다 보니 수업을 못 들어가게 됐죠. 그러다 친구들과의 격차가 벌어지고, 전지훈련에 대회 출전까지 겹치다 보니 공부를 멀리하게 되더라고요. 학점을 채워야 했기 때문에 대학 진학 후에는 다시 공부를 했어요. 친구들 도움도 받아가며 좋은 성적으로 졸업했죠.
ZZZ 잠버릇은?
엄청 뒤척거리다 잠드는 편이에요. 좌로 굴렀다 우로 굴렀다 하면서 잠들기 직전까지 최상의 자세를 찾아요. 그러다 보니 잠들 때까지 시간이 좀 걸리죠. 어깨 다친 이후에는 오른쪽으로 눕지 말라고 해서 왼쪽으로만 누워있는데 불편해요. 그래서 요새 잠을 많이 못 자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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