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게손사태 대해부] 손가락 논란 올라탄 정치인들 속내는…사회 지도층의 ‘말말말’

정지혜 2024. 1. 6. 0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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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게손 사태’ 두둔·방관… ‘의혹’ 부채질
진실 확인 뒤에도 발언 사과·정정 없어

게임업계에서 최근 번진 ‘집게손가락 사태’는 사회 지도층의 말 한마디가 얼마나 큰 영향력을 갖는지 다시금 보여줬다. 특히 사회적 파장이 큰 정치인들의 발언을 두고 비판이 쏟아졌다. 구성원 간 갈등을 봉합하기는커녕 오히려 더 크고 거센 불길이 타오르도록 조장했다는 점에서다. 사실 관계 확인이 미흡한 채 성급하게 내뱉은 이들의 발언은 무고한 노동자를 ‘사상검증’ 하는데 가세하면서 우리가 치러야 할 사회적 비용을 키웠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갈등 증폭·침묵파’만 남은 현실…이슈 올라타기 바빠

4일 세계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이번 사태를 대하는 정치인들의 입장은 둘로 나뉜다. 갈등을 증폭하거나 아예 입에 올리지 않기를 택하는 다수파와 이들을 비판하는 소수의 소신발언파다. 전자가 대다수인 현실은 사태의 진실을 덮고 갈등의 불씨를 방치함으로써 ‘논란이 된 집게손 장면을 그린 적도 없는 여성 노동자가 과도한 온라인 괴롭힘에 희생되는’ 결과에 일조했다.

사태 초기에 나온 이들의 발언을 보면 “볼 것도 없이 (남성혐오를 상징하는) 메갈(리아) 손가락. 의도된 바가 있다고 본다“(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 “이 문제의 악질적인 점은 실수가 아니라 의도적이라는 데 있다“(이상헌 더불어민주당 의원, 노무현재단 황희두 이사) 등이 있다. 이들이 검증 없이 힘을 실어준 주장은 일부 커뮤니티에서 ‘게임 홍보 영상에 페미니스트 여성 직원이 그린 남성혐오 손가락이 들어갔다’고 한 내용이다. 애당초 해당 직원이 문제의 장면 제작에 참여했는지, 그 손가락이 특정 의도 하에 삽입되었는지 확인하는 물증 없이 제기된 ‘의혹’ 수준이었지만 이는 유명인 입을 확성기 삼아 공신력을 얻으면서 대중의 분노를 빠르게 자극했다.

심지어 영상 제작 업체를 통해 ‘여성 노동자가 의도적으로 집어넣은 혐오 표식은 없었다’는 사실 관계가 드러난 뒤에도 이들의 발언은 정정되지 않았다. 인터넷 특성상 이런 저런 의혹 제기 자체는 언제든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이를 제대로 따져보는 노력 없이 ‘아니면 말고’ 식으로 당장의 주목을 받는 데 이슈를 활용하기 바쁜 정치인의 태도는 사회적 영향력에 대한 무책임한 자세라는 비판을 피하기 힘들다.

정치인들의 이런 행태에 대해 일각에선 ‘문제의 옳고 그름보다 정치공학적 이득을 앞세우는 태도’라고 분석한다. 총선이 다가오는 시점에 이런 경향은 더욱 강화된다는 해석이다. 

윤김지영 창원대 교수(철학과)는 “음지에서 돌던 특정 커뮤니티 세계관 이야기가 총선 후보가 될 정도의 사람에 의해 공적 영역에 올라감으로써 현실성과 실질성이 부여되고, 그 말이 맞다는 잘못된 신호를 준다는 점에서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선거공학적으로 볼 때도 “이런 논란에 이름을 올리고 자신을 가시화하는 것이 특정 표심 얻기에 적합하다는 판단에 따라 전략적 행보를 하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표를 얻겠다면서 일부의 극단적 목소리를 과잉 대표하는 것에 대해서는 “자신을 각인시키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과제이기 때문”이기도 하고 “현재 사회는 성평등 같은 상식을 이야기할 때 오히려 더 많은 힐난을 받고 타깃이 되다 보니 그에 대한 부담감을 갖는 것”이라고 윤김 교수는 봤다. 이는 ”페미니즘을 말하는 이를 지지하며 표를 줄 사람이 가시화되지 않아 확인할 경로가 마땅치 않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대응 매뉴얼‘ 없이 반복되는 문제…“페미니즘 언급 피하는 사회의 한계”

문제는 이런 일이 대책 없이 되풀이되며 ‘억지 문제제기’ 등의 행동을 강화한다는 점이다. 전문가들은 페미니즘 관련해 제대로 된 사회적 합의도 대응 체계도 없는 현실을 지적한다. 그러니 즉각적이고 집단적인 소비자 항의가 들어왔을 때 내용을 충분히 검토할 시간, 전문가 조언을 토대로 사실 관계를 따져보는 등의 매뉴얼 없이 일단 엎드리고 보는 상황만 반복된다는 것이다.

장혜영 정의당 의원실과 한국여성민우회 등의 주최로 지난 8일 열린 국회 긴급 토론회(온라인 집게손가락 억지 논란, 더 이상 용납할 수 없다)에서 이민주 페미니스트연구웹진 ‘포워드’(Fwd) 연구자는 “‘메갈 색출’이 경제적 이익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것 이상으로 ‘경제적 이익 때문에 이 사회 정의를 위한 정치 행동이나 누군가의 기본권을 침해할 수 없고 이는 결코 용납될 수 없다’는 사회적 합의를 만들어가야 한다”고 촉구했다.

기존 질서에 비판적인 입장에 대한 우리 사회의 거부감이 이 같은 합의와 대응책 마련에 소극적인 분위기를 만들었다는 관측도 있다. 윤김 교수는 “페미니즘은 전통적 가족의 가치 등을 한꺼번에 너무 빨리 뒤집어 엎어버림으로써 기존 사회의 병폐 비판 및 제도적 변화를 요청한 가장 눈에 띄는 사회적 소수자 운동 중 하나였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기존 가치를 붕괴함으로써 사회의 혼란과 불안을 야기한 원인자로 페미니즘이 지목됨에 따라 대응 매뉴얼 역시 생기기 힘들어졌다”고 덧붙였다.

논란에 편승해 세력을 키우려는 정치인들에 대한 자성의 목소리도 나온다. 장혜영 의원은 “어디서나 쉽게 찾아볼 수 있는 모양에 과도한 의미를 부여해 그걸 빌미로 다른 시민의 인권과 노동권을 침해하도록 내버려두는 국가는 민주주의 국가라 할 수 없다”며 “이런 논란을 조장하거나 침묵함으로써 자신의 정치적 동력을 잃지 않으려는 정치인은 민주주의 국가의 정치 지도자가 될 자격이 없다”고 강조했다. 박지현 더불어민주당 전 비상대책위원장도 “시민을 지켜야 하는 정치인이 합리적인 근거 없이 특정 커뮤니티에서 누군가를 괴롭히던 문화를 받아서 키우고, 공적 발언권을 이용해 온라인 괴롭힘에 가담하며 자신의 입지를 굳혔다”고 비판했다.

오랜 시간 한국 사회의 안티 페미니즘, 남성성 연구를 해 온 사회학자 최태섭 작가는 이번과 같은 논란을 정치 이슈화하는 정치인들이 “갈등을 풀어나가는 방식이 아니라, 자기에게 이득이 되는 방식으로 왜곡하거나 이용하며 갈등을 심화시켜왔다”고 지적했다. ‘양질의 소통’을 늘리고 어떻게 대화의 장을 만들지 고민해야 할 책임있는 이들의 노력이 잘 보이지 않는다는 비판이다. 최 작가는 “결국 정치가 어떤 의지를 갖는지가 중요하다”며 “극단적인 의견만 보고 서로 비난할 게 아니라 서로 접점을 늘리고 신뢰를 쌓을 대화가 많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지혜·박유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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