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도착 환영하지만, 르완다로 보내겠습니다"... 난민 정책 새 표준 되나
①유럽서 '망명의 외주화' 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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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알아야 할, 알아두면 도움이 될, 알수록 재미있는 유럽의 이야기를 신은별 유럽 특파원이 한 달에 한 편씩 연재합니다.
"정부가 불법 이민자를 제3국으로 보내 망명 심사를 받도록 한다면, 당신은 찬성하겠습니까?"
지난달 20일(현지시간) 독일 베를린에서 만난 독일인 제니퍼(29)에게 물었더니 간단한 답이 돌아왔다. "가능하다면요." '여러 이유로 고국에서 살기 어렵다고 판단해 목숨을 걸고 입국한 이들'이라는 전제를 달아도 대답은 변하지 않았다. 그는 '난민 혐오'와 거리가 멀다고 했다. 밀려드는 난민을 감당할 수 없다면 현실적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유럽연합(EU) 외부 국경을 관리하는 기관 프론텍스에 따르면, 지난해 1~11월 역내로 유입된 불법 이민자는 약 35만 명이다.
유럽 국가들이 이른바 '망명의 외주화' 정책을 앞다퉈 추진하는 건 난민 수용에 대한 대중의 부담·거부감을 인지하고 있어서다. 망명 신청자를 제3국에서 심사받게 하고 체류시키는 이 제도가 난민 정책의 새로운 표준으로 자리 잡는 것일까. 한국일보는 이민 관련 기구들과의 인터뷰를 토대로 유럽 각국이 추진하는 정책의 구체적 내용을 들여다보고 바람직한 해법을 고민해봤다. 유엔 산하 유엔난민기구(UNHCR), 덴마크 비영리단체 덴마크난민위원회(DRC), 미국·벨기에 기반 비영리단체 이민정책연구소(MPI), 이탈리아 기반 이민정책센터(MPC) 등 4곳의 관계자가 인터뷰에 참여했다.
영국-르완다, 이탈리아-알바니아 '계약'... 톡톡한 '대가'도?
망명의 외주화를 위해 가장 발 빠르게 움직인 국가는 영국과 이탈리아다. 두 나라는 자국이 쫓아낸 불법 이민자를 받아 망명 심사를 대리할 파트너를 일찌감치 확보했다. 영국의 상대국은 6,500㎞ 떨어진 르완다, 이탈리아의 상대국은 80㎞ 떨어진 알바니아다. 영국은 영불해협을, 이탈리아는 지중해를 각각 끼고 있어 소형 보트를 타고 바다를 건너 들어오는 난민이 많았던 게 정책 추진 동력이 됐다. 망명 신청자 이동, 현지 관리 등에 드는 비용은 영국과 이탈리아가 부담한다.
그러나 르완다, 알바니아가 단지 '돈 때문에' 거래에 응한 것은 아니다. 카미유 르 코즈 MPI 수석정책분석가의 평가는 이렇다. "르완다는 2009년 영연방에 자발적으로 가입한 이래 영국과 가까워지고 영국을 닮고자 노력했다. 이번 거래도 그런 노력의 연장선으로 봐야 할 듯하다. 알바니아의 경우 EU 가입을 원하고 있다는 점과 연관해 살펴볼 수 있겠다. EU에서 탈퇴한 영국이 과거 비슷한 요청을 했는데 이를 거부하고 이탈리아를 선택한 이유는 EU 회원국인 이탈리아가 모종의 도움을 줄 수 있으리라 보기 때문일 공산이 크다."
이탈리아 "심사받고 와라" vs. 영국 "거기서 살아라"
언뜻 비슷해 보이는 영국 모델과 이탈리아 모델에는 중대한 차이가 있다. 이탈리아는 알바니아에 '망명 심사'와 '심사 기간 중 체류'만 맡긴다. 망명 승인을 받은 사람들은 이탈리아로 갈 수 있다는 뜻이다. 이탈리아는 연간 최대 3만6,000건의 망명 처리를 맡기겠다는 구상을 하고 있다. 반면 영국은 '망명 심사 후 거주 책임'까지 르완다에 지운다. 난민 자격을 얻은 이들조차 영국에 재입국할 수 없고, 그대로 르완다에 살거나 영국이 아닌 제3국에 다시 망명을 신청해야 한다.
그래서 두 모델에 각 당사국 사법부가 나란히 제동을 걸었지만, 사유도 완전히 다르다. 영국 대법원은 '내용상 위법'을 지적했다. "망명 신청자들이 르완다로 이송될 경우, (그 이후에) 본국으로 송환돼 학대를 당할 실질적 위험에 직면할 수 있다고 믿을 만한 상당한 근거가 있다." 1951년 제네바 협약은 '난민이 자신의 생명이나 자유에 심각한 위협이 생길 수 있는 국가로 추방·송환돼선 안 된다'고 명시하고 있다. 영국 대법원은 르완다가 2020~2022년 아프가니스탄, 예멘, 시리아 등 출신 난민의 망명 신청을 전부 기각한 사실에 근거해 르완다가 '위험 국가'일 수 있다고 판단했다. 로렌조 피콜리 MPC 연구원은 "망명 신청자 기본권 보호 측면에서 두 모델 모두 우려스러우나, 국제법 의무를 명백히 위반하는 건 영국·르완다 협정"이라고 말했다.
반면 이탈리아 모델에 불허 결정을 내린 알바니아 헌법재판소는 '절차상 위법'을 문제 삼았다. "난민센터가 들어설 영토의 관할권을 알바니아 정부가 이탈리아 정부에 양도하기로 했는데, 이는 정부 간 계약 범위를 넘어서는 듯하니 추가 검토를 해 봐야 할 것 같다"는 게 헌재 판단의 요지다. 물론 형식적 위법성이 해소돼도 내용상 적합한지는 다시 따져봐야 한다. 매이브 패터슨 UNHCR 커뮤니케이션 책임자는 "망명 심사를 평가하고 보호를 제공하는 책임은 기본적으로 망명 신청자가 거주·보호를 구하는 국가에 있다"며 "관련 협정을 통해 망명 심사를 외부에 맡긴다고 해도 난민 보호 책임을 전가하는 식이 되어선 안 된다"고 짚었다.
전염성 강한 난민 억압책… 그런데도 기꺼이 돕는 EU
영국과 이탈리아가 망명의 외주화 정책으로 전달하려는 메시지는 간명하다. '영국과 이탈리아는 난민에게 안전한 나라가 아니다'라는 것. 이렇게 특정 국가가 난민에 대한 벽을 높이면 이민자들은 유럽 내 다른 나라로 눈을 돌리게 된다. 그래서 난민 정책은 다른 정책보다 유독 빠르게 타국으로 전염되곤 한다.
망명 신청자를 르완다로 보내는 정책을 먼저 구체화한 건 덴마크였다. 덴마크는 2019년 '망명 신청자 제로'를 목표로 세우고 망명 신청자를 외국에 보낼 수 있도록 2021년 6월 국내법부터 일찌감치 개정했다. 이듬해 르완다와 관련 계약도 맺었지만 지금은 절차를 중단한 상태다. 샬로테 슬렌테 DRC 사무총장은 "망명의 외주화 구상 자체를 포기한 것이라기보다는 양자 협약 대신 EU 차원에서 함께 추진할 가능성을 모색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독일에서도 관련 움직임이 일고 있다. 보수 성향 제1야당인 기독민주당(CDU)은 지난해 11월 "난민 심사 기간 동안 망명 신청자들을 '안전한 제3국'으로 보내자"라는 정책 구상을 발표했다. 거래 대상국으로 아프리카의 가나·르완다, 비(非)EU 국가인 몰도바·조지아 등이 구체적으로 거론됐다. 오스트리아도 망명의 외주화 추진을 검토 중이다.
EU는 망명의 외주화가 '법 테두리 안'에서 진행되도록 관련법을 개정해 줬다. EU가 지난달 20일 타결한 '신(新)이민·난민 협약'은 망명 신청자가 망명 심사 기간 동안 국경 밖에 머물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EU에 도착한 난민은 최초 입국한 국가에 난민 신청을 하고 해당국은 이를 받아들여야 한다'는 더블린 조약(1990년 체결) 핵심 조항을 사실상 무력화한 것이다. 국제앰네스티의 이브 게디 유럽기관사무소장은 "이주민 관리를 국경 너머 국가에 더 의존하겠다는 것이자, 난민 보호 책임을 회피하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EU 차원의 망명 외주화도 추진되고 있다. EU는 튀니지, 모로코, 이집트, 이라크, 나이지리아 등과 '이민 관련 상호 협력'을 담은 협약을 맺었거나, 향후 체결 계획을 갖고 있다. 스스로를 '인권 보호의 첨병'으로 묘사하는 EU는 이들 국가에서 난민 인권을 얼마나 보호할지에는 그다지 관심을 두지 않는다. 튀니지의 경우, 자국 내 불법 이주민을 리비아 국경 사막에 버린 혐의를 받고 있다.
'난민 부담' 여론 무시 어려워… "논의 출발점 재설정 필요"
망명의 외주화를 앞장서 추진 중인 영국과 이탈리아에서 정책이 조금만 효과를 내도 주변국으로 금방 전파될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독일, 프랑스, 스웨덴, 스위스 등 유럽 내 10여 개국에선 '난민 혐오 정서'에 기대고 이를 부추기는 극우정당이 제1당을 차지하거나 약진하고 있을 정도로 정책 확산의 토양은 갖춰진 상태다. '난민 인권을 보호해야 한다'는 대중의 인식도 많이 무뎌져 있다.
이대로 상황을 두고 볼 수밖에 없을까. 전문가들은 아예 논의의 출발점을 다시 설정해야만 해결 방안을 찾을 수 있다고 본다. 슬렌테 DRC 사무총장은 "EU에 대한 망명 신청 인구를 연 100만 명 정도로 잡으면 인구가 약 4억5,000만 명에 달하는 EU가 결코 감당 못할 수준이 아니다"라며 "개별 국가가 분투하는 게 아니라 국가끼리 연대하면 충분히 해법을 도출할 수 있다"고 말했다.
각국의 정책 추진을 막을 수 없다면, 난민 인권 보장을 위한 보완책이라도 마련해야 한다는 현실적 조언도 나왔다. 르 코즈 MPI 수석분석가는 "난민을 받는 국가에서 이뤄질 망명 심사 과정 전반에 대해선 난민을 보낸 국가가 적극 책임을 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망명 신청자를 노동인구로 편입하는 방안 등을 모색한다면 망명의 외주화를 최소화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베를린= 신은별 특파원 ebshi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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