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천만 한동훈식 '운동권 청산론', 그리고 '파시스트'들의 경우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그런 당(민주당)을 숙주삼아 수십년간 386이 486, 586, 686되도록 썼던 영수증 또 내밀며 대대손손 국민들 위에 군림하고 가르치려 드는 운동권 특권정치를 청산해야 한다"고 말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신년사를 통해 "자기들만의 이권과 이념에 기반을 둔 패거리 카르텔을 반드시 타파하겠다"고 한 위원장의 발언에 힘을 실었다.
이때만 해도 '운동권 특권 정치'는 운동권 출신 민주당의 일부 다선 의원들을 겨냥한 것인 줄 알았다. 권위주의 정권 시절 민주화 투쟁은 지나갔고, 이젠 후배 챙기고 선배 모시는 '권위적 온정주의 태도'만 남은 운동권의 모습이라든지, 여당 입장에서 '데모꾼'으로 비치는 투쟁 방식이라든지 하는 야당의 문제점들을 비판하는 것인 줄 알았다. 물론 국민의힘이나 보수 신문의 단골 레파토리인 '운동권식 문재인 정부의 국정운영'이라든지, '운동권식 권모술수'나 '운동권식 정략' 같은 것들은 좀 진부하다. 같은 방식으로 '검찰식 윤석열 정부의 국정운영'이라든지 '서초동식 권모술수'라든지 '검찰식 정략'과 같은 수사도 가능하기 때문에, 이런 건 상대 진영에 대해 서로 주고받는 레테르 붙이기 수준의 수사적 비판들일 뿐이다.
그런데 한동훈 위원장의 비대위원 인선을 보면서 뭔가 잘못 돌아가고 있다는 걸 금방 감지했다. '노인 비하' 발언으로 비상대책위원직을 사퇴한 민경우 씨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는 한동훈 비대위원장이 내건 '운동권 정치 청산'의 상징성을 갖고 합류했다. '노인 비하' 발언에 가려졌지만, 민경우 씨가 각종 유튜브 채널에 출연해 설파한 '운동권 청산론'의 실체를 들여다보면, '노인 비하'는 사실 별로 중요치 않은 문제란 생각마저 든다.
그의 '운동권 청산론'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 한 위원장은 그를 발탁할 때 알고 있었을까? 궁금하다. 한동훈 위원장은 그의 주장을 어디까지 내면화 한 것일까? 아니면 한 위원장은 그가 어떤 주장들을 해 왔는지 모른채 비대위원에 발탁한 것일까? 어느 쪽이든 모두 문제가 심각해 보인다.
<시사포커스TV>라고 하는 유튜브 채널에 민경우 씨가 출연한 영상들을 살펴봤다. 그는 일종의 '운동권 감별사'다. 유튜브 채널을 통해 자신이 나름대로 정리한 운동권 계보를 가지고 민주당 의원들을 감별해 내는데, 그 기준이 모호한데다, 자의적이고, 과격하다. 80년대 안기부 대공 요원이나, 공안 검사의 '궁예적 관심법'이 내내 번뜩인다.
민경우 씨의 '운동권 감별 체계'를 관통하는 핵심은 '주사파'다. 1986년에 김일성 주체사상이 대학 운동권을 휩쓸었다는 것 까지는 팩트에 가깝다. 그러나 민경우 씨는 1986년을 기점으로 그 이전과 이후에 활동한 운동권들까지 주사파의 개념 영역을 확장한다. 1970년대 운동권인 이부영 전 의원, 함세영 신부 등의 '운동권 정서'에는 주사파적 성질이 내재해 있었다고 주장하며 1986년 '주체사상'을 흡수한 86세대를 비롯해 그 이후 세대까지 모두 '주사파'의 범주에 집어 넣는다. 그에게 있어서 한국 역사의 운동권과 운동권 정치의 본질은 모두 '친북 반미' 주사파의 다양한 변주들일 뿐이다. 주사파적 집단 무의식이 내재된 한국 '운동권 부족 집단'에 대한 인류학적 고찰이라고 칭해야 할까?
임종석, 안희정 등 주사파 계열 운동권에서 활동한 과거를 가진 정치인이야 '주사파 출신'이라고 비난할 자유에 대해 뭐라고 할 이유는 없다. 하지만 민경우 씨는 PD 계열, '비주사 NL 계열'도 주사파의 변종으로 규정한다.
90년대 학생운동권에 몸담은 바 있는 이탄희(97학번), 박주민(93학번), 강병원(89학번)도 결국 '주사파'의 자장 안에 있었다는 것이고, 이런 추론은 이들이 지금도 주사파의 자장 안에 있을 것이라고 의심하는 근거가 된다. 90년대~2000년대 초반 학생 운동권에 대해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라면 헛웃음을 지을 만한 주장들이다. 이런 '관심법'을 버젓이 내놓고 스스로 '운동권 청산' 이론가를 자임하고 있다. 그런 색깔 감별사를 한동훈 위원장이 '운동권 청산론'의 상징으로 발탁한 셈이다.
민경우 씨는 이런 '주사파의 변종들'을 '사회주의자'라고 칭한다. 사회주의자가 국회에서 활동한다고 한들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뭐가 문제인지 모르겠지만, 민경우 씨는 이런 주장들을 확장시키면서 정치권의 '학생 운동권'은 모두 청산 대상이 되어야 마땅한 것처럼 뉘앙스를 풍긴다. 그는 "주사파가 폭넓게 정의돼야 한다"고 역설한다. 그의 주장에 의하면 주사파는 거의 민주당 그 자체다. 여기에 야당 보좌진들이 국정원의 인사 검증을 받고 채용돼야 한다는 주장에까지 이르면 아연실색할 수밖에 없다.
민경우 씨에 의하면 86세대 이후인 '한총련 세대'는 "전대협보다 훨씬 빨갛"고 "노골적인 종북"이다. 그는 "국회의원 보좌관들이 상당히 사상적으로 문제가 있다. 고급 정보에 접근한다. 노골적 간첩은 적더라도, 남북한 사이버 연결은 매우 쉽다. 굉장히 중요한 정보들이 넘어갈 개연성이 있다"면서 "(보좌진 채용을 할 때) 국정원에서 검열하든가 해서 사상적으로 문제가 있으면 제어할 수 있는 게 필요하다"는 극단적 주장을 내놓았다.
국회 보좌진을 국정원이 사상 검증한다면, 그게 3권 분립인가? 유신 독재 시절에도, 전두환 독재 시절에도 국정원이 야당 국회의원 보좌진 채용 과정에서 '사상 검증'은 하지 않았다. 이런 게 한동훈의 '운동권 청산론'의 실체인가? 그러니까 결국 구태의연한 '색깔론'이다. 민경우 씨를 발탁한 한동훈 위원장은 그의 생각에 동의하는가?
정치가 '진실'을 독점하기 위해 벌이는 '게임'같은 게 아님에도, 지금 우리 정치는 '진실 독점 게임' 양상으로 흐르고 있는 게 사실이다. 지금 한국 정치는 트럼프를 두고 미국에서 벌어지는 '내전'과도 비슷한 양상을 보인다. 트럼프는 '거짓말쟁이'로 보기 어렵다. 그는 '대안적 진실'을 내놓고, 현실을 그 '대안적 진실'에 끼워맞추는 일에 능숙한 인간일 뿐이다.
가짜뉴스를 비판할 때 자주 호출되는 나치의 선전상 요제프 괴벨스는 알려진 것과 다르게 '거짓말'을 통해 대중을 선동하지 않았다. 그는 스스로 '진실'이라 여기는 것을 말하고, 현실을 자신이 생각한 '진실'에 맞추는 데 능숙했다. 이를테면 유대인은 열등하다는 '진실'을 스스로 만들어낸 후, 실제로 유대인이 열등한 것처럼 보일 수 있는 모든 작업을 진행했다. 독일인들이 자신이 창조한 진실을 믿을 수 있도록. 중요한 건 스스로도 자신이 창조한 '진실'을 믿어야 한다는 점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권력'이 필요하다. 권력은 '대안적 진실'에 힘을 불어넣어 줄 수 있기 때문이다. 합의되지 않은 '대안적 진실'을 추구하는 정치 운동권(이를테면 뉴라이트, 혹은 주사파) 집단들은 자신들의 진실을 진실되게 하기 위해, 때론 국가 권력과 투쟁하고, 때론 국가 권력을 이용한다. 그들이 '권력 쟁취'에 사활을 거는 이유다. 이를테면 민경우 씨가 신영복을 '주사파 대부'로 규정한 후 국정원 원훈석의 '신영복체'를 물리적으로 제거하는 데 착수한 것(쉽게 성공했다)이나, 신원식 국방부장관이 홍범도를 '공산주의자'로 규정하고 육군사관학교에서 그의 흉상을 치워버린 일 같은 건, 국가 권력을 이용해 '대안적 진실'을 '객관적 진실'로 탈바꿈하려 노력하는 일의 일환이다. 신화를 파괴하고 새 신화를 건설해야 하기 때문이다.
'운동권 출신 정치인은 부패하고 무능한데 권력을 차지하고 앉아 다음 세대를 착취한다'는 주장은 이제 중년, 노년에 접어든 86운동권 출신 정치인 집단을 싸잡아서 '청산 대상'으로 하고자 하는 명분을 만드는 작업이다. 그 집단은 '민주당 그 자체'가 되고, 여기에 색깔론이 덧씌워지면서 한동훈 비대위의 '제1의 목표'로 재탄생한다. 민경우 씨의 과격한 '사상'은 그런 '운동권 청산론'의 민낯을 아주 투명하게 보여준 것이다.
그러나 '운동권 청산론'은 그렇게 작동하지 않을 것이다. 민주당에도, 국민의힘에도, 구태의연한 문화들, 인물들이 많다. 그 청산은 각 당의 '미래세대'들에게 맡기는 게 맞다. 국민의힘이 '운동권 감별사'를 영입해 남의 당을 수술해 줄 필요도, 이유도 없다. 국민의힘은 '국민의힘 세대교체'에, 민주당은 '민주당 세대교체'에 힘쓰고 경쟁해야 한다. 김종인의 말처럼, 한동훈식 운동권 청산론은 시대 정신이 될 수도 없다.
대통령은 자신의 '오른팔'을 당 전면에 내세워 다시 '이념 전쟁'으로 뛰어들었다. 자신감을 되찾은듯 하다. 내년 총선이 '이념 전쟁'으로 가면 어느 쪽이 유리할까. 각자 곰곰히 생각해 볼 일이다.
[박세열 기자(ilys123@press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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