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 선데이] 증오의 폭력, 정치가 달라져야 없앨 수 있다
정치적 혐오는 특히 지난 대통령 선거 기간 온갖 형태로 쏟아져 나왔다. 지난해 성균관대 연구팀이 대선 관련 뉴스 댓글 3000여만 건을 분석한 결과, 둘 중 하나는 정치적 반대편을 모욕·비하·멸시·위협하는 혐오 표현이었던 것으로 조사됐다. 이와 같은 일반대중 차원의 혐오 확산은 정치권 및 각종 미디어와 절대 무관하지 않다. 선거 기간 각 정당의 대표와 국회의원, 유튜버를 비롯한 지지자 등은 정치적 혐오 표현을 매일 같이 쏟아냈다. 김씨는 아마도 이와 같은 혐오 표현에 일상적으로 노출되면서 정치적 반대편에 대한 증오를 키워나갔을 가능성이 크다.
이 대표에 대한 김씨의 증오는 “죽이려고” 할 정도로 강력했다. 그리고 그 증오의 근원은 개인적인 원한이나 정신적 이상이 아니라 지극히 정치적인 것이었다. 김씨가 살아왔던 이 사회의 어떤 메커니즘이 그의 마음속에 혐오의 씨앗을 뿌리고 자라게 했을 것이다. 혐오는 기본적으로 자신이 속하지 않은 상대 집단에 대한 편견을 바탕에 깔고 있으며 사회적으로 상대 집단에 대한 거부 행동으로 나타난다. 사회심리학자 올포트는 이러한 거부 행동의 유형을 적대적인 말-회피-차별-물리적 공격-절멸의 다섯 단계로 구분한다. 김씨의 행동은 이 가운데 상대 집단의 완전한 제거를 의미하는 절멸의 바로 전 단계인 물리적 공격이었다. 아마도 김씨는 이번 사건 이전 민주당 또는 이 대표에 대한 적대적인 언어를 수시로 사용했을 것이고 민주당 지지자를 피하거나 차별했을 가능성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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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재명 피습 사건 이면엔 혐오 자리
대선 때 극심 … 댓글 둘 중 하나 혐오
정치반대편 혐오대상으로 규정하고
적대 언사 쏟는 메커니즘 달라져야
」
김씨의 마음속에 증오가 타오르게 한 것은 결국 정치적 반대편을 혐오의 대상으로 규정하고 끊임없이 적대적인 언사와 회피, 차별의 거부 행동을 일삼는 정치와 미디어의 메커니즘이라고 할 수 있다. 언제부터인지 한국 정치에는 반대편을 존중하거나 타협의 대상으로 여기지 않는 것은 물론, 아예 상대의 존재 가치를 부정하는 태도가 자리 잡고 있다. 정치엘리트들이 지지 세력을 키우고자 반대편을 적대시하고 혐오 표현으로 상대를 공격하면 각종 미디어는 상업적·정치적 목적으로 이를 확대, 재생산한다. 이 과정에서 사회에 광범위하게 존재하던 중간층은 점차 사라지고 양쪽 극단으로 치우치는 일반대중의 양극화가 진행된다. 사람들은 자신이 지지하는 정치 집단과 반대편으로만 사회를 인식하게 되며 상대를 절멸해야 할 집단으로 생각해 공격에 나서는 극단적인 행동까지 벌이게 된다.
자신이 속한 집단에 대한 충성이 반드시 상대 집단에 대한 적대적 태도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그러나 많은 경우 사람들은 반대 진영을 과도하게 생각하고 상대편을 부정하는 행위를 통해 자신이 속한 집단에 대한 충성심을 인식한다. 이러한 혐오의 불씨에 정치엘리트와 각종 미디어가 선동의 기름을 끼얹으며 정치적 혐오가 발화하고 극단적으로는 물리적 공격까지 벌어진다. 결국 이 대표 피습 사건과 같은 정치적 혐오에 기반한 물리적 폭력은 이러한 메커니즘이 깨지지 않는 한 언제든 또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현재의 정치 및 미디어 메커니즘의 변화만이 이 증오의 폭력을 줄일 수 있다.
이재국 성균관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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