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디터 프리즘] 12층 김 여사님
김홍준 2024. 1. 6. 0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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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한민국의 새벽을 여는 사람들
소리소문 없이 묵묵히 할일 다해
」
연신내에서 오는 분들은 심야버스 N72번을 탑니다. 은평차고지에서 첫차가 오후 11시30분, 막차가 오전 3시25분입니다. 이 버스 막차 조금 뒤인 3시50분, 서울 상계동에서는 8146번 첫차가 출발합니다. 우린 그 버스에 올랐습니다. 또 다른 김 여사님, 박 여사님 등 여사님들로 꽉 찼습니다. 이들은 “이렇게라도 일하니 다행”이라고 하더니 곧 졸음에 빠져들었습니다. 인터뷰를 이어가기 힘들 정도였습니다.
새벽을 여는 사람들은 바빴습니다. 동이 트기 전 기어코 일을 마치려 하거나, 새벽이 지나기 전에 일을 시작하려고 했습니다. 정규빈(33)씨와 김흥배(76)씨처럼 말이죠. 정씨는 출근하는 음식점 사장님들보다 앞서 식자재를 원하는 곳(냉장실 몇 번째 칸 좌측 혹은 우측)에 정확히 갖다놔야 했습니다. 누군가와 통화라도 하는 걸까요. “이 새벽에 신문사에서 취재를 왔대”라고 건너편에 말했습니다. 김흥배씨는 “다른 사람이 폐지를 가져가기 전에 나왔는데, 경쟁자가 나타난 줄 알고 놀랐다”고 했습니다.
김 여사님과 함께 출근하는 남편은 정년퇴직 뒤 다른 건물에서 일합니다. 이제 70세를 갓 넘긴 팔팔한 노인입니다. 윤동현(23)씨는 주말에만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하며 틈틈이 취업 공부를 하는 청년입니다. 우리는 이렇게 새벽을 여는 사람들과 함께 정년 연장과 청년 취업 사이에서 고민도 해봤습니다. 노인 문제, 자영업의 어려움에도 다가섰습니다.
대부분 사전 조율 없이, 길거리에서 부딪혀 만난 사람들이었습니다. 갓 캔 고구마 같은 거친 ‘현장’의 분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이런 일도 있었지요. “아니, 왜 자꾸 다가와요. 무서워요. 오지 마세요.”(대림역 첫 지하철을 기다리던 여성), “어디서 사진을 찍고 그래. 폰 줘 봐요. 기자? 얼굴만 나오게 하지 마쇼.”(남구로역 인력 시장의 남성)
이정희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타인의 노동 없이 우리는 삶을 영위할 수 없고, 나의 노동도 누군가에게 필요하고, 누군가의 노동도 나에게 큰 영향을 미치는 만큼, 그 누군가가 사는 것도 중요하게 봐야 한다”며 “그게 연대고, 사회 정의”라고 강조했습니다.
난(蘭)이 있습니다. 한 것이라고는 물만 준 것뿐인데, 몇 해를 거르고 얼마 전 꽃을 피웠습니다. 출장-휴가-출장으로 물 줘야 할 때를 3주 연속 놓친 뒤였습니다. 그 3주간 누가 돌봐줬을까요. 혹시? “여사님!” 노크를 하고 그녀의 작은 공간에 들어섰습니다. 그녀는 어디론가 사라진 채였습니다. 투명인간처럼요.
취재진 5명을 대표해 새벽에 씁니다.
김홍준 기획담당선임기자 rinrim@joongang.co.kr
김홍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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