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 삶 바꿀 AI 혁신상, 국내 기업이 휩쓸어
신설된 AI부문 28개 혁신상 중 16개 최다 수상
9일(현지 시각) 개막하는 세계 최대 IT 전시회 CES(Consumer Electronics Show) 2024에서 인공지능(AI) 분야 혁신상을 한국 스타트업들이 휩쓸었다. CES를 주최하는 전미소비자기술협회(CTA)가 선정하는 CES 혁신상은 150국 4200여 기업이 참여한 CES에 출품된 제품과 서비스 가운데 세상을 바꿀 기술을 선별해 시상한다. CTA는 AI가 인터넷과 전자 산업은 물론 정치·사회·문화 등 모든 영역으로 확산될 것이라며 올해 처음 혁신상에 AI 분야를 신설했다.
한국 스타트업은 AI 분야 혁신상 28개 가운데 16개를 차지했다. 실리콘밸리 빅테크의 전유물로 여겨지던 AI 분야에서 차별화된 아이디어와 기술로 승부수를 던진 창업자들이 무한한 가능성을 인정받은 것이다. 이들 기업은 CES 2024 전시장에서 13만명에 이르는 글로벌 기업과 바이어를 상대로 본격 세계시장 공략에 나선다.
한국 스타트업 스튜디오랩은 마케팅 콘텐츠 창작을 돕는 AI로 CES 혁신상을 수상했다. 이용자가 의류 상품 사진을 올리면 AI가 의류의 특징, 스타일, 색상 등을 분석해 상품 설명을 담은 페이지를 만들어준다. 삼성전자에서 마케팅 업무를 담당하던 강성훈(39) 대표는 AI를 활용한 마케팅 방안을 고민하다 직접 AI 기술 개발에 나섰다. CTA는 크림의 웹툰 제작을 돕는 AI, 웨이센의 호흡기 건강 분석 앱, 와타의 창고 물류 관리 시스템, 웨이커의 금융 데이터 분석 소프트웨어 등도 AI 시대를 선도할 기술로 꼽았다.
정우성 포스텍 산업경영공학과 교수는 “한국 스타트업들은 막대한 비용과 인력 투입 없이도 산업 현장이나 콘텐츠 창작 효율을 높여줄 수 있는 AI 개발에 집중하고 있다”면서 “AI 대중화와 확산을 이끌 수 있는 현실적인 접근이라는 것을 세계가 인정한 것”이라고 했다. 5일 기준 한국 기업들은 분야를 막론하고 최고의 기술을 꼽는 대상 격인 최고혁신상도 8곳이 수상해 미국(7곳), 일본(3곳)을 앞섰다.
올해 CES에서는 다양화된 한국 산업의 경쟁력이 화두로 떠오를 전망이다. 삼성전자와 LG전자, 현대차 등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한국 기업들은 수년 전부터 CES의 주인공이었다. 하지만 올해는 한국에서 불모지나 다름없었던 분야에서 스타트업들이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한국의 창업 생태계가 성장하면서 우수한 인재와 자본이 스타트업 업계에 몰리고, 그 결과물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조대곤 KAIST 경영대학 교수는 “CES 혁신상은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할 자격을 갖췄다는 보증수표처럼 여겨진다”면서 “투자자와 바이어들이 혁신상을 받은 기업을 집중적으로 살펴보는 것이 당연시된다”고 했다.
◇한국, 최고혁신상 최다 수상
이번 CES 2024에서 최고혁신상을 수상한 로드시스템은 블록체인과 서버 보안, 암호화 기술 9가지를 적용한 세계 최초 모바일 여권 앱을 개발했다. 작년 7월 출시된 로드시스템의 모바일 여권 앱 ‘트립패스’는 설치 후 한 번만 인증을 거치면 실물 여권을 갖고 다닐 필요가 없다. 여권 데이터 위·변조가 불가능한 블록체인, 사진 암호화, 사이버 보안 기술을 상용화하는 데 약 8년이 걸렸다. 현재 인천국제공항 공식 앱에서 사용이 가능할 정도로 기술력과 안전성을 인정받고 있다. 장양호(57) 로드시스템 대표는 “올해 CES를 미국·동남아 등 세계로 진출하는 교두보로 삼겠다”고 했다.
스타트업 원콤은 시각장애인 전용 블루투스 키보드 ‘핀틴V1′을 내놨고, 벤처기업 만드로는 로봇 의수와 손가락으로 혁신상을 받았다. 세계 최초 공기 주입식 스마트 농장 에어팜(미드바르), 블록체인 기반 투표 시스템(지크립토) 등 한국 업체들은 장애인, 식량 부족, 투표 투명성 같은 인류의 난제 해결에도 도전했다. CTA는 이들 기업에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같은 시상평을 내놓았다.
◇KAIST·포스텍 등 대학도 총출동
한국 대학들도 CES에 총출동한다. KAIST는 약 232㎡ 크기의 부스에 24개 창업팀이, 포스텍은 경북도·포스코와 함께 차린 약 364㎡ 규모의 공동관에 벤처 34사가 참석한다. KAIST 전기및전자공학부 교수인 정명수 대표가 창업한 반도체 팹리스(설계) 업체 파네시아는 차세대 기술로 꼽히는 인공지능(AI) 가속기를 시연한다. 정 대표는 “파네시아 기술은 대규모 AI 서비스를 원활하게 운용하기 위한 필수 기술이 될 것”이라고 했다. 포스텍 화학공학과 차형준 교수가 세운 네이처글루텍은 의료용 접착 단백질로 CES 혁신상을 받았다. 차 교수는 홍합에서 유래한 접착 단백질 연구로 유명한 석학이다. 차 교수는 “접착 기술은 약물 전달 등 다양한 의료 분야에 활용할 수 있다”고 했다.
한국 스타트업과 대학들은 CES 스타트업 전용관인 ‘유레카 파크’에서 일본, 홍콩, 대만 등 세계 각지에서 몰린 1000곳 이상의 스타트업과 진검 승부를 벌일 예정이다. 세계 각국은 국가관을 차리고 관람객의 발길을 붙잡을 계획이다. 특히 프랑스관, 대만관, 한국관, 일본관이 차려져 각국의 스타트업 기술력 경쟁이 뜨거울 전망이다. 통합 한국관에는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 지원 기업 60곳이 참가한다.
올해 CES에서는 세계 테크 업계가 한국 테크에 높은 관심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행사가 곳곳에서 열린다. CES에서는 9일부터 폐막일인 12일까지, 매일 오후 3시부터 1시간 동안 ‘한국의 메타버스 기술로: 왜 한국이 메타버스의 격전지(Hotbed)인가’를 주제로 한 콘퍼런스가 열린다. CES에서 특정 국가의 산업을 중심으로 콘퍼런스가 열리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CES 혁신상·최고혁신상
전미소비자기술협회(CTA)가 매년 CES 출품작 중 기술성·디자인·혁신성이 뛰어난 제품과 서비스에 수여하는 상이다. 산업·학계·미디어 전문가들이 매긴 평가 점수로 선정한다. 소비자 가전·헬스케어·모빌리티 등 28개 부문에 걸쳐 혁신상 수상작을 선정한 뒤 분야를 가리지 않고 대상 격인 최고혁신상을 뽑는다. 수상작 수 제한은 별도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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