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론 책이 인생을 바꾼다… 새해, 이정표를 만날 수 있을까
프란츠 카프카는 독일 극작가 헤벨의 일기를 읽고 강한 자극을 받은 뒤에 친구에게 보낸 편지에 이렇게 썼다. “한 권의 책은 우리 안의 얼어붙은 바다를 깨는 도끼여야 해.”
책은 힘이 세다. 때로 삶이라는 강의 줄기를 바꾼다. 갑진년 청룡의 해를 맞아 1940년생부터 1988년생까지 용띠 문인 5인이 인생에 이정표가 된 책을 각각 꼽았다. 자유와 위안을 주고 책임의 의미를 일깨우며 더 멀고 높은 곳으로 데려다준 책들이다. 오래된 책도 있고, 익숙한 책도 있으며, 이제는 도서관에 가야 만날 수 있는 책도 있지만 누군가의 삶을 움직일 힘과 무게를 지녔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여전한 작품들이다.
하루하루 시간은 똑같이 흘러간다. 그래도 달력의 첫 장을 넘기는 마음은 늘 새롭기 마련이다. 지나간 시간을 뒤로하고 앞날을 내다보게 되는 지금, 한 권의 책을 길잡이 삼아 힘차게 한 해를 시작한다. 푸른 용처럼.
[40년생 소설가 전상국]
‘님’은 내게 일깨워줬다 글쓰기 初心과 신명을
님의 침묵|한용운 시집|한성도서
1960년대 초, 청계천 변의 헌책방 순례는 작가 지망생들의 낭만이었다. 지금 우리 집 책 곳간 책시렁에 꽂혀 있는 ‘육사시집’(1946년 서울출판사)과 청마 유치환의 ‘생명의 서’(1947년 행문사) 등의 시집도 그때 그 헌책방에서 어렵게 구입한 것들이다.
‘님의 침묵’(1926년 초간본)을 만져본 것도 그 무렵이다. 그때 서점 주인이 그 책값을 얼마로 얘기했는지 그 기억은 없지만 아무튼 당시 대학생 주머니 사정으로는 어림도 없는 높은 액수였던 것만은 분명해 그 일로 해서 만해 한용운의 존재가 내 의식 깊숙이 각인된다. 그 ‘님의 침묵’을 고려대 교수가 사갔다는 얘기를 서점 주인에게서 전해 들은 그 낙담을 씻기라도 하듯 서둘러 1955년 한성도서 간행의 ‘님의 침묵’을 구입한 뒤 구도자의 그런 절실함으로 시집 속 작품들을 읽기 시작했다.
‘군말’ ‘알 수 없어요’ ‘님의 침묵’ 등의 작품을 암송할 정도로 읽으면서 시가 무엇이고 좋은 시가 어떠한 것인가가 터득되는 그런 느낌이었다. 나는 시인이 될 수 없다는 그런 자각 같은 것도 아마 그때 생기지 않았나 싶다. ‘님의 침묵’ 맨 앞의 ‘군말’ 첫 구절은 내가 앞으로 무엇을 어떻게 써야 할 것인가 하는, 내 글쓰기의 초심이 된다. ‘나는 해 저문 벌판에서 돌아가는 길을 잃고 헤매는 어린 양이 긔루어서 이 시를 쓴다.’
‘님의 침묵’ 맨 끝 ‘독자에게’의 첫 문장도 인상적이다. ‘독자여, 나는 시인으로 여러분의 앞에 보이는 것을 부끄러워합니다.’ 만해의 문학에 대한 범치 못할 그 경외심이 내 글쓰기의 신명, 그 항심 세우기에 큰 도움이 되었다는 생각이다.
[52년생 시인 김승희]
남의 말에 갇히지 말고 자유롭게 달아나 보렴
깊이에의 강요|파트리크 쥐스킨트 소설|김인순 옮김|열린책들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단편집 중 ‘깊이에의 강요’는 번갯불에 콩 구워 먹게 생긴 초(超)단편이다. 게다가 슬프기도 하고 그로테스크한 이야기. 소묘를 뛰어나게 잘 그린 젊은 여인이 초대 전시회에서 어느 평론가에게 이런 말을 들었다. “당신 작품은 재능이 있고 마음에 와닿습니다. 그러나 당신에게는 아직 깊이가 부족합니다.” 그 말을 들은 후 그녀는 “왜 나는 깊이가 없을까?”를 생각했고 “나는 깊이가 없어요”라는 말에 빠져들면서 점점 더 그림도 그리지 않았다. 점점 더 피폐해졌다. “나는 깊이가 없어요”만 반복하다가 그 몇 년 후 그녀는 자기 그림을 갈기갈기 찢고 텔레비전 방송탑으로 올라가 139m 아래로 뛰어내려 즉사했다. 눈부신 재능도 예술도 젊음도 다 흩어지고 “나는 깊이가 없어요”라는 절박한 말만 남았다.
이 책을 읽고 나는 무의식의 괴물 같은 강박의 무서움을 느꼈고 어떻게 ‘강박으로부터의 자유’를 얻어야 하는지를 깨달았다. 옛날 내 시인 친구에게 한 평론가가 “이런 시대에 그런 뽕짝 같은 시를 쓰고 있느냐”라고 비판, 힐난을 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그 친구는 후에 깊은 상처를 받아서 머릿속에서 뽕짝, 뽕짝, 뽕짝이란 말만 맴도는 것 같았다고 했다. 나도 “이미지가 사치스럽고 장식적이다”라는 아픈 비난을 들은 적이 있는데 그 말이 오랫동안 강박적으로 뇌 속에서 맴돌았다. 아까 ‘뽕짝’이란 주술의 말처럼 한번 강박의 굴레에 갇히게 되면 우리는 정신적으로 마비되고 능동적 자유를 잃어버리게 된다. 문득 강박의 반대말이 자유라는 생각이 떠올랐다. 그러니, 그냥, 남의 말에 강요받지 말고 그냥 그저 자유롭게 달아나라. 자유는 치유고 치유는 생명이다.
[64년생 시인 정끝별]
“너는 어디든 갈 수 있어” 詩라는 날개를 달아줘
갈매기의 꿈|리처드 바크 소설|이상길 옮김|세종각
내 시에 새가 없다는 걸 자각했던 3년 전, 그때 다시 꺼내든 책이 리처드 바크의 ‘갈매기의 꿈’(1974)이었다. 중학생 때 읽었던 세로쓰기의 ‘원서 합본’이다.
반세기를 묵은 책을 펼쳐 들고는 순식간에 ‘갈매기의 꿈’ 연작시를 썼다. “갈매기의 꿈과 영어를, 아버지가 말했어/ 갈매기의 꿈과 그림을, 여자에겐 날개가 없어/ 갈매기의 꿈과 베껴쓰기를, 오빠들이 말했어/ 갈매기의 꿈과 춤을, 치마를 날개처럼 펼쳐선 안 돼”. ‘조너선 리빙스턴 시걸’에 빙의된 채 밤을 지새우며 몇 날 며칠 저릿함과 뜨거움으로 멀미를 앓았던 이유를 열여섯 살 즈음에는 제대로 알지 못했다.
그 현기증의 정체를 가늠했던 건 대학생이 되어 페미니즘 필독서 ‘날으는 것이 두렵다’(에리카 종, 유안진 옮김, 문학예술사, 1979)를 읽으면서였다. ‘난다는 것’의 실체와 ‘비행’의 의미를, 여성으로서의 자각과 여성으로서의 글쓰기와 연결할 수 있었다. 시(쓰기)는 내게 스스로를 더 높이 더 멀리 미지의 세계로 데려다주는 날개이자 시선이었다. 실제로 “백로의 등에 올라탔어 백로가 흰 날개를 펼쳤는데 날개가 하늘을 덮었어 궁창이 깨지고 천둥 번개가 쳤어 붕새다 붕새! 비명을 지르며 꿈에서 깨”고, 나는 등단을 했다.
“너는 언제나 네가 가고 싶은 곳을 갈 수 있어”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이 한 마리의 새에게 그가 자유라는 것을 믿게 하는 것, 그리고 그가 약간만 시간을 소비하여 연습하면 자유로움을 스스로 증명할 수 있다는 것을 믿게 하는 것”이야. 이런 문장에 세로의 밑줄을 치고 외우며 열여섯의 나는 ‘조너선 리빙스턴 시걸-되기’를 꿈꾸며 시라는 ‘날기’를 예감했으리라.
[76년생 시인 김민정]
“예술보다 ‘쟁이’가 좋아” 일엔 최선을 다하게 해
일하는 예술가들|강석경 지음|열화당
새해다, 갑진년이다, 청룡이다, 비상이다, 하니 날아라, 푸르구나, 자란다, 어린이다, 하는 노랫말의 동요가 절로 따라붙는다. 용이라는 상상, 상상이라는 희망, 희망이라는 풍선이 우리를 부풀게 하여 그러할까. 필시 땅으로부터 자주 발을 뜨게 하는 기운이 1월에는 있고, 그 발걸음으로 예의 서점을 디딜 적에 우리는 헤맴이 기쁨일 수 있고 느림이 안도일 수 있는 이상한 나라의 시계 하나를 차게도 된다.
애초에 불량인 것도 아니고 일부러 잘못 맞춘 것도 아닌데 제각각 다른 시간을 가리키고 있는 시계들. 나는 서가에 꽂힌 책들에서 각기 다른 째깍 소리에 귀를 한껏 세우고는 한다. 내게 들리는 책일 때 내 몸이 들리는 경험, 그 황홀경. 그렇듯 천천히 읽게 하여 오래고 듣게 하는 일로 활자가 곧 목소리임을 일깨워준 책, ‘일하는 예술가들’.
이는 강석경 소설가가 열다섯 명의 예술가를 인터뷰하여 한데 모은 책이다. “난 예술이 뭔지 몰라. 그것보단 쟁이가 좋아. 쟁이는 무어든 마음대로 나오거든.” 화가 장욱진 선생의 목소리를 듣고 내 시에 자유를 얻은 것도 이 책 덕이었다. “최선을 다했을 때 응신(應身)이 와요. 항상 준비되어 있으면 피안과 신과 대화가 가능해요.” 작곡가 강석희 선생의 목소리를 듣고 내 일에 책임을 얹은 것도 이 책 덕이었다. 그뿐이랴. 무심결에 펼쳤는데 범종처럼 퍼져나가던 전통무용가 이매방 선생의 목소리. “세월이 왜 갈까이.”
마흔아홉에도 갈팡질팡하긴 매한가지라 다시금 이 책이다. 새해 며칠이나 지났다고 누가 나에게 회초리 좀 들었으면, 누가 나 좀 지게로 업었으면 또 이러고 앉았다.
[88년생 평론가 심완선]
쓸모없는 유리알이라도 사랑할 수 있지, 뭐 어때
유리알 유희|헤르만 헤세 소설|박환덕 옮김|범우사
책을 사랑하지 않은 날이 없었던 기분이다. 나는 하늘이 캄캄해지도록, 혹은 푸르스름해지도록 책을 읽는 아이였다. 그 책은 주로 번역 소설이나 대중소설이었으니 ‘한국문학’의 ‘정통’은 아니었다.
나는 핍진함을 피해 자랐다. 한국전쟁이나 민주화를 다루는 문학은 교과서에 있었다. 집에는 컴퓨터게임, 만화책, 판타지 소설이 있었다. 내게 책은 지금-여기를 떠나는 길이었다. 비현실은 풍성풍성 몸집을 키웠다. 나는 도서관, 대여점, 서점을 빙빙 돌았다. 둥실둥실 다니며 재미있어 보이는 책을 집어삼켰다. 생일선물로 도서 상품권이 오가고, 텔레비전에서 ‘책책책, 책을 읽읍시다’가 나오던 시절이었다.
헤르만 헤세의 ‘유리알 유희’(범우사·1999)는 비현실을 사랑해도 된다고 가르쳐주었다. 작중의 미래에서, 거대한 전쟁을 겪은 사람들은 문화 및 교양의 중요성을 깨닫는다. 그리하여 특별자치주 ‘카스탈리엔’을 설립한다. 유리알 유희는 카스탈리엔에 유행한 예술이다. 여기에서는 바둑의 수, 악보의 음표, 스테인드글라스의 색처럼, 유리알 하나하나가 의미를 갖는다. 이는 인류 문화의 정수를 담아낼 수도 있다. 문외한에게는 복잡한 장난에 불과하다. 유리알 유희는 여러 예술 중에서도 특히 실용성이 없다. 따라서 그것은 가장 섬세하게 지켜야 할 영역이 된다.
유리알의 이미지는 나를 붙들었다. 닻이 배를 고정하듯, 병이 몸을 잠식하듯, 이처럼 무용하고도 가치로운 것의 존재가 내게 새겨졌다. 그래서 나는 비로소 말하게 되었다. 사랑할 만한 것을 사랑하고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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