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700발 훈련… “난 재능 0%, 노력 100% 궁사”

김민기 기자 2024. 1. 6. 03:02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스포츠 라운지] 파리올림픽 金 정조준 양궁 국가대표 김제덕
지난 4일 충북 진천선수촌 양궁 훈련장에서 포즈를 취한 김제덕. 2021년 도쿄 올림픽에서 2관왕(남자 단체·혼성)에 올랐던 김제덕은 오는 7월 파리에서 개인전 금메달까지 가져오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 고운호 기자

양궁 국가대표 김제덕(20·예천군청)은 2021년 도쿄올림픽 경기 중 틈만 나면 목청껏 기합을 넣어 ‘파이팅 궁사’라는 별명으로 더 유명해졌다. 그는 도쿄 2관왕(남자 단체·혼성)에 이어 7월 파리에서 개막하는 생애 두 번째 올림픽에선 더 높은 고지를 꿈꾸고 있다. 파리에선 개인전 금메달을 노린다. 갓 스무 살에 올림픽과 세계선수권·아시안게임 남자 단체전 금메달은 이미 따 놓았다. 남은 건 올림픽 개인전, 아시안게임·세계선수권 개인·혼성 석권이다. 그는 “마흔 살까지는 현역으로 뛰면서 하나하나 이루어 가겠다”고 말했다.

파리에서 그는 할머니와 아버지를 위해 시위를 당긴다는 각오다. 다섯 살 때 부모가 갈라서면서 김제덕은 할아버지·할머니가 있는 경북 예천으로 보내졌다. 아버지는 가족 생계를 위해 외부에 주로 머물렀고,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천방지축인 그를 사랑으로 보살폈다 한다. 그런 할아버지는 2017년 세상을 떠났고, 그 뒤 아버지가 뇌출혈, 할머니는 노환으로 요양 병원에 입원했다. 파리 금메달을 들고 두 사람을 찾아갈 생각이다. “그게 제가 할 수 있는 최고 효도”라고 말했다. 개인전 금메달을 들고 할아버지 산소에도 가겠다고 했다.

그래픽=조선디자인랩 이민경

김제덕은 예천초 3학년 때 양궁에 입문했다. 양궁부원을 모집하는 소개 자리에서 친구가 “제덕아, 네가 해”라고 거들자 엉겹결에 손을 들고 입부했다. 운명이었다. 그는 “나는 재능 0%, 노력 100% 궁사”라고 자주 말한다. 초·중등 시절 하루 700발가량을 쏘며 손끝 감각을 키웠다. 300~500발이 보통인데 극한까지 밀어붙인 셈이다. 일찌감치 ‘천재 궁사’로 이름을 날렸지만 역효과도 있었다. 지나친 훈련량에 어깨뼈와 힘줄이 부딪혀 극심한 통증을 느끼는 ‘어깨 충돌 증후군’이 찾아온 것. 시위를 턱까지 당기기 어려울 정도였다. 화살이 제대로 날아갈 리 없었다. 근처 병원에서 치료받고 재활에 집중했다. 연습량을 줄이고 3~4개월쯤 재활하니 호전됐다. 현재는 통증이 거의 없지만 재발 걱정이 있다. 그 후 무작정 훈련량을 늘리기보다 운동과 휴식을 적절히 병행하는 게 ‘롱런(long-run)’하는 길임을 깨달았다.

김제덕에게 양궁은 물론 “100%, 전부”다. 이제 저녁엔 주로 훈련보다 휴식에 치중한다. 모두 낮 훈련 때 최고 상태로 시위를 당기려는 것이다. 긴장을 풀려고 축구나 탁구도 즐긴다. 탁구 국가대표 신유빈(대한항공)과는 절친한 동갑 친구. 대회 때마다 ‘잘하고 돌아오라’는 문자 메시지를 나눈다. 신유빈에게 탁구 특별 과외도 받았지만 “재능이 없다”고 혼만 났다. 대신 대표팀 선배 김우진(32·청주시청)과 탁구 대결을 하면서 승부욕을 다듬는다. “국가대표 간 대결이잖아요. 지면 가만히 못 있겠더라고요.”

지난 4일 충북 진천 국가대표 선수촌에서 2020 도쿄 올림픽, 2022 항저우 아시안게임 금메달리스트이자 파리올림픽 기대주 김제덕이 활시위를 당기고 있다. / 고운호 기자

그의 꿈은 이제 시작이다. 올림픽 무대를 밟으려면 본선보다 더 어렵다는 한국 국가대표 선발·평가전을 거쳐 최종 3명 안에 들어야 한다. 그는 “어릴 때는 이런 시스템이 다소 잔인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이제는 ‘선수라면 응당 해야 하는, 당연한 과정’이라 여긴다”고 말했다.

김제덕이 도쿄올림픽 당시 관중에게 깊은 인상을 준 “파이팅” 구호는 그의 트레이드 마크가 됐다. 그의 선창(先唱)이 신선한 자극이었을까. 이젠 대표팀 선배들도 이런 행동을 따라 한다. 도쿄올림픽 때 고교생(고2)이던 그는 “큰 대회를 앞두고 너무 긴장해서 다른 선수에게 방해가 되지 않을 때 소리 지르며 긴장감을 풀어도 되겠느냐”고 코치진과 선배들에게 양해를 구한 다음 “파이팅”을 외쳤다. 이젠 어느 정도 경험이 쌓여 전처럼 꼭 악을 쓸 필요는 없지만 ‘파이팅’엔 간절함이 담겨 있다는 걸 스스로 잘 안다. 여름 파리에서도 목청 높일 수 있도록 김제덕은 새해 초 거듭 시위를 당긴다.

진천=김민기 기자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