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배의 공간과 스타일] [218] 전공 없는 대학
영국 옥스퍼드대학 내의 수십 개 ‘칼리지(College)’는 원래 ‘공동의 규칙을 가지고 생활하던 단체’에 어원을 둔다. 우리가 이야기하는 경영대학, 자연과학대학, 공과대학과 같은 단과대학, 또는 ‘작은 규모의 대학’과는 개념이 조금 다르다. 각 칼리지는 전공별로 분류되지 않고, 논리학, 문법, 천문학, 기하학, 음악, 수학과 같은 다양한 분야의 학문을 골고루 배운다. 교수들도 전공을 넘나드는 석학들이 수두룩하다. 그래서 세계적인 물리학자가 옥스퍼드에서 문학을 강의하는 것은 전혀 어색한 일이 아니다. 이 대학의 곳곳에서 영감을 받았던 소설 ‘해리 포터’의 마법학교에서 책을 읽고 독해하는 법, 약품을 과학적으로 분석·사용하는 법, 물체를 이동·변형하는 법, 그리고 빗자루를 타는 방법을 두루 가르치는 수업 풍경은 이를 은유한다.
미국의 아나폴리스와 샌타페이의 두 캠퍼스를 운영하는 세인트존스대학(St. John’s College)도 이런 전통을 지키고 있다. 고전학, 역사, 미술사, 철학과 같은 몇 가지 대표 영역의 교수들이 ‘돈키호테’를 완독하고 토론하는 등의 수업을 진행한다. 인문학 중심의 특성화된 교육 시스템으로 국회, 교육계, 공무원, 작가, 백악관 대변인, 뉴욕타임스나 월스트리트저널의 기자 등 다양한 분야로 졸업생을 배출하고 있다. 물론 창업이나 투자회사 등을 운영하는 동문들도 많다.
대학의 교과과정을 세부 전공으로 갈라놓고 보니 세상에 대한 통찰이 없는 평범한 기술자만 배출한다는 비판은 오래전부터 이야기되어 왔다. 강의실 모습부터 수업 방식까지 참으로 오랫동안 바뀌지 않았던 대학을 이제는 좀 다르게 접근해 볼 때다. 학생이 어떤 학문을 탐구하는 것 못지않게, 학생이 학문을 탐구할 수 있도록 어디로 초대해 주는 것이 중요하다.
미국의 80만 개 레스토랑에 유니폼을 공급하는 신타스(Cintas)는 ‘포천 500′에 등재된 기업이다. 창업자의 아들이자 CEO 리처드 파머는 과거 모교인 마이애미대학교 경영대학을 방문해 “왜 이곳에서 공부하고 있나? 우리는 경영학 전공자를 원하지 않는다. 경영은 회사에서, 그것도 월급을 받으면서 배울 수 있다. 우리는 생각하는 사람을 원한다”라며 의미 있는 농담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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