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딜 아닌 컨소시엄 방식에 불만, DJ정부 '재벌 해체'압박도
[손병두의 ‘IMF위기 파고를 넘어’] ⑦ KAI·현대로템 탄생 비화
하지만 정부의 반응은 그다지 호의적이지 않았다. 정부는 10월 5일 경제장관 간담회를 연 뒤 “5대 그룹의 구조조정 방안 발표는 구조조정을 시작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으나 그 내용은 빅딜이 아닌 컨소시엄의 일종인 공동경영 형태에 불과하다”며 과소평가했다. 언론에서도 빅딜을 기대했다가 그렇지 못한 데 대해 비판이 쏟아졌다.
나는 자율 구조조정에 임하면서 정부가 요구하는 빅딜, 즉 그룹 간 이 사업 내놓고 저 사업을 받는 사업교환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사안이라고 봤다. 인수합병(M&A) 시장이 발달 안 된 여건에서 빅딜은 기업의 평가에서부터 고용이관의 문제 등 난제가 많고 그것이 꼭 경쟁력을 높일 수 있다는 보장이 없다는 점에서였다. 서로 윈윈하면서 경쟁력을 높일 수 있는 전략이 중요하다고 보았다. 일단 컨소시엄 형태로 기업을 합친 다음 외자유치를 통해 경쟁력을 높인다는 전략을 구사했다. 항공기 분야에서 삼성항공과 현대, 대우가 단일 법인을 설립하기로 한 것이나 철도차량 분야에서 현대·대우·한진 3사가 단일법인을 세우기로 한 방안이 바로 그런 구상의 산물이었다. 나는 지금도 당시의 판단과 방향설정이 옳았다고 생각한다. 자율구조조정의 결과 단일법인으로 탄생한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이나 현대로템이 세계적 업체로 성장한 것을 볼 때마다 그 때 고생한 것이 헛되지 않았다고 자부하게 된다.
세계적 항공기·철도차량 업체로 성장
그 과정이 결코 순탄했던 것은 아니다. 당시 두 산업 모두 국내 업체 간 출혈경쟁으로 누적적자가 크고 부채비율도 높아 정부의 부채비율 200%이내 축소 정책에 부담이 되는 산업이었다. 그래서 컨소시엄 형태의 단일법인 설립방안에는 그룹 오너들 간에도 큰 이견이 없었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통합 이후의 주도권을 잡기 위한 기업 간의 신경전이 치열하게 펼쳐졌다. 통합의 당사자가 둘일 때보다 셋일 때는 의사결정변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복잡해지기 마련이다. 통합 주체 간의 신뢰 문제는 물론, 기업가치 산정 과정에서 상대 기업의 재무제표에 대한 불신 등 현실적 난관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특히 이들 업종의 회사들은 모두 금속노조 산하의 강성노조들이 설립되어 있어 통합 이후에도 1사 3노조 체제가 불가피하게 된 점, 3사 간 임금 및 복지수준과 승진체제가 다른 점도 통합 협상의 큰 걸림돌이었다. 더구나 정부측은 통합법인이 외자를 50%이상 유치해 외국 기업이 경영주체가 되게 해달라고 요청해 왔는데, 나는 강봉균 경제수석 등에게 그러면 안된다고 설득하느라 애를 먹기도 했다.
철도차량의 경우는 통합법인의 본사를 어디로 정할 것인가를 놓고 갈등이 있었다. 한진은 상주를, 대우는 군포를 선호했으며 현대는 창원으로 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이 문제는 정치적 이슈로까지 부각되었다. 상주지역 시민단체 등은 수만명의 서명 명부를 갖고 전경련에 찾아와 상주 이전을 압박하기도 했다. 결국 전경련은 객관적인 분석을 통해 창원으로 본사를 정하는데 합의를 도출하였다. 철도차량은 현대정공, 대우중공업과 한진중공업간 출자지분이 당초 4:4:2이었다. 하지만 통합진행 과정에서 대우그룹이 어려워지면서 경영권이 현대정공측으로 넘어가 오늘날 현대로템이 되었다. 항공산업은 삼성,현대,대우 3사가 1:1:1 로 지분을 갖는 독립회사 KAI가 되었다. KAI의 대우 지분은 대우그룹 정리과정에서 산업은행이 보유하게 되었다.
통합법인의 대표 선임을 두고서도 기업 간 신경전이 있었는데 최종적으로는 전경련 측이 임명해 달라고 요청해 왔다. 철도차량의 경우는 3사 대표가 서면과 구두로 이병욱 팀장을 통합법인 사장으로 추대하겠다며 내게 요청했으나 이 팀장은 사업구조조정을 끝까지 마무리하겠다며 3사의 제안을 고사하기도 하였다. 그래서 풍산금속 사장 출신 인사를 초대사장으로 추천하고 급여 조건까지 정해 주었다.
전경련은 5대그룹 자율 구조조정안을 발표한 이후 정부에 구조조정 작업이 신속히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해당 기업의 부채구조 조정과 세제 지원, 독과점 관련 문제에 대한 협조를 구체적으로 요구하였다. 이것은 정부가 당초 구조조정만 되면 발가벗고 춤이라도 추라고 하면 하겠다고 약속한 사항이기 때문이다. 또 기업 스스로 하는 자구 노력에는 부동산 등 자산 매각은 시간이 걸리고 한계가 있기 때문이기도 했다.
정부, 7개 업종 사업 조정안 평가 절하
그 뒤에도 정부의 재벌에 대한 파상공세는 멈추지 않았다. 금감위에서는 재벌 해체 계획을 들고 나왔다. 참으로 어이없는 발상이었다. 정부는 기업을 외환위기의 주범으로 보고 계속 죄인 다루듯 하려고 했다. 경제를 살리는 주체는 기업인데 기업을 그렇게 닦달해서 경제를 살릴 수 있겠는가. 그나마 우리 경제가 이만큼 발전해 온 것은 대기업이 있었기 때문이 아닌가. 세계 시장에 나가서 시장을 개척하고 달러를 벌어오고 고용을 늘리며 세금을 내온 대기업의 긍정적 측면은 무시하고 일시적으로 자금 사정이 어렵게 됐다고 해서 이렇게 범인 취급을 한다는 말인가. 그것을 해체해서 약체로 만들어서 무엇을 어떻게 하겠다는 건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우리나라에서는 대기업이라고 해도 외국의 거대기업에 비하면 중소기업 수준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나에게는 잊을 수 없는 사건이 있다. 11월 5일 저녁 정·재계간담회 때 있었던 일이다. 롯데호텔 38층 메트로폴리탄 룸이었다. 간담회가 끝난 뒤 강봉균 경제수석이 미리 준비해 온 발표문을 보여 주었다. 발표문에 “5대 그룹의 구조조정이 전반적으로 미흡하다”는 문구가 들어가 있었다. 나는 그동안 밤잠을 설쳐가며 7개 업종에 이르는 사업 구조조정을 자율적으로 이뤄 낸 데 대해 자부심을 갖고 있을 때였다. 나는 “구조조정 대상 7개 업종 중 반도체를 제외하고는 모두 잘 되고 있는데 전반적으로 미흡하다고 표현하는 것은 너무하는 것 아니냐”며 자구 수정을 놓고 팽팽히 맞섰다. 그러다 순간 울컥해 “강 수석 마음대로 하라”며 그 발표문을 강 수석 앞으로 집어 던졌다. 그때 마침 기자들이 회의실로 들어왔다. 이 장면이 TV 카메라에 찍혀 뉴스 시간에 그대로 방영되었다. 나는 강 수석한테 참으로 미안했다. 그 때는 화가 났지만 나의 행동은 예의가 아니었다. 그 다음날 사과했지만 2017년 작고한 강 수석의 마음이 풀렸는지는 모를 일이다. 이처럼 우리는 정부 및 채권단과 밀고 당기는 게임을 치러내야 했다. 이렇게 또 넘어야 할 산이 기다리고 있었다. 〈계속〉
손병두 동서투자자문 사장과 전국경제인연합회 부회장 등 경제인으로서 뿐만 아니라 서강대 총장, KBS 이사장, 호암재단 이사장 등 여러 분야에 걸쳐 다채로운 활동을 했다. 1997년 외환위기 당시 전경련 상근부회장으로서 정부와 재계의 입장을 절충하며‘빅딜’과 구조조정을 조율하는 역할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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