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의 사랑이 펴낸 첫 책, 혹은 유고작[이호재의 띠지 풀고 책 수다]

이호재 기자 2024. 1. 6. 0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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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담당 기자는 매년 12월이면 전화로 신춘문예 응모자에게 당선을 통보한다.

떨리는 목소리를 부여잡은 채 "정말요?"라고 수차례 물어보는 당선자도, "기다렸다"며 담담하게 답하는 당선자도 있었다.

'예순 살, 나는 또 깨꽃이 되어'는 수필 '실버 취준생 분투기'로 2021년 매일신문 시니어문학상 논픽션 부문에 당선된 저자의 유고 산문집이다.

물론 나이 들어 당선된 당선자들이 글을 써서 먹고살 수 있을지, 꾸준히 글을 쓸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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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울림 전해준 ‘할머니 작가’
작고 뒤에도 잊지 않은 독자들
◇예순 살, 나는 또 깨꽃이 되어/이순자 지음/256쪽·1만5000원·휴머니스트
이호재 기자
문학 담당 기자는 매년 12월이면 전화로 신춘문예 응모자에게 당선을 통보한다. 얼굴을 마주 보진 못하지만, 목소리를 들으면 대충 나이를 추측할 수 있다. 올해엔 유독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음성에 무게감이 있었다. 떨리는 목소리를 부여잡은 채 “정말요?”라고 수차례 물어보는 당선자도, “기다렸다”며 담담하게 답하는 당선자도 있었다. 하지만 모두가 오랫동안 문학의 길을 꿈꿔 왔다는 건 쉽게 깨달을 수 있었다.
‘예순 살, 나는 또 깨꽃이 되어’는 수필 ‘실버 취준생 분투기’로 2021년 매일신문 시니어문학상 논픽션 부문에 당선된 저자의 유고 산문집이다. 저자는 어린 시절 가난 탓에 친구 집에서 ‘도둑 독서’를 했던 문학소녀였다. 고등학교 졸업 후엔 생계 때문에 공장에서 일하며 ‘공순이’로 살아야 했다. 종갓집에 시집간 뒤 가족을 위해 살았고, 남편과 황혼 이혼을 한 뒤에야 본격적으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 기초생활보장 수급자일 정도로 생활고에 시달렸고, 심장병과 청각장애의 고통도 겪었지만 글 쓰는 일을 포기하지 않았다.

책엔 인간에 대한 애정이 돋보인다. 저자는 20여 년을 호스피스 암 병동에서 일한 경험을 털어놓으며 “하루하루 통증과 사투를 벌이는 환우들을 보며 내 고통은 아무것도 아님을 깨달았다. 나를 버리려던 생각은 사치였다”고 고백한다. 강원도에 작고 오래된 집을 사 이사한 뒤 아흔 살이 넘은 옆집 할머니에게 용돈을 받고선 “오래 묵은 지폐에서 할머니 냄새가 났다. 명절에 다녀간 자녀들이 준 용돈이리라”고 묘사한다.

책엔 저자의 딸이 쓴 글도 실려 있다. 저자는 2021년 7월 시니어문학상 당선 소식을 들은 지 1개월 후인 같은 해 8월 세상을 떴다고 한다. 이후 ‘실버 취준생 분투기’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화제가 됐다. 딸은 저자가 그동안 쓴 글을 펴내기를 원했을지 고민하다 출간을 결심했다. ‘실버 취준생 분투기’에 달린 수많은 응원 댓글 때문이다. 저자의 딸은 이렇게 고백한다.

“독자들은 힘든 삶에도 어머니가 지켜낸 곧은 심성과 따뜻한 시선, 특유의 위트와 희망을 읽어내 주셨습니다. 또한 어머니의 글을 통해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이웃에게 시선을 돌리며, ‘삶’과 ‘사람’에 대해 다시 한번 곱씹을 수 있었다며 진심 어린 추모를 전해 주셨습니다.”

올해 동아일보 신춘문예 당선자 평균 연령은 47.9세다. 2022년(37.4세)과 2023년(34.8세)보다 10세 이상 높다. 개인적으론 올해 당선작엔 문학에 대한 진정성이 가득 담겨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생을 겪지 못하곤 풀어내지 못할 이야기도 많았다. 물론 나이 들어 당선된 당선자들이 글을 써서 먹고살 수 있을지, 꾸준히 글을 쓸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다만 수필 ‘실버 취준생 분투기’ 저자가 쓴 글들이 독자들의 추모에 힘입어 산문집으로 출간됐듯, 독자들의 응원이 당선자들을 ‘진짜 작가’로 성장시키길 바랄 뿐이다.

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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