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 손을 잡고 반 발짝만 앞에 서서 이끌어야 합니다. 절대로 반 발짝 이상 벌어져서는 안 되고, 어떤 경우라도 국민과 잡은 손을 놓아서는 안 됩니다.”
“정치가 잘 되려면 국민이 잘나야 합니다 (중략) 국민이 현명해야 합니다. 국민이 무서워야 합니다.”
“국민이 언제나 현명한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민심은 마지막에는 가장 현명합니다. 국민은 언제나 승리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마지막 승리자는 국민입니다.”
이 모두가 김대중(1924~2009)의 말이다. 1924년 1월 6일 태어난 그는 올해로 탄생 100주년을 맞는다. 그를 일컫는 말은 많다. 대한민국 제15대 대통령, 2000년 노벨평화상 수상자, 여러 차례 죽을 위기를 겪으며 독재에 맞선 투사…. 새로 출간된 두 권의 책은 그 이상의 김대중을 떠올리게 한다. 그중 한 권의 제목을 빌리자면 ‘사상가 김대중’이다.
『김대중의 말』은 그 면모를 직접적으로 접할 수 있는 책이다. 감옥에서 쓴 편지를 비롯해 자서전, 강연·기고문, 해외 석학·언론 인터뷰 등에서 주요한 대목을 발췌해 시대순으로 실었다. 한국의 역사와 현실, 당면한 과제에 대한 인식은 물론이고 시대와 시련 속에 단련된 옹골진 생각이 생애의 흐름과 함께 드러난다.
그의 말은 설익은 개념어를 전혀 쓰지 않고도 널리 공감을 부르는 특징이 두드러진다. 예컨대 그는 “국민을 하늘같이 존경하고 국민을 범같이 무서워해야 한다”고 했다. 그가 거듭 말했던 동학의 인내천과도 통하는 동시에 민주주의 핵심이 담겼다. ‘행동하는 양심’ ‘행동하지 않는 양심은 악의 편’ ‘무엇이 되느냐’보다 중요한 ‘어떻게 사느냐’ ‘서생적(書生的) 문제 의식’과 ‘상인적(商人的) 현실 감각’의 조화 등 그의 유명한 말들의 원문이 맥락을 헤아릴 수 있게 실려 있다.
『사상가 김대중』은 김대중학술원이 탄생 100주년을 맞아 준비한 3부작의 첫 권. 국내외 연구자 6명이 각기 다른 초점에서 그의 정치사상과 철학을 조명한다. 그중 미국 센트럴미시건대 철학과 교수 호프 엘리자베스 메이가 쓴 ‘김대중, 행동하는 양심이 되다’는 기독교 신앙을 포함해 그의 사상이 형성된 과정을 생애와 함께 개괄하는 글처럼 읽히기도 한다.
이를 필두로 황태연·한상진·노명환·김귀옥·이영재 등의 학자가 각각 중도정치와 창조적 중도개혁주의를 비롯해 동서양이 융합된 민주주의 사상, 평화사상, 여성주의 정치이념을 고루 조명한다. 한상진 서울대 명예교수는 ‘제2근대 전환’이라는 개념과 함께 그 선구자로서 김대중을 조명하는데, 1997년 서울대 특강 때의 일화를 전하는 대목이 흥미롭다. 전노(전두환·노태우) 사면 반대 시위가 한창이던 당시, 한 학생의 질문에 김대중이 ‘용서’와 ‘화해’에 대한 생각을 어떻게 들려줬는지를 전한다.
저자 가운데 이영재 한양대 학술연구교수가 쓴 대로, “한국 정치사에서 사상가로 꼽을 수 있는 대통령은 드물”고 “정치 지도자가 꼭 사상가여야 하는 것은 아니”다. 한데 “시대가 사상가로서의 정치 지도자를 필요로 하기도 한다”. 김대중은 그런 정치인이자 지도자였다. 두 책이 소개하는 그의 말과 사상은 극한적 편 가르기의 언어만 난무하고, 정치인에게서 철학이 담긴 발언을 좀체 듣기 힘든 지금의 세태에서 더욱 귀하게 다가온다.
『김대중의 말』에는 이런 대목도 나온다. “정치를 하겠다고 나선 사람은 어떻게 해서든지 국회의원 배지를 달고 출세하는 정치쟁이가 될 것인지, 아니면 진리와 정의를 위해서 일생을 바치고 국민과 민족을 위해 헌신하는 정치가가 될 것인지를 먼저 결정해야 합니다 (중략) 전자가 되겠다고 마음먹고 있는 사람에게는 해 줄 말이 없습니다. 꼭 듣고 싶다면, 정치를 하지 말라는 말을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