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서해 200발 포격도발… 軍, 400발 응징

신진우 기자 2024. 1. 6. 0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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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 해상완충구역內 해안포 발사
軍, 9·19합의 이후 첫 대응사격
연평도 등 서해5도 주민 대피령
北 추가도발 예고… 총선前 가능성
K1E1 전차포, 北에 대응 사격 5일 북한이 서해 해상완충구역으로 포 사격을 실시하자 우리 군이 백령도에서 K1E1 전차포 등 포병 전력을 동원해 우리 측 해상완충구역 내로 대응 사격하고 있다. 2018년 9·19 남북군사합의 체결 후 우리 군이 해상완충구역으로 포를 쏜 건 처음이다. 국방부 제공
북한이 5일 오전 북방한계선(NLL) 북방 서해 해상완충구역으로 200발이 넘는 포를 집중적으로 퍼부었다. 우리 군은 이에 대응해 배에 달하는 400여 발의 포를 이날 오후 우리 측 서해 해상완충구역으로 쐈다. 우리 군이 해상완충구역으로 포를 쏜 건 2018년 9·19 남북군사합의 체결 후 처음이다.

남북은 앞서 9·19합의에 NLL 일대 서해 135km, 동해 80km 구간을 완충구역으로 설정하고 포 사격 등을 중지하는 내용을 담았다. 하지만 이번엔 북한이 먼저 쏘고 이에 맞서 우리 역시 완충구역으로 포 사격을 하면서 9·19합의가 사실상 전면 파기 수순에 들어선 것 아니냐는 평가가 나온다. 정부 고위 당국자는 “앞으로도 북한 도발에 ‘눈에는 눈’ 비례 대응에 나설 방침”이라고 밝혔다. 북한은 이날 저녁 “적들(남한)이 소위 대응이란 구실 밑에 도발로 될 수 있는 행동을 감행할 경우 우리 군대는 전례 없는 수준의 강력한 대응을 보여줄 것이다. 민족, 동족이라는 개념은 이미 인식에서 삭제되었다”며 우리 군의 대응을 구실로 추가 도발에 나설 수 있음을 시사했다.

이성준 합동참모본부 공보실장은 이날 오후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북한군이 오늘 오전 9∼11시경 백령도 북방 장산곶, 연평도 북방 등산곶 일대에서 200발 이상 사격을 실시했다”고 밝혔다. 북한군이 쏜 포탄은 대부분 해안포에서 발사된 가운데, 우리 국민과 군의 피해는 없었다. 다만 백령도 연평도 등 서해 5도에는 이날 낮 12시 13분경 주민 대피령이 내려졌고, 대피령은 3시간 30분이 지나서야 해제됐다.

군은 오후 3시부터 연평도 해병대의 K-9 자주포 등을 동원해 40여 분 동안 우리 해상완충구역으로 포 사격을 실시했다. 앞서 북한은 2022년 10∼12월 14차례에 걸쳐 북측 동·서해 해상완충구역으로 방사포 및 해안포, 미사일 등을 대규모로 발사한 바 있다. 당시 우리 군은 군사합의 위반 관련 대북통지문을 발송하거나 대북 경고 입장을 발표하는 방식 등으로 대응했다. 같은 해 11월 북한이 쏜 미사일 1발이 동해 NLL을 넘었을 땐 우리 군이 전투기를 띄워 공대지미사일 등 3발을 북측 공해상에 발사했지만, 해상완충구역으로 우리가 사격을 실시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군 당국은 북한이 추가 도발에 나설 것으로 보고 있다. ‘새별-4형’ 등 지난해 공개한 신형 무인기를 4월 총선 전 남측으로 침투시킬 가능성이 크다. 비무장지대(DMZ) 내 감시초소(GP)들을 콘크리트까지 이용해 최근 완전 복원에 나선 북한이 그 일대에서 국지 도발을 감행할 가능성도 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지난해 말 “북남(남북) 관계는 더 이상 동족·동질 관계가 아닌 적대적인 두 국가 관계, 전쟁 중에 있는 두 교전국 관계로 완전히 고착됐다”고 주장했다.

北 “교전국” 위협 6일만에 서해 포격… 軍, K-9 등 2배로 갚아줘

北 도발에 한반도 긴장 고조
김정은 지난달 “무력충돌 생길수도”… 어제 아침 9시부터 2시간 사격
해상완충구역 실사격은 13개월 만… 軍, 대북감시-화력대기태세 격상

우리 군이 5일 백령도에서 K-9 자주포로 해상사격훈련을 하는 모습. 국방부 제공
5일 새벽 우리 군은 황해도 일대 북한군의 이상 움직임을 포착했다. 백령도 북쪽의 황해도 장산곶과 연평도 북쪽의 등산곶 해안포 진지로 북한군이 이동 중인 모습이 한미 연합 정보자산에 포착된 것. 북한은 9·19 남북 군사합의 전면 파기 선언을 한 지난해 11월 23일 이후 이 지역 긴장을 고조시켜 왔다. 해안포 포구 개방 횟수를 평균 한 자릿수에서 두 자릿수로 늘리고, 해안포 문수도 대거 늘린 것. 이런 가운데 이날 이 지역에 배치한 병력까지 대폭 늘리면서 긴장 수위를 더욱 끌어올린 것이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북한군 통신 감청과 감시를 통해 해안포 일제 사격이 임박했음을 사전에 인지하고 예의 주시하고 있었다”고 했다.

● 우리 군, 9·19합의 후 첫 해상완충구역 포사격 맞대응

결국 이날 오전 9시, 북한군은 장산곶·등산곶에 배치한 122mm 해안포 등을 동원해 오전 11시까지 집중 사격을 실시했다. 200발 넘는 포탄이 2018년 남북이 서명한 9·19합의에 명시된 북측 해상완충구역으로 향했다. 9·19합의엔 서해를 기준으로 남측 덕적도 이북부터 북측 초도 이남까지 수역을 상대방에 대한 일체의 적대 행위를 중지하는 해상완충구역이라고 명시돼 있다. 이 구역에서 포사격 훈련을 하거나 포문을 개방하는 건 합의를 정면 위반하는 행위다.

북한이 동·서해에 설정한 해상완충구역으로 포를 쏜 건 2022년 12월 6일 동해상 완충구역 내로 방사포 100여 발을 발사한 이후 처음이다. 그간 포문을 개방하는 방식으로 위협해 온 북한이 1년 1개월 만에 완충구역 내 실사격으로 위협 수위를 대폭 끌어올린 것. 국방부 관계자는 “9·19합의 이후 북한이 해상완충구역 내에 사격을 한 건 2022년 말까지 미사일 발사 등을 포함해 15회에 달했다”며 “약 1년 동안 잠잠하던 북한이 이날 16회째 도발을 감행한 것”이라고 했다.

북한이 상습적으로 9·19합의를 위반해 온 것과 달리 우리 군은 합의를 준수하느라 연평도 등에 배치한 K-9 자주포 등 포병 전력을 동원한 해상 실사격 훈련을 5년 넘게 하지 못했다. 대신 이들 전력을 경북 포항 등으로 이동시켜 훈련해 왔다.

그러나 북한이 이날 노골적으로 합의 무력화에 나서자 우리 군은 이번엔 ‘강 대 강’ 맞대응에 나섰다. 북한의 사격이 시작된 즉시 군 당국은 신원식 국방부 장관 주재로 주요 작전지휘관 회의를 열고 대응 방식과 작전 개시 시간 등을 논의했다. 이어 오후 3시, 해병대는 연평도·백령도에서 K-9 자주포, K1E1 전차포 등 포병 전력을 동원해 우리 측 해상완충구역 내로 일제히 사격을 시작했다. 서북도서방위사령부 예하 해병대 6여단과 연평부대는 NLL 남방 해상지역에 가상 표적을 설정하고 집중 사격을 실시했다. 이날 북한은 2시간에 걸쳐 200여 발을 발사했는데 우리는 2배에 달하는 400여 발을 약 40분에 걸쳐 발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우리 군이 해상완충구역 내 포사격을 실시한 건 9·19합의 서명 이후 처음이다. 2022년 11월 북한이 지대공미사일 1발을 휴전 이후 최초로 NLL 이남으로 쏘는 등 미사일과 방사포를 무더기로 발사했을 때도 우리 군은 전투기를 띄워 미사일 및 정밀유도폭탄 발사로 강경 대응에 나섰다. 다만 당시 우리 군은 이를 북측 공해를 향해 발사했을 뿐 남북 해상완충구역 내에는 탄착시키지 않는 식으로 9·19합의는 철저히 지켰다.

● 대응사격 앞서 대북 감시태세·화력대기태세 격상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지난해 12월 30일 남북 관계를 ‘전쟁 중인 교전국 관계’로 규정한 데 이어 하루 뒤 “적들의 무모한 도발 책동으로 무력 충돌이 생길 수 있다”고 위협했다. 그런 북한이 이날 해상완충구역으로 다시 포사격에 나서자 우리 군은 이제 일방적인 9·19합의 준수가 의미 없다는 판단을 내린 것으로 전해졌다. 군 당국은 이날 대응 사격에 앞서 대북감시태세·화력대기태세를 격상했다. 서해 NLL 일대에서 활동하는 해군 함정들을 대상으론 포구 덮개를 제거하고 비상 상황에 대비할 것까지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합참은 대응 사격 전 “위기 고조 상황의 책임은 전적으로 북한에 있음을 엄중 경고한다”고 밝혔다.

국방부는 대응 사격이 끝난 뒤 보도자료를 내고 “신 장관이 합참 전투통제실에서 우리 군의 해상사격 훈련을 실시간으로 확인하고 점검했다”고 했다. 신 장관은 “북한의 무모한 도발 행위에 대해 우리 군은 ‘즉·강·끝’(즉시 강력하게 끝까지) 원칙에 따라 적이 다시는 도발할 엄두를 내지 못하도록 완전히 초토화하겠다는 응징 태세를 갖춰야 한다”고 말했다.

신진우 기자 niceshin@donga.com
손효주 기자 hjson@donga.com
신규진 기자 newj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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