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엔튜닝] 이게 말로만 듣던 장비병인가
[도도서가 = 북에디터 정선영] “저는 다른 데 있다 출판사 처음 와서 좀 놀랐던 게, 다들 여행을 자주 다니더라고요. 그래서 돈 많이 버는 줄 알았어요. 그런데 아니더라고요. 호호호.”
오래전에 다니던 출판사에서 어떤 분이 이런 말을 한 적 있다. 요즘이야 엔화 환율도 많이 떨어졌고 해외여행이 대단히 큰마음을 먹어야 하는 일도 아니지만, 당시만 해도 휴가만 생기면 비행기를 타는 게 흔치 않던 시절이니. 더군다나 출판계 연봉 수준은 예나 지금이나 참 박하다.
타 직종 사람들에게 출판계 사람들의 생활 방식은 낯설 수 있다는 생각을 종종 해본다.
우선 나와 내 주위를 둘러보자. 가장 즐겨 드는 가방은 에코백. 이것은 출판사에서 도서 사은품으로 가장 많이 만드는 아이템이기도 하다.
그렇다 보니 출판인에게 책만큼은 아니어도 가진 에코백이 꽤 된다. 게다가 사은품으로 받은 게 다가 아니다. 여행 갔을 때 유명 서점이나 갤러리에서 사오기도 한다. 가방을 살 때 최우선적으로 교정지, 그러니까 A4 용지 150~200매가 들어가느냐를 고려한다.
옷이나 신발 등에도 큰 관심이 없다. 아니 애초에 책 말고는 뭘 사는 데 크게 관심이 없다고 해야겠다.
책 구매는 주제나 내용이 좋아서인 경우도 있지만, 금방 절판될 것 같아서(앞으로 못 구하게 될 수도 있으니), 또는 표지가 예뻐서, 판형이나 제본 방식이 특이해서, 후가공이 독특해서 등등 그 이유도 다양하다.
내가 아는 한, 출판계 사람들이 책 외에 돈을 쓰는 데는 따로 있다. 여행과 취미. 뭘 배우고 보고 경험하는 데 주로 돈을 쓴다. 출판계 연봉 수준이 낮음에도 이런 쪽에 돈은 쓰는 데 인색한 경우는 잘 보지 못했다.
먹고살기 팍팍할수록 문화나 여가 생활에 쓰는 돈을 줄이는 사람이 많은데, 출판인들은 그런 경우가 잘 없으니 신기하긴 하다. 사실 출판이라는 산업에 종사하면서 문화나 여가 생활에 쓰는 돈을 제일 먼저 줄인다는 것도 말이 좀 안 되는 거 같기도 하다.
요즘 나는 새로 사고 싶은 게 생겼다. 역시 취미와 관련이 있다. 바로 기타이다. 기타를 배운 지 1년이 넘었으니, 나도 장비병이 생긴 건가. 물론 나의 기타 ‘찰리’에 대한 애정이 식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유튜브 등에서 여러 기타리스트의 현란한 연주를 보다 보면 자꾸 예쁜 기타가 눈에 들어온다.
‘저 기타 뭐지? 저 색깔 예쁜데?’ 소리의 차이 같은 것은 잘 모른다. 지독히도 늘지 않는 내 실력만큼이나 내 귀도 크게 발전하지 않았다.
이런 내 생각에 기타 선생님이 뭐라 할지 뻔하다. “기타를 잘 치게 되면 그때 새 기타 마련하세요.”
아니 선생님, 생각은 할 수 있는 거 아닙니까. 그런데도 자꾸만 예쁜 기타를 가지면 연주를 좀 더 잘하게 될 거 같은 느낌적인 느낌이 드는 건 왜일까.
새해가 밝았다. 그래 연습이나 하자. 올해도 사십대 북에디터의 기타 분투기, 마흔엔튜닝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정선영 북에디터. 마흔이 넘은 어느 날 취미로 기타를 시작했다. 환갑에 버스킹을 하는 게 목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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