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볼만한 전시: 파레노의 물고기, 김창열의 물방울에 홀리고
또한 서울시립미술관의 에드워드 호퍼 전이 33만 명의 관람객을 끌어모았고 서울 리움미술관의 마우리치오 카텔란 전이 개관 이후 최다 관람객인 25만 명을 불러들이는 등 여러 전시가 흥행 돌풍을 일으켰다. 특히 리움 계열인 용인 호암미술관의 김환기 전은 상대적으로 접근성이 떨어지는 위치에 카텔란 전과 달리 유료였음에도 15만 명의 관람객을 모았다. 서울 성곡미술관의 원계홍 전처럼 입소문을 타고 뜻밖에 큰 화제가 된 전시도 있었다.
5월엔 뭉크, 9월엔 오지호 회고전
또한 5월에 서울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시작하는 노르웨이 거장 에드바르 뭉크(1863~1944)의 전시가 있다. 뭉크의 ‘절규(비명)’는 미술 문외한조차 잘 알지만 그의 다른 작품은 모르는 이들이 많은 것에 착안해, 그의 덜 알려진 면모를 집중적으로 소개하는 전시다. 9월에는 광양시 전남도립미술관에서 오지호(1905~1982)의 대규모 기획전이 시작한다. 미술관은 오지호가 “전남 화순 출신으로 한국 근현대 미술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며 그의 주요 작품을 선보일 것이라고 밝혔다.
세계적으로 영향력 있는 한국인 혹은 한국계 작가들의 개인전도 준비되어 있다. 8월에는 아트선재센터에서 서도호의 개인전이 열린다. 그는 건축물, 특히 그가 살아온 집들을 반투명한 천으로 재현해서 건축물의 혼령이나 건축물에 대한 아련한 기억 같은 느낌을 주는 설치미술로 세계적 명성을 얻어 왔다. 작가는 “예전부터 나의 작업은 시간과 공간, 그 연속성과 불연속성에 대한 것인데, 돌이켜 보면 그것이 다시 기억과 관련된 것이다”라고 말한 바 있다.
또한 9월에는 리움미술관에서 한국계 미국 작가 아니카 이의 아시아 첫 미술관 전시가 열린다. 작가는 바이러스와 박테리아·포자 같은 미생물을 작품 재료로 활용하는데, 이들은 공중을 떠 다니며 경계를 넘나드는 존재들이기 때문이다.
한편 올해는 국공립 미술관에서 건축 관련 전시가 많이 열리는 해이기도 하다. 서울시립미술관은 아예 2024년 전시 의제를 ‘건축’으로 설정했다. 먼저 4월부터 7월까지 서소문 본관에서 노먼 포스터 개인전이 열린다. 1999년 ‘건축계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프리츠커상을 수상한 영국 건축가로서 UFO를 연상시키는 거대 고리 모양 애플 사(社) 신사옥(미국 캘리포니아) 등 하이테크 건축으로 유명하다. 또한 평창동의 서울시립 미술아카이브에서는 5월부터 8월까지 강홍구 작가의 불광동 사진 작업 컬렉션과 은평 뉴타운 사진 작업 컬렉션을 아카이브 차원에서 조망하는 전시 ‘도시-서울-나누기’가 개최된다.
요즘 핫이슈 생성형 AI 관련 전시도
또한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은 7월부터 12일까지 ‘퍼포밍 홈: 대안적 삶을 위한 집’ 전시를 개최하는데, 2000년 이후부터 최근까지 한국의 주거 건축을 통해 삶의 다양한 공간과 환경을 살펴보는 기획전시다. 조병수·승효상·최욱·서재원 등 건축가 20여 명의 작품이 소개된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 최대 사회적 화두인 생성형 인공지능(AI)에 관한 전시도 준비되어 있다. 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은 네덜란드 반아베미술관과 연계해 4월부터 8월까지 ‘영혼은 없고 껍데기만’ 전시를 개최한다. 이 전시는 미술가 필립 파레노와 피에르 위그가 1999년에 일본 애니메이션 업체에서 구입한 가상세계 소녀 캐릭터 ‘앤리(Annlee)’를 중심으로 한다. 2000년대 초에 18명의 아티스트가 이 캐릭터를 이용해 가상 존재의 미래적 모습을 예견하는 작품을 제작하는 프로젝트가 있었다. 이것을 생성형 AI가 대중화된 현재에 되돌아보는 전시다. 또한 국립현대미술관 청주관에서는 비슷한 기간에 ‘인공지능’ 전시가 열리는데 미술관에 따르면 “인공지능을 둘러싼 사회적, 문화적 문제를 조망하고 기술과 인간의 공생 가능성을 모색하는 전시”다.
올해 전시의 또 하나 화두는 여성이다. 호암미술관이 3월부터 시작하는 ‘여성과 불교’전은 “동아시아 불교미술을 젠더의 관점에서 동시대적으로 새롭게 조명하는 세계 최초의 대규모 전시”라 흥미를 불러일으킨다. 뉴욕 메트로폴리탄 뮤지엄 등 해외 미술관이 소장한 불교미술의 명품들이 한자리에 모인다.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에서 5월부터 8월까지 열리는 ‘한국 근현대 자수’ 또한 ‘여성’이라는 화두에서 볼 수 있다. 자수가 주로 여성의 영역이었기에 그동안 한국 미술사에서 소외되어 있었음을 인지하고 근대 자수의 역사를 되돌아보는 전시이기 때문이다. 김인숙·나사균·박을복·송정인·이신자·장선희·조정호·한상수 등 40여 명의 작품을 선보인다. 한편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은 9월부터 2025년 2월까지 ‘아시아 여성 작가’ 전시를 열어 1960년대부터 현재까지의 아시아 여성 예술을 신체의 관점에서 조망한다. 아키 사사모토, 파시타 아바드, 홍이현숙 등 30여 명의 작가들이 참가한다.
이렇듯 올해 전시는 고전적인 블록버스터 전시보다 동시대미술 스타들의 개인전과 건축, 인공지능, 여성 등의 화두를 지닌 기획전들이 주도할 것으로 보인다.
문소영 기자 symo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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