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룡 백자’‘금강산도’ 보며 좋은 기운도 받고

서정민 2024. 1. 6.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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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이건희 회장이 기증한 이방운의 ‘금강산도’. [사진 국립중앙박물관]
해마다 이맘때면 저마다 새로운 기운을 얻기 위해 찾는 장소가 있을 것이다. 일출을 보러 동해바다로 달려가는 것도 좋지만, 수천 년을 거슬러온 시간과 보물이 가득한 박물관도 마음을 차분히 하고 상서로운 기운을 얻기에 더없이 좋은 장소다. 마침 두 곳의 국립박물관에서 흥미로운 전시가 시작됐다.

국립중앙박물관에선 갑진년 청룡의 해를 맞아 ‘용을 찾아라’ 이벤트를 시작했다. 1층~3층 상설전시관에서 용과 관련된 전시품 15건을 찾는 내용이다.

용, 초현실적 존재로 막강한 힘 상징

십이지신 중 유일하게 상상의 동물인 용은 낙타의 머리, 사슴의 뿔, 토끼의 눈, 소의 귀, 뱀의 목, 개구리의 배, 잉어의 비늘, 매의 발톱, 호랑이의 발을 가졌다. 초현실적 존재인 용은 막강한 힘을 상징하는데, 특히 청룡은 동쪽을 지키는 수호자로 백호·주작·현무를 비롯한 사신(四神) 중에서도 가장 강력한 힘을 지녔다고 전해진다. 때문에 삼국시대 무덤 벽화부터 절터의 벽돌, 그림, 왕실용 항아리, 대한제국 황제의 도장까지 다양한 미술품에 등장했다. 재료도 용도도 쓰는 이도 달랐던 만큼, 각 작품에서 표현된 용은 그 분위기도 각기 다르다.

‘백자 청화 구름·무늬 항아리’. [사진 국립중앙박물관]
2층 서화관에선 가로·세로 2m가 넘는 대형 용 그림을 만날 수 있는데 넘실거리는 푸른 바다 위에서 꿈틀대는 용은 당장이라도 뛰쳐나와 모든 액운을 잡아먹을 듯 생동감이 넘친다. 왕실 항아리 ‘백자 청화 구름·용무늬 항아리’에서 보이는 위풍당당한 오조룡의 모습은 ‘백자 철화 구름·용무늬 항아리’에서 얼굴과 다리는 과감히 생략된 채 굵은 선으로만 간략하게 표현된 용과는 묘한 대비를 이룬다.

전시품의 위치와 목록은 홈페이지 또는 전시장 키오스크에서 QR 리플렛을 다운받으면 확인할 수 있다. 각 전시품 옆 QR 코드로 보이지 않는 뒷면, 비교 작품 및 CT사진 등도 볼 수 있다.

국립중앙박물관 기획전시실에선 4월 14일까지 ‘스투파의 숲, 신비로운 인도이야기’ 특별전이 열린다. 미국 메트로폴리탄박물관에서 지난해 7월부터 11월까지 개최됐던 ‘Tree & Serpent: Early Buddhist Art in India’ 한국전으로, 기원전 2세기부터 기원후 4세기까지 남인도 고유의 문화와 불교가 만나 조화를 이루며 만들어낸 남인도 미술 세계를 소개한다.

‘스투파(stupa)’란 불교에서 부처 또는 훌륭한 스님의 사리를 안치하는 ‘탑(塔)’을 뜻하는 인도의 옛말이다. 남인도에 불교가 전해진 것은 기원전 3세기 중엽으로 마우리아 왕조의 아소카왕은 인도 전역에 석가모니의 사리를 보내 스투파를 세우고 안치하게 했다. 2000년이 흐른 지금 스투파는 모두 허물어지고, 거대한 조각 장식들만 남았다. 이번 전시품은 그 조각들로 총 97점을 만나볼 수 있다. ‘조각’이라고는 하지만 실제로 보면 그 규모에 놀라게 되고, 자연스레 스투파의 웅장한 서사에 호기심이 생긴다.

조선 선비들, 금강산·관동팔경 동경

이국적인 외모의 사람들과 자연풍경을 감상하는 것도 매력적이지만, 이 전시를 권하는 진짜 이유는 고대 남인도인들이 참조한 풍부한 상징들과의 만남 때문이다. 둥근 항아리와 아름다운 곡선을 그리며 뻗어나가는 넝쿨 식물은 풍요의 상징이다. 항아리에서 연꽃 줄기가 쏟아지듯 입에서 연꽃 줄기를 내뿜는 자연의 정령은 볼록한 배와 태평스러운 자세 때문에 보자마자 걱정과 시름이 덜어지는 느낌이다.

스투파를 지키는 상상의 동물 ‘마카라’. [사진 국립중앙박물관]
우리의 용이나 봉황처럼 스투파를 지키는 전설의 동물 ‘마카라’도 흥미롭다. 물속에 사는 마카라는 악어의 주둥이, 코끼리의 코, 물고기 지느러미 모양의 귀, 달팽이처럼 말린 꼬리를 갖고 있고 몸통은 비늘로 덮여 있다. 스투파 입구를 지키는 존재로서 강력한 힘을 상징하지만, 한편으로는 귀엽고 익살스럽다. 더불어 석가모니가 깨달음을 얻었던 보리수와 빈 대좌, 가르침을 뜻하는 수레바퀴(법륜), 법륜이 새겨져 있어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석가모니의 발자국 등 불교의 상징들도 감상할 수 있다. 전시공간은 스투파들로 둘러싸인 숲을 여행하듯 초록색으로 꾸며져 있고, 물방울 소리 등 마음이 편안해지는 오디오도 분위기를 보탰다. 스투파의 숲을 걸으면서 신과 자연, 정령과 인간이 함께하는 생명력과 기운을 받아보시길.

국립춘천박물관은 본관 상설전시실 2층에 위치한 브랜드 존 ‘이상향으로의 초대, 금강산과 관동팔경’을 리뉴얼하면서 고 이건희 회장이 기증한 수집품 9점을 새롭게 전시했다. 이방운(1761~1815년 이후)의 ‘금강산도(金剛山圖)’, 정선(1676~1759)이 그렸다고 전해지는 ‘단발령망금강산(斷髮嶺望金剛山)’, 허필(1709~1761)의 ‘총석도(叢石圖)’, 심사정(1707~1769)의 ‘삼일포(三日浦)’는 18세기 명작으로 꼽힌다.

생동감 넘치는 그림 ‘운룡’. [사진 국립중앙박물관]
전시 1부 ‘성스러운 곳, 금강산과 관동팔경’에선 조선 선비들의 ‘와유(臥遊)’ 문화를 감상할 수 있다. 금강산과 관동팔경을 동경했던 조선 선비들은 신묘한 풍경을 직접 유람한 후 문학과 예술로 찬미하고 기록했다. 미처 갈 수 없었던 선비들은 그 기록과 그림을 방 안에 걸고 누워 산수 사이를 노니는 상상을 했다고 한다. 2부 ‘새로운 시대의 이상향, 금강산과 관동팔경’에선 조선후기 이후부터 지금까지 변혁의 시기를 짚었다. 사대부들의 전유물이었던 금강산 유람은 19세기가 되면서 대중화됐고 이때 민화 금강산도와 민화 관동팔경도가 다수 제작됐으며 그릇이나 접시에 옮겨지기도 했다. 아예 갈 수조차 없게 된 지금, 우리의 기억 속 금강산과 관동팔경은 어떤 모습일까. 전시장 입구는 영상 ‘금강, 닿다. 바다를 이루다’로 채웠다. 금강산에 자리잡은 수많은 폭포들에서 떨어진 힘찬 물줄기가 동해 바다 큰 파도로 이어지고 있음을 형상화한 것이다.

이밖에도 춘천박물관에는 2019년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많은 관람객을 모았던 ‘영월 창령사 터 오백나한’ 상설전시장이 있다. 2001년 처음 세상의 빛을 보게 된 창령사 터 오백 나한 전시는 2018년 국립춘천박물관이 특별전으로 처음 기획한 것이다. 불교에서 깨달음을 얻은 사람들을 뜻하는 아라한(나한)을 조각한 나한상들은 소박하고 귀여운 표정으로 보는 이들을 편안하게 어루만진다. 이들 사이를 천천히 걸으며 사유의 시간을 가져보시길.

서정민 기자 meantr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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