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이진영]약국에 감기약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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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들은 감기를 달고 산다.
성인은 여러 감기 바이러스에 노출되다 보니 면역력이 생겨 연간 1∼3회 감기에 걸리고 마는데 미취학 아동들은 6∼10번, 많게는 매달 감기에 걸린다.
감기와 독감이 유행하는 겨울이면 부모들은 콧물 훌쩍이고 열 나는 아이 데리고 병원 문 열기 전부터 긴 줄을 서는 '소아과 오픈런'을 한다.
요즘은 약을 구하러 '약국 뺑뺑이'까지 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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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사들이 이용하는 의약품 도매 사이트의 품절약 1위부터 20위까지가 어린이용 시럽과 타미플루 같은 감기약들이다. 의사 처방전을 들고 가도 찾는 약이 없어 약사가 의사와 통화해 다른 약을 지어주거나, 근처 약국에서 구해다 주거나, “다른 약국 가보라”며 빈손으로 돌려보낸다. 애가 타는 엄마들은 맘카페에서 “기침약 시럽 있나요” “○○동인데 해열제 파는 약국 있을까요”라며 정보 품앗이를 하고, 남는 약을 나눠 받거나 사기도 한다.
▷약국에 감기약이 없는 건 수요가 폭증한 탓이 크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 첫 겨울을 맞아 그동안 마스크 덕에 안 걸렸던 감기와 독감에 몰아 걸리는 사람들이 급증했다. 최근 5년 새 가장 많은 독감 환자가 발생했고 독감 주의보도 1년 4개월째 이어지고 있다. 외래환자 1000명당 독감 의심환자 수가 6.5명이면 유행 단계인데 지난달엔 61명까지 갔다. 여기에 어린이를 중심으로 호흡기세포융합바이러스 감염병과 마이코플라스마 폐렴까지 돌고 있다.
▷다른 나라도 정도는 덜하지만 사정이 비슷하다. 감기약을 포함한 의약품 수요는 급증한 반면 코로나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글로벌 공급망 위기로 원료 물질 공급이 지연되고 의약품 무역에 차질이 빚어지고 있다. 한국은 완제 의약품의 31%, 원료 의약품은 88%를 수입에 의존하고 있어 글로벌 공급망 위기에 더욱 취약하다. 특히 어린이 감기용 복제약은 마진율이 낮은 데다 출산율 저하로 국내 제조사가 몇 안 남아 있다. 생산에 차질이 생기면 바로 품귀 사태가 벌어지는 구조다.
▷감기약 대란은 2022년 치명률이 낮은 오미크론 대유행 당시로 거슬러 올라간다. 정부는 의료체계 부담을 줄이려고 재택 치료로 전면 전환했는데 오미크론 환자들이 대거 감기약을 처방받으면서 일시 품절→ 가수요→ 품절의 악순환이 이어졌다. 대한아동병원협회는 지난해 6월 정부가 소아 필수약 품절을 방관하고 있다며 대책을 촉구하기도 했다. 정부는 약가를 찔끔 인상하고 생산을 독려하는 소극적 대처로 일관하다 어제 의약품 사재기를 집중 단속한다고 발표했다. 3년째 반복되는 감기약 수급 불안이 사재기 탓이겠나. 근본적인 공급 안정화 대책이 나와야 흔한 감기약 하나 사려고 약국 뺑뺑이를 도는 현상이 사라진다.
이진영 논설위원 eco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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