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가만난세상] 임산부 배려석, 진짜 ‘배려’ 맞나요

남정훈 2024. 1. 5. 2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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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퇴근하며 지하철을 탈 때 임산부 배려석이 유독 눈에 들어온 지가 꽤 됐다.

집들이에 다녀온 아내에게 "임산부 배려석 앉아봤어?"라고 물었더니 "아니. 주말이라 지하철에 사람이 너무 많아서 임산부 배려석까지 사람들을 비집고 가기도 쉽지 않았어. 가방에 배지를 달고 있어도 본체만체하고 양보하지 않더라고. 같이 간 친구들이 오히려 씩씩대면서 '우리가 가서 대신 자리 양보받아줄게'라고 하는 걸 말리느라 혼났어. 임신했다고 유세 떠는 것 같잖아"라는 답이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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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퇴근하며 지하철을 탈 때 임산부 배려석이 유독 눈에 들어온 지가 꽤 됐다. 예전엔 ‘내가 앉지만 않으면 되는 자리’라며 별다른 생각이 없던 좌석이었다. 어느덧 임신 25주차에 접어든 아내를 둔 ‘임산부 보호자’가 되면서 이제는 그 자리에 누가 앉아 있는지, 비어 있는지를 유심히 보게 된다.

사람이 그득한 만원 지하철에서도 임산부 배려석이 비어 있는 경우도 볼 수 있었다. 하지만 누가 봐도 임산부가 아닐 것 같은, 예를 들어 가임기가 훨씬 지난 것 같은 노장년층의 여성들이나 하이힐이나 짧은 치마 등 상식적으로 임산부가 입을 것으로 보기 어려운 복장을 한 여성들이 앉아 있는 것을 본 적도 있다. 남성이 앉아 있는 것도 간혹 본 적 있지만, 그 비율은 여성이 압도적이었다. 임신 초기엔 육안으로는 임산부 구분이 쉽지 않다는 것을 이제 잘 알게 됐다. ‘임산부도 아닌데 왜 앉아 있지’라고 생각했던 몇몇 여성분 중에는 임신 초기의 임산부인데 섣부른 오해를 한 것일 수도 있다. 그래도 어느새부턴가 임산부 배려석이 ‘여성 전용 좌석’처럼 된 것 같은 느낌을 지우기는 힘들다.
남정훈 문화체육부 기자
별다른 티가 나지 않던 임신 초기만 해도 임산부 배려석에 앉는 것이 왠지 창피하기도 하고 꺼린다던 아내는 최근 이사한 친구의 집들이에 다녀온다며 임산부 배지를 챙겨 나갔다. 배도 꽤 나와서 임산부의 모습이 완연한 데다 이제는 자리에 앉지 않고는 불편할 정도가 됐기 때문이었다.

집들이에 다녀온 아내에게 “임산부 배려석 앉아봤어?”라고 물었더니 “아니. 주말이라 지하철에 사람이 너무 많아서 임산부 배려석까지 사람들을 비집고 가기도 쉽지 않았어. 가방에 배지를 달고 있어도 본체만체하고 양보하지 않더라고. 같이 간 친구들이 오히려 씩씩대면서 ‘우리가 가서 대신 자리 양보받아줄게’라고 하는 걸 말리느라 혼났어. 임신했다고 유세 떠는 것 같잖아”라는 답이 돌아왔다.

임산부여도 임산부 배려석 이용이 쉽지 않다는 걸 아내만 느낀 것은 아니었나 보다. 최근 인구보건복지협회가 임산부와 일반인 각각 1000명씩을 대상으로 진행한 ‘2023년 임산부 배려 인식 및 실천 수준 조사 결과’에서 임산부의 86.8%가 임산부 배려석을 이용해본 적 있다고 응답했지만, 그중 42.2%는 ‘이용이 쉽지 않았다’고 답했다.

일각에서는 말 그대로 임산부 ‘강제석’, ‘의무석’이 아닌 ‘배려석’이니 임산부가 있을 때 양보하면 되는 것이지, 무조건 비워둬야 하는 것은 아니라고 주장하곤 한다. 한 남초 커뮤니티에서는 “여성들만 앉는 것 같아 일부러 임산부 배려석에 앉아봤다”라는 후기 게시글도 있었다. 출산율이 이렇게 떨어진 상황에서 임산부 배려석의 비율이 지나치게 높다는 의견도 나온다.

임산부 배려석으로 젠더 갈등을 부추기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다. 다만 내성적인 성격 혹은 배려를 ‘강요’하는 것 같아 임산부 배지를 들고 다니거나 양보해달라고 하기 쉽지 않은 임산부들도 꽤 많다. 그러니 배려라는 단어의 사전적 의미에 천착해 ‘상황에 따라 누구나 앉았다가 임산부가 있으면 양보하면 된다’는 인식보다는 언제 탈지 모르는, 혹시 이미 탔음에도 서서 가고 있는 임산부를 위해 무조건 비워두는 게 진짜 ‘배려’가 아닐까.

남정훈 문화체육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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