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경란의얇은소설] 우린 모두 이 보물을 갖고 있다
오늘을 제대로 살아가기 위한 보물
‘크리스티나 페리로시, ‘상실의 기술’(‘금지된 정열’에 수록, 정승희 옮김, 문학동네)
기분이 좋아진 그는 거리에서 우연히 만난 옛 직장 동료와 술 한잔을 나눈다. 뭔가를 가져봤다는 느낌이 어색하고 흥분돼 그는 동료에게 “나는 보물이 있어”라고 털어놓는다. 복권이라도 당첨되었나? 아니면 엄청나게 귀한 우표 같은 거라도 생겼나? 의심하다가 동료는 일축한다. 그럴 리 없다고, 보물을 가진 사람이 직장을 잃을 리가 없다고. 그는 자신이 가진 비밀스러운 것에 내심 만족감을 느끼며 동료에게 양해를 구하듯 그 보물이 무엇인지는 비밀이라고 말했다. 주의 깊게 그를 바라보던 동료가 그에게 이런 소릴 했다. “그들이 너한테서 그걸 뺏어 갈 거야.” 동료는 확신했다. 우리 같은 사람들은 뭔가를 가져도 빼앗기기 마련이라 지금 당신이 보물을 갖고 있다손 치더라도 그것 역시 그들이 빼앗아갈 거라고. 그러니 그게 뭐든 잘 간수하는 게 좋을 거라고.
그는 어쩐지 자신에게 마지막으로 남은 것 같은 그 소중한 비밀을 갖고 집으로 돌아왔다. 아내에게도 오늘 자신이 발견한 양도할 수 없는 귀중한 보물에 대해 말하자 아내는 그럼 온수기부터 고치자고 제안했다. 그건 그런 데 쓰는 게 아니라고 그는 힘없이 고개를 젓곤 생각에 잠겼다. 당장 필요한 데 쓸 수 없다면 그것은 무슨 소용이 있을까. 동료의 말대로 그들이 나에게서 이걸 빼앗아갈 때만 소용이 있는 건 아닐까! 오후 내내 만족감을 주었던 그 보물이 자신에게서 서서히 빠져나가는 것을 그는 눈치채지 못했다. 그는 생활을 꾸리느라, 가정을 지키느라 빼앗기고 잃어버리는 데 너무 익숙해진, “비밀이라곤 갖지 못한 자”였으니까.
라틴 아메리카의 대표적인 작가 크리스티나 페리로시는 자본주의 체제에서 억압과 기만이 만연한 현실을 살아가는 소외되고 침묵이 내면화된 사람들의 꿈을 그려내는 데 탁월한 작가다. 이 단편이 수록된 소설집 제목 ‘금지된 정열’에서의 정열은 자기 찾기, 혹은 그것에 대해 말하기로 보인다. 누구나 할 수 있으나 그것을 금지하는 사회에서 나 자신으로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까.
그렇다, 퀴즈의 정답은 ‘자기 정체성’. 모든 사람에게 있지만 간혹 잃어버릴 수도 있으므로 주의해서 돌봐야 하는 것. 생각하는 나, 결심하는 나, 스스로 행동하는 나로 만들어줄 수 있는 비밀의 보물. 새해가 시작되면서 올해 더 지키고 싶은 것들에 대해 떠올려 보았다. 첫 번째가 자기 정체성. 이것 없이는 삶에 그저 끌려다니기만 할지 몰라서. 그리고 이것마저 잃어버릴 수는 없다. 오늘을 제대로 살아내고 싶은 평범한 한 사람으로서.
조경란 소설가
Copyright © 세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한국처럼 결혼·출산 NO”…트럼프 당선 이후 미국서 주목받는 ‘4B 운동’
- “그만하십시오, 딸과 3살 차이밖에 안납니다”…공군서 또 성폭력 의혹
- “효림아, 집 줄테니까 힘들면 이혼해”…김수미 며느리 사랑 ‘먹먹’
- “내 성별은 이제 여자” 女 탈의실도 맘대로 이용… 괜찮을까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 [단독] “초등생들도 이용하는 女탈의실, 성인男들 버젓이”… 난리난 용산초 수영장
- ‘女스태프 성폭행’ 강지환, 항소심 판결 뒤집혔다…“前소속사에 35억 지급하라”
- “송지은이 간병인이냐”…박위 동생 “형수가 ○○해줬다” 축사에 갑론을박
- “홍기야, 제발 가만 있어”…성매매 의혹 최민환 옹호에 팬들 ‘원성’
- 사랑 나눈 후 바로 이불 빨래…여친 결벽증 때문에 고민이라는 남성의 사연
- "오피스 남편이 어때서"…男동료와 술·영화 즐긴 아내 '당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