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본질은 언론(인)-정치권-소비자의 정파적 언론 생태계"
[인터뷰] 심석태 세명대 저널리즘대학원 교수 '불편한 언론' 출간
언론의 정파성 정면 비판 "언론의 기본 원칙으로 돌아가야"
[미디어오늘 조현호 기자]
현재 한국 언론을 위협하는 요소는 무엇일까. 돈 받고 기사쓰기? 광고를 뜯어내기 위해 기사로 협박하는 문제? 아니다. 언론의 정파성이다. 심석태 세명대 저널리즘 대학원 교수는 언론위기의 근본 원인을 정파성, 정파적 언론에서 찾는다.
심 교수는 SBS 보도본부장을 지낸 주류 언론인이자 이명박 정부 시절 전국언론노동조합 SBS본부장으로 미디어악법 투쟁에 동참한 이력도 있다. 정권의 언론장악과 언론인들의 저항이라는 소용돌이를 겪었다. 심 교수는 현재 언론 환경을 정파적 언론과 정치권력, 언론소비자로 구성된 '정파적 언론생태계'로 규정했다. 사실성, 공익성, 독립성이라는 저널리즘의 기본 원칙이 이런 정파적 언론생태계에 의해 붕괴된 상태라는 설명이다. 심 교수는 자신의 저서 <불편한 언론-정파적 언론 생태계 현실과 해법>(나녹, 2023)에서 이 같은 관점을 제시했다.
심 교수는 언론의 정파성을 쉽게 드러나지 않는 언론윤리의 큰 문제로 봤다. 문제는 언론사의 수입 문제나 돈 문제에서 나타나는 언론윤리적 기준은 명확한데 반해, 정파성 문제는 그 기준이 명쾌하지 않다. 심 교수는 “정치화되어 있는 우리 사회에서 갈등을 통합해야 할 정치가 갈등을 격화시켜 특정한 집단을 자기편으로 만들고 가둬두는 얄팍한 수법을 쓴다”며 “언론은 이런 갈등 지향적 정치 구도에 아주 요긴한 도구”라고 해석했다. 그러다 보니 언론이 정치 갈등의 전위대 같은 역할까지 수행한다는 점을 들어 심 교수는 “언론인들 사이에 전반적인 윤리의식이 높아진 것이 사실이지만 이 정파성 문제로만 오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 오히려 많이 후퇴했다”며 “정치권력이 언론에 대한 압박을 가하는 상황에서는 더 그렇다”고 진단했다.
심 교수는 “언론이 정파성만 만나면 기본적인 사실 확인도 하지 않은 보도를 아무렇지 않게 내보내고, 내 편의 큰 잘못은 눈감아주고 상대편의 티끌은 침소봉대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긴다”며 “지금 한국에서 정파성은 모든 언론 윤리 규범을 무력화시키는 블랙홀”이라고 진단했다. 심 교수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편을 들어주는 언론은 어느 쪽이든 사회에 해악을 끼친다”고 본다. 그는 “정파적인 언론의 길을 선택하면 적어도 한 진영의 열렬한 지지를 받고, 생존 문제도 쉽게 해결된다”면서도 “정파적이지 않은 언론은 어느 한 쪽의 환영도 받지 못한다. 모두에게 불편하기 때문”이라고 봤다.
심 교수는 언론의 정파성, 정치적 편향성이 짙어지게 된 데엔 제도적 측면과 문화 사회적 측면이 작동한다고 해석했다. 현재의 방송통신위원회 방송통신심의위원회, KBS MBC 등 감독기관인 이사회 구성의 정치성이 제도적 요인이다. 정치적 독립성이 존중받지 못하는 언론계 내부 분위기가 문화 사회적 요인이다. 언론사는 언론인이 SNS나 방송에 특정 정치인 지지나 비난 같은 정치적 의사를 표현하는 일을 방임하고, 이런 행위는 목소리 큰 소비자들의 박수를 받는다. 반대로 재미없고 균형잡힌 콘텐츠, 불편한 기사를 쓰는 기자들은 기레기로 지목되고 신상이 털린다는 점을 들어 심 교수는 “언론을 자기편으로 만들려는 활동이 '비판적 소비'로 둔갑하는 지점”이라고 썼다. 그는 언론소비자들이 비판적 소비에 그치는 게 아니라 '이미 언론인 듯 언론이 아닌 매체'가 우후죽순처럼 생겨나 경제적 성공을 거두기도 한다고 우려했다.
심 교수는 정파성의 정의에 대해 김영욱 카이스트 과학저널리즘대학원 초빙교수가 “가치, 경험, 지식, 사회 내에서의 자신의 위치에 대한 고려를 통해 형성된 사회구조와 그에 영향을 미치는 공공 사안에 대한 상대적으로 일관된 입장과 태도”라고 한 것을 인용했다. 심 교수는 이런 정의를 근거로 정파성이 뭐가 문제냐는 반론에 “한국의 정파적 언론을 정당화하는 근거는 되지 못한다”며 “지금 한국에서 나타나는 정파성은 이런 '의견의 다양성' 수준을 훨씬 뛰어넘었기 때문”이라고 반박했다. 그는 “언론이 가치를 추구하는 '일관된 정파적 성향'을 가질 수 있다는 것과, 특정 언론이 주요 쟁점 사안마다 특정한 정치적 이해관계를 중심으로, 때로는 사실관계를 왜곡하며 잘못된 보도를 일삼는 '정파적 언론'인 것은 완전히 다르다”고 밝혔다.
정파적 언론 보도 사례로 심 교수는 KBS <저널리즘토크쇼J>의 편향적 언론 비평, 세월호의 외력설을 보도한 KBS MBC 한겨레 사례, KBS의 한동훈 이동재 녹취록 오보, 서울의소리 김건희 녹취록, 뉴스타파의 김만배-신학림 녹취록 보도와 인용보도, 한겨레의 윤석열 윤중천 별장접대 진술 묵살 보도, 조선일보의 '분신 노조원 불 붙일 때 민주노총 안 막았다' 보도, 월간조선의 유서 대필 의혹 오보 등을 들었다. 이밖에도 사설 같은 기사 제목, 한 가지 사안을 두고 정반대로 쓰는 언론 행태도 정파적 보도의 현상으로 봤다.
심 교수는 가장 최근 사례인 뉴스타파의 김만배-신학림 녹취록 보도와 관련해 뉴스타파가 박영수 전 특검이 부인하지 않고, 기억나지 않는다고 한 것을 '수사 무마 의혹을 시인한 것으로 판단했다'고 한 대목에 대해 “그동안 공개했던 것과는 달리 실질적인 사실검증이 없었다는 말”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철저한 검증과 엄정한 편집을 기본으로 삼는 탐사보도 매체가 이렇게 검증이 부족한 상태에서 보도한 것이 당시 임박했던 대선과 무관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라고 비판했다. 다만 심 교수는 검찰 수사와 국민의힘 공세에 대해서도 “국민의힘이 보도에 관련된 사람을 무더기로 고발한 것도 이 사안이 완전히 정파적 대결의 소재가 되었음을 보여준다”며 “녹취록 보도의 문제와 돈거래를 계기로 삼아 관련 국가기관들이 일제히 나서서 전방위적인 압박을 펼친 것”이라고 썼다.
이어 뉴스타파가 권력의 언론탄압이라 규정짓고 공세적으로 나서고 독자들의 후원가입이 급증하자 심 교수는 “여당의 공세가 선을 넘었다고 해서 해당 보도 과정의 문제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라며 “난전이 벌어질수록 해당 보도와 관련된 애초의 문제점을 명확히 인식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썼다.
미디어오늘은 지난 1일 심석태 교수와 전화 인터뷰를 진행했다. 다음은 인터뷰 요지다.
-왜 지금 언론의 정파성을 논의해야 한다고 보는가.
“워낙 심하다. 점점 더 심해지다 보니 자극이 자극을 부르듯 새로운 자극을 해야 느낀다. 무감각해지고 있다. 해결될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언론인들이 문제의식이 있어도 기준점이 모호해졌다. 명확하게 전면적이고, 포괄적으로 다뤄보자고 판단했다. 뭐가 정파성이고, 무엇이 문제인지 따져보게 됐다”
-윤석열 정부 언론장악은 어떤가.
“(언론계 일부에선) 윤석열 정부가 워낙 언론정책을 엉망으로 하니 그냥 비판하면 되는 것 아니냐고 한다. 그 이전의 문제는 뭔지, 싸우는 것은 제대로 싸우고 있는지, 비판을 제대로 하는 것인지, 윤석열 정부를 비판만 하는 게 옳은지 따져봐야 한다. 적과 싸우면 옳다는 식으로만 가버리면 원칙도 없는 정파적 언론으로 점철될 것이다.”
-언론 내부적으로 정파성 문제가 왜 심각해졌다고 보는가.
“우리 사회 디지털화가 진행되면서 2000년 대 초반부터 '모든 사람이 기자다'라는 구호가 나타났고, 언론사들도 SNS를 통해 디지털 독자를 끌어들이려는 노력을 많이 했다. 그러면서 유명해진 언론인이 등장했다. 언론인 사이에선 '우리가 하는 일이 SNS나 블로그와 다르지 않다'는 생각까지 퍼진 일도 있다. 스타가 되거나 비즈니스로 성공하는 일이 생겼다. 언론이 본질적으로 독립성과 공익적 가치를 유지하는 것이 기존에 가진 권위의 출발점인데, 이게 흔들렸다. 유튜브나 SNS에 정치적 발언, 사이다 발언에 박수치고 환호받으면서 나꼼수류의 극단적 주장을 시원하게 풀어내는 팬덤이 형성됐다. 정치팬덤과 언론팬덤이 비슷하게 나타났다. 그러면서 기준점이 사라졌다. 뭐가 문제인지 모른다. 가치를 추구하더라도 언론스럽게 원칙을 갖고 추구해야지 팬덤에 영합하는 것은 다르다.”
-'정파적 언론 생태계'라는 말을 쓴 이유는.
“생태계라고 하는 건 정치권은 언론이 자기를 편드는 환경을 만들려고 노력하는데, 언론계가 이런 정치팬덤에 순응하면 딱 맞아떨어진다. 그렇게 기사 쓰면 트래픽과 광고가 오르고 (경영난) 문제가 사라진다. 언론이 공익에 기여하는 게 아니라 권력의 도구가 된다. 문제는 언론계가 독립성을 추구하고 각을 세우고 이해관계가 다른 보도를 하기 시작하면 생태계의 톱니바튀가 빠진다. 삼박자의 수레바퀴가 빠지면 붕괴할 수 있다. 그렇게 되는 황무지에서 새롭게 출발해야 한다. 그렇게 해도 언론이 먹고 사는데, 본질적으로 문제 없다고 본다. 중도 시청자 독자들은 언론이 특정정파를 편드는 것을 달가워 하지 않는다.”
-중도 독자가 목소리를 높이지 않는데, 그런 독자층이 있다는 걸 어떻게 아나.
“독자 트래픽을 보면 한쪽 편을 들지 않는 시청자들이 많다. 이 때 언론은 독자 시청자들에게도 우리가 '뭘 하는지, 왜 이 이런 판단과 보도를 하는지' 적극 설명을 해야 한다. 과거 언론이 일방적으로 보도만 하던 시절과 달리 지금은 정파와 한덩어리가 된 언론만 존재한다. 그 앞에서 더 자세히 설명해줄 책무가 있다. 가운데 있는 사람을 끄집어 내야 한다.”
-왜 정파성만 만나면 기자들이 투사가 되고, 사실 확인도 안 거친채 보도를 내는 일이 생긴다고 보는가.
“기본적으로 한국 사회 자체가 정치 부분에 흥분해있다. 수십년 친분이 있어도 민주당과 국민의힘으로 갈리면 싸우다가 친구 사이도 깨진다. 그런 사회다 보니 (언론에서도) 그런 문제가 벌어진다. 윤리적인 언론인도 정파적 목소리만 들어오면 돌변한다.”
-기자의 SNS 상 정치사회적 의사표현은 어디까지 가능하다고 보나.
“대놓고 의사표현을 하면 안 된다. 뉴욕타임스 원칙을 가져오면 의사표현을 못하게 돼 있다. 소속 언론사 보도의 공정성에 대한 인식을 해쳐서다. 가급적 하지 않는 것이 좋고, 써야 한다면 정치인의 언어가 아닌 저널리스트의 언어로 써야 한다. 기사 쓰듯이 사실성 공익성 독립성에 맞춰야 하고 표현의 품위가 중요하다.”
-책에서 기자의 정치권 직행시 언론윤리강령을 위반했다고 판단하면 사표 수리 전 해고와 같이 징계하는 방안을 제시했는데, '직업선택의 자유를 침해한다'고 반발하지 않겠나.
“언론계가 논의해서 어떤 원칙을 지킬 것인지 통일해야 한다. 나도 너무 엄격한 것은 반대하지만 룰은 지켜야 한다. 지키지 못할 룰이 아닌 지키고 약속할 수 있는 룰을 만들어야 한다.”
-저널리즘토크쇼J 등 미디어비평 프로그램의 정파성을 비판했는데, 언론 상호 비평의 활성화와 동업자나 자신을 포함한 성역없는 비판 측면에서 프로그램의 필요성은 있지 않느냐.
“제대로 비평해야 한다는 의미다. 반대쪽을 공격하기 위한 무기로 받아들여지니 문제다. 이렇게 하는 비평은 안 하느니만 못하다. 하려면 저널리즘 원칙을 지키면서 해야 한다.”
-언론소비자 운동의 정파성도 비판했는데, 대중의 언론보도 관심을 제고하는 긍정적 요인도 있지 않느냐.
“언론소비자 운동이 필요하지만 정파적 소비자 운동은 정치운동이다. 우리 편 들어주면 좋은 언론이라는 것은 일종의 외곽 정치운동이다. 이런 운동은 한국사회에 큰 해악을 끼쳤다.”
-언론의 정파성 해소 방안으로 '인식의 전환', '정치와 언론의 제도적 방화벽 강화' 등을 제시했는데, 인식의 전환이 가장 중요한가.
“말로만 이 문제를 심각한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고 진짜 행동해야 할 과제로 인식해야 한다. 언론윤리 문제 어쩔 수 없는 것 아니냐 포기하지 말고 해결의지를 갖고 하면 된다. 그렇지 않고 놓아두면 언론의 미래가 없고, 한국사회의 미래도 위험해진다. 자기 편들기만 하면 좋은 게 아니다. 윤석열 정권의 몰아치기만 비판하면 되겠거니 하고 넘어가서는 안 된다. 보도의 잘잘못을 따져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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