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산가리 막걸리 살인' 재심 석방…위법 수사 단서된 '자백 영상'

박병현 기자 2024. 1. 5. 2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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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2009년 전남 순천의 한 조용한 농촌마을에서 청산가리가 든 막걸리를 모르고 나눠마신 주민들이 숨지는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수사 결과 한 부녀가 함께 아내이자 어머니를 살해한 걸로 결론나 큰 충격을 줬는데요. 이 부녀가 어제(4일) 저녁 사건 발생 15년 만에 풀려나 세상 밖으로 나왔습니다. 억울하다, 다시 재판해달라는 요청을 법원이 받아들인 겁니다.

먼저 풀려난 부녀의 이야기부터, 박병현 기자가 보도합니다.

[박병현 기자]

교도소 문이 열립니다.

한 남성이 걸어 나옵니다.

[백모 씨/'청산가리 막걸리 살인사건' 피의자 : 아주 (마음이) 무겁습니다. 제가 뭐 말할 수가 없습니다.]

같은 날 세상 밖으로 나온 딸도 울음을 터뜨렸습니다.

[백모 씨 딸/'청산가리 막걸리 살인사건' 피의자 : 그래도 많은 희망은 그냥 안고 있었어요.]

백씨 부녀는 2009년 막걸리에 청산가리를 넣어 백씨의 아내 등 두명을 숨지게 한 범인으로 지목됐습니다.

각각 무기징역과 징역 20년이 확정됐습니다.

그리고 사건 발생 15년 만에 두 사람은 풀려났습니다.

광주고등법원이 재심을 결정했기 때문입니다.

재판부는 "백씨 부녀가 검찰에서 한 진술과 당시 수사 상황이 서로 맞지 않는다"며 "의심 수준을 넘어 기존 판결을 유지할 수 없을 정도"라고 설명했습니다.

형집행정지 신청도 받아 들였습니다.

재심 사건으로 수감 중에 풀려나는 건 처음입니다.

[박준영/변호사 : 잘못된 수사를 하고 허술한 재판을 하고 이렇게 했던 사람들의 책임이 정말 가볍지 않은 것 같습니다.]

검찰이 불복하면 최종 재심 결정은 대법원으로 넘어가고 그렇지 않으면 재심이 확정됩니다.

[앵커]

법원이 이렇게 의심 수준을 넘어 기존 판결을 유지할 수 없을 정도라고까지 밝힌 이유가 있었습니다.

사건 당시 검찰이 이 부녀를 어떻게 조사했는지, 영상으로 고스란히 남아 있었는데 조해언 기자 보도로 같이 보시죠.

[조해언 기자]

청산가리 막걸리 살인의 범인으로 지목된 남편 백씨와 딸을 검찰이 조사하는 영상입니다.

[검찰 수사관-백씨 (2009년 조사) : {아까는 왜 인정했어요} 얼른 안 떠올라서 거짓말했습니다. {거짓말했다 한마디하면 다 끝날 거 같아요? 말이 잘못 나왔죠?} 예.]

거짓말을 한다고 계속 몰아 붙입니다.

[검찰 수사관-백씨 (2009년 조사) : {뭔 거짓말을 밥먹듯이 해요 네?} 그것이 아닙니다. 제가 아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제가 안 했기 때문에 막걸리도 안 샀습니다. (청산염은) 그것도 없었습니다. 딸이 여기 들어와서 아빠하고 같이 했다고 했기 때문에 그냥 짊어지려고 거짓말했습니다.]

딸에게는 아빠와 이간질도 했습니다.

[검찰 수사관-백씨 딸 (2009년 조사) : {근데 아빤 왜 다 혼자 니가 했다고.생각해보니 열받지?} {아빠는 자기가 직접 죽이지 않았지. 우연을 가장하고 싶었고} 네.]

검찰은 단순히 "네"라고 답한 것도 인정한다는 취지의 진술로 조서에 기록했습니다.

글을 모르는 백씨는 조서를 직접 확인하지 못합니다.

[박준영/변호사 백씨 부녀 법률대리인 : 자백을 받아내는 과정에서 굉장한 불법이 있었구나라는 걸. 조서가 허위로 작성됐다라는 것도 다 확인하다 보니까 억울하다는 건 조금도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검찰은 이렇게 받아낸 자백을 유일한 증거로 내세웠습니다.

검찰은 '백씨가 화물차로 막걸리를 사왔다'고 했지만 당일 마을 CCTV에는 백씨의 차가 찍히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런 자료는 재판에 제출되지 않았습니다.

"청산가리가 오이 농사에 쓰이지 않는다"는 이웃 증언도 숨겼습니다.

결국 광주고등법원은 당시 검찰 수사 과정에 위법한 범죄행위가 있었고, 직권남용이 인정된다며 재심을 결정했습니다.

[영상디자인 조영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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