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아리] 한동훈 위원장이 공화주의자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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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매주 수요일과 금요일 선보이는 칼럼 '메아리'는 <한국일보> 논설위원과 편집국 데스크들의 울림 큰 생각을 담았습니다. 한국일보>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정치 일선에 나서면서 자주 사용하는 용어가 '동료시민' '공공선'이라는 데 비춰 그의 정치 성향이 공화주의라는 해석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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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자도생 시대에 공화주의 주목
중용과 균형 감각이 더 중요
편집자주
매주 수요일과 금요일 선보이는 칼럼 '메아리'는 <한국일보> 논설위원과 편집국 데스크들의 울림 큰 생각을 담았습니다.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정치 일선에 나서면서 자주 사용하는 용어가 ‘동료시민’ ‘공공선’이라는 데 비춰 그의 정치 성향이 공화주의라는 해석이 나왔다. 한 위원장은 4일 5·18 민주묘역 방명록에도 ‘민주주의를 위한 광주 시민의 위대한 헌신을 존경한다. 그 뜻을 생각하며, 동료시민들과 함께 미래를 만들겠다’고 적었다. 그가 실제 공화주의를 의도했는지 모르겠지만, 정치 진영 간 대립뿐만 아니라 여러 집단과 개인 간 이해 충돌이 극심한 요즘 현실에서 공화주의는 우리 정치인들이 주목해야 하는 정치철학인 것은 분명하다.
잘 알려져 있듯 공화국(republic)이라는 단어 자체가 라틴어 ‘res publica(공공의 일)’에서 나온 것으로 공화주의는 용기 절제 헌신 우애(동료애) 등 시민적 덕성을 기반으로 무엇보다 공공선을 추구하는 정치철학이다. 공화주의의 역사적 모델인 로마 공화정이 1인의 지배(왕정)나 다수 폭민의 지배(고대 민주정)를 반면교사로 삼고 태동했던 만큼, 전제 권력에 맞서는 시민적 자유를 중시하되 그 자유가 폭민의 방종이 아니라 공동체를 통해 실현된다고 보고 건강한 공동체와 공익을 위한 선공후사를 미덕으로 삼는다.
한 위원장이 즐겨 쓰는 동료시민이나 공공선이 이런 맥락에서 공화주의적 언어다. 최근 천만 관객을 끌어 모은 영화 ‘서울의 봄’의 이태신 장군 역시 공화주의의 이상적 군인상이며, 지금의 윤석열 대통령을 있게 만든 ‘나는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는 말도 사적 인연이 아니라 공익에 충실한다는 의미에서 공화주의 정신이 담겨 있다. 이런 언어나 인간형에 사람들이 갈증을 느끼는 것은 역설적으로 우리 사회의 공공성이 쇠퇴하고 공론장은 실종됐기 때문일 것이다. 정부나 공공기관이 사익에 따라 좌지우지되고 세금이 누군가의 쌈짓돈이 될 때 공익이나 공공성이 바로 설 리 없다. 각자 알아서 자기 이익을 챙기고 생존하기 바쁜 각자도생의 시대라는 얘기가 나온 지도 오래다. 이런 세태를 감안하면 한 비대위원장이 윤 대통령이 강조해온 ‘자유주의’ 대신 공공성을 회복하는 ‘공화주의’ 깃발을 보다 더 과감하게 내세워 볼 만하다.
하지만 한 비대위원장이 공화주의를 얼마나 체득했는지는 의문이다. 공화주의가 공공선을 강조하지만, 보다 더 근본적인 정신은 중용과 균형이다. 공공성 강조가 사익을 희생하라는 뜻이 아니다. 공익과 사익의 조화를 찾는 것이다. 공화정 자체가 군주정과 민주정의 혼합으로 이뤄진 중용의 정체다. 개인의 자유가 공동체의 질서를 통해 이뤄진다고 보는 공화주의는 그만큼 엄청난 균형감을 요구한다.
이런 균형감을 잃으면 공화주의는 자칫 권위주의나 집단주의로 변질되기 십상이다. 예컨대 공화주의가 중시하는 ‘조국애’는 군국주의나 국가주의의 도구로 이용됐다. 프랑스 대혁명의 사상적 동력이었던 공화주의는 결국 자코뱅 독재로 귀결됐다. 공화주의가 19세기 이후 쇠퇴했던 것도 정치 질서가 균형점을 잃고 자유주의와 사회주의로 극단화했기 때문이다.
공화주의가 극단화된 정치를 회복하는 길이 될 수 있지만, 한 비대위원장의 언어는 여전히 대결적이다. 야당을 정치 파트너가 아니라 청산 대상으로 삼았던 그의 비대위원장 수락연설은 사실 공화주의라기보다 거꾸로 된 운동권의 언어였다. 그가 말하는 ‘동료시민’이 공동체의 통합이 아니라 배제의 언어로 이용될 수 있다는 것도 유념해야 한다.
송용창 뉴스1부문장 hermeet@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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