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윤 대통령 김건희 특검 거부, 사법정의 무너뜨렸다
윤석열 대통령이 5일 김건희 여사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의혹 특검법과 대장동 50억 클럽 특검법에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했다. 이날 오전 임시 국무회의가 열려 쌍특검 법안에 거부권을 의결한 뒤 곧바로 재가했다. 현직 대통령이 가족 비리 의혹에 대한 특검 수사를 막은 것은 처음이다. 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는 헌법적 권한을 사사로이 남용한 것이고, 공정하고 평등해야 할 사법 정의를 무너뜨린 것이다.
특검 법안은 전날 정부로 이송된 지 하루 만에 임시 국무회의, 대통령 거부권에 막혀 국회로 되돌아가게 됐다. 정부는 이날 임시 국무회의를 긴급히 열고, 불참한 장관들에게 사유서 제출까지 요구했다고 한다. 국정에 매진해야 할 장관들을 거수기로 동원해 속전속결 처리할 만큼 김 여사 방탄이 시급한 국정 현안이었는지 묻게 된다. 대통령 부부를 지키고 김 여사 호위에 나선 장관들의 행태도 개탄스럽다.
대통령실은 특검 법안이 “총선용 악법” “국민 선택권을 침해하고 국정 혼란을 일으킨다”고 공격했다.궤변이다. ‘김건희 특검법’은 더불어민주당이 지난 2022년 9월 처음 발의한 뒤 지난해 3월 정의당이 별도 법안을 제출했고 4월에 신속처리안건(패스트트랙)으로 지정됐다. 총선과 관련 없는 시기에 제출된 법안을 여태껏 외면하고 방해했던 여권이 이제 와서 ‘총선용’ ‘국정 혼란’ 핑계대며 거부하다니 억지도 이런 억지가 없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민생을 외면하는 법안”이라 했고,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이미 수사했던 10년 전 얘기”라고 맞장구친 것도 독단적이다. 주가 조작은 중대한 민생 범죄이고, 윤석열 정부 출범 후 검찰이 김 여사 소환조사 한번 없이 제대로 수사하지 않았기 때문에 도입된 게 ‘김건희 특검법’이다. 이러니 70%가 넘는 국민이 대통령의 거부권을 반대하는 걸 눈감고 귀막은 채, 여권이 민심과 엇가는 무모한 길을 택한 꼴이 됐다. 정부 여당은 ‘국민들이 원하면’ 제2부속실 설치를 검토하겠다고 했지만 국민들이 원하는 ‘김건희 특검법’은 왜 거부하는지부터 밝혀야 한다.
윤 대통령은 취임 후 8개 법안에 거부권을 행사했다. 신중하게 행사해야 할 헌법적 권한을 빈번하게 행사한 것도 문제인데, 이번엔 배우자 비리를 비호하려는 의도를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한보그룹 특혜대출 의혹(김영삼 전 대통령), 최규선 게이트 연루 의혹(김대중 전 대통령) 등 역대 대통령들은 가족 관련 범죄 혐의에 대한 특검을 거부하지 않았다. 주권자로부터 권력을 위임 받은 대통령은 국민 전체를 위해 공정하게 국정과 사법을 운영해야 한다는 마지막 소명 의식을 보여준 것이다. 그런데 윤 대통령은 정반대의 길을 가려 하고, 이미 가고 있다. 대통령 부인은 더 이상 성역이 아니고 권력을 사유화한 대통령을 용납하는 국민은 어디에도 없다. 김 여사 의혹을 규명하라는 민심과 맞선 윤 대통령은 준엄한 비판대에 설 수 밖에 없다. 여야는 윤 대통령이 거부한 쌍특검법을 충분히 재의한 뒤 본회의에서 다시 처리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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