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숏커트=페미’라며 맞았지만…‘여성폭력 피해자’ 지원 못 받았다
지난해 경상남도 진주시에서 발생한 ‘편의점 폭행사건’이 보여주듯 여성을 겨냥한 혐오 범죄가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있다. 성별에 기반한 여성에 대한 폭력을 방지하고 피해자를 보호하기 위한 법이 2019년 시행됐지만, 정작 ‘여성 폭력’의 의미를 협소하게 규정한 탓에 여성혐오 범죄 피해자가 필요한 지원을 받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여성의당 정책위원회는 5일 오후 서울 동작구 서울여성플라자에서 여성혐오 범죄 방지 및 피해자 지원 방안을 모색하는 좌담회를 개최했다. 이날 좌담회에는 지난해 11월4일 경남 진주시의 한 편의점에서 ‘숏커트를 한 페미니스트’란 소리를 들으며 무차별적 폭행을 당했던 ㄱ씨가 참석해, 사건 이후 피해자로서 겪고 있는 어려움을 들려줬다.
ㄱ씨는 당시 폭행으로 인대가 늘어나고, 앞니 세 개가 흔들리고 이명이 들리는 피해를 입어 신경외과와 정형외과, 이비인후과, 치과 등 4개 과를 다니며 치료를 받아야 했다. 그는 “경찰이나 보호자 동행 없이 오롯이 혼자서 병원을 찾아가 진료를 받아야 했다”며 당시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여성폭력방지와 피해자 보호·지원을 명시한 ‘여성폭력방지기본법’이 있지만, 이 법이 ㄱ씨가 입은 ‘여성혐오’ 범죄를 보호·지원 대상으로 명시하지 않고 있는 탓에 ‘단순 폭력’ 피해자로 분류돼 적절한 지원을 받지 못한 것이다.
ㄱ씨를 지원하고 있는 정윤정 진주성폭력피해상담소 소장은 “(여성폭력방기본법에 명시된) 성폭력, 가정폭력, 성매매, 스토킹 범죄가 발생하면 경찰에서 ‘여성긴급전화 1366’에 연락해 지원을 요청한다. 하지만 ㄱ씨가 혼자 병원에 가는 동안 아무도 1366에 연락하지 않았다”며 “ㄱ씨와 같은 여성혐오 범죄 피해자 지원의 첫번째 난관은 피해자를 명명할 수 없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여성폭력방지기본법에 성별에 기반한 여성에 대한 폭력으로 명시된 성폭력·가정폭력·성매매·스토킹 범죄의 경우 각각의 피해자 보호법이 있어서 그에 따라 지원을 받을 수 있지만 여성혐오 범죄 피해자를 보호하는 법은 따로 없다 보니 지원 공백이 발생한다는 설명이다. 젠더 기반 폭력(여성에게 신체적·성적·심리적 피해를 초래하거나 초래할 가능성이 있는 폭력)이라는 점에선 다르지 않지만, 여성혐오 범죄 피해자는 다른 여성폭력 피해자처럼 지속적인 피해 상담이나 수사기관·법원 동행, 변호사 선임 등 법률 지원, 의료 지원, 치유·회복 프로그램 지원 등을 받을 길이 없게 되는 셈이다.
이날 좌담회에선 ㄱ씨의 사례처럼 2019년 12월 시행된 여성폭력방지기본법이 여성혐오 범죄를 여성폭력으로 포괄하지 못하는 만큼, 개선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왔다. 이경하 변호사(법무법인 신세계로)는 “여성폭력 범위를 협소하게 규정하는 문제는 여성혐오 범죄 피해자가 단순 폭행·상해 등 형법상 범죄 피해자로만 간주돼 여성폭력 피해자로서 필요한 지원 및 보호를 받지 못한다는 문제와도 연결된다”고 말했다. 이 변호사는 “여성혐오 범죄는 일반 범죄보다 피해자의 신체·정신건강에 미치는 영향이 심각한데다, 그 피해가 피해자 개인을 넘어 여성 집단 또는 이 사회 전체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고 파급력과 모방범죄 위험이 높기 때문에 일반 범죄보다 중하게 다뤄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현행 여성폭력방지기본법상의 여성폭력의 정의에 ‘가해자가 여성에 대한 특정한 편견을 가져 여성만을 범죄 표적으로 삼는 등 여성혐오적 또는 성차별적 범행 동기가 존재하는 폭력’을 추가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아울러 가해자가 음주 또는 약물로 인한 심신상태 상태에서 범죄를 저지른 경우라도 형 면제 또는 감형 사유에서 제외할 수 있도록 한 특례 규정이, 현재 성폭력처벌법뿐만 아니라 여성폭력방지법에도 신설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ㄱ씨를 무차별적으로 폭행한 박아무개씨(28·구속 기소)의 경우도, 재판부에 정신감정을 신청해 받아들여진 상태다.
오세진 기자 5sj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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